“컨버전스 마인드가 일류기업 만든다”
이희국 LG전자 사장
“한 경제신문 신년호에 실린 앨빈 토플러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사 제목은 ‘컨버전스 앞선 기업이 주도권’이었다. 여기서 토플러는 이렇게 전망했다. ‘이제 칸막이식 영역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컨버전스를 실행하는 국가와 기업이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디지털 컨버전스’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나에게 그것은 매우 의미 있는 화두로 다가왔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음성, 영상, 정보 등이 디지털화됨에 따라 비즈니스, 네트워크, 단말기기의 컨버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컨버전스에서 앞선 기업이 치열한 기업경쟁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희국 LG전자 사장은 강연의 서막을 이렇게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초반에만 ‘컨버전스’라는 단어가 5회나 등장했다는 점이다. 컨버전스(convergence).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 한 점으로 집합함; 집중성. 2 집합점. 3 [수학] 수렴 [생물] 수렴 현상, 근사 현상; 집합, 집폭(集輻)”. 그렇다면 이 사장이 생각하는 컨버전스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정답은 나도 모른다. 다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정답에 접근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LG전자 휴대폰 광고 중에는 한 혼혈인 남성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이 광고는 ‘서양적 외모’와 ‘동양인의 정감’이라는 두 가지 이질적 이미지를 결합시켜 새로운 느낌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제인가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양악(洋樂)이 아닌 국악(國樂)으로 연주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크게 보면 이것도 컨버전스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질적이고 별개였던 것이 각자 고유 기능은 유지하면서 전혀 새로운 것으로 창조되는 것, 나아가 그것이 사용자의 편리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컨버전스다.”
그런데 이 사장의 컨버전스 앞에는 디지털(digital)이라는 관형어가 하나 더 붙는다. 따라서 그것은 운명적으로 아날로그(analog)와 대비된다. 예컨대 아날로그 시대에는 음성은 전화기로, 영상은 TV나 영화로, 정보는 컴퓨터로만 각각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기기가 다르면 콘텐츠의 이동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그러한 장벽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
“전화기, TV, 컴퓨터를 하나로 묶어낸 TPS(Triple Play Service), 여기에 휴대전화를 덧붙여 수준을 한 단계 높인 QPS(Quardruple Play Service), 은행업무를 전화로 해결할 수 있는 모바일뱅킹 등을 대표적인 실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진화는 생활의 혁명을 가져다 주고 있다. 휴대전화는 과거에는 ‘커뮤니케이션(소통)’의 역할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현재는 ‘인포메이션(정보)’과 ‘엔터테인먼트(오락)’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미래에는 ‘휴먼 케어(건강관리)’의 역할까지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좀더 쉽게 말하면, 주머니 안에 있는 휴대전화 한 대가 비서는 물론이고 주치의 기능을 수행한다.”
휴대전화가 건강관리를 담당한다고? 이 사장은 “물론 그렇다”고 확답했다. 예컨대 휴대전화가 당뇨나 콜레스테롤 수치 등 건강 관련 정보를 수시로 체크한 뒤 병원에 전송해줌으로써 일상적으로 검강검진을 받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 사장은 컨버전스 시대의 3가지 생존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장롱 속에 있는 원천기술보다 복합응용기술을 활용한 차별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타임머신TV, 초콜릿폰, 아이팟 등은 바로 이런 복합응용기술이 거둔 성과의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경쟁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과 시장 등 주변의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스피드(속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셋째, 때로는 기술을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는 포용과 개방의 능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지름길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에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거니와, 이 사장은 세 번째 전략과 관련해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소개했다.
“과거에는 인도의 일류대에서 A 플러스 학점을 받은 학생이 미국의 평범한 대학에서 B, C 학점을 받은 학생보다 능력을 발휘하기에 불리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써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지리적 경계가 사라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기술은 뛰어나고 비용은 저렴하기 때문에 미국의 기업들이 세무와 회계 업무까지 인도로 발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낮과 밤이 다르기 때문에 지리적 한계는 핸디캡(약점)이 아니라 어드밴티지(이점)로 작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