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에 세금 매기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용섭 청와대 혁신수석
이용섭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은 참여정부의 정부혁신 로드맵을 기획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청와대가 정부혁신 1번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온 그에게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한 기업인이 있다. 그는 샐러리맨의 우상이었고, 산업화 시대의 신화였다. 그의 취미는 일이었고, 특기도 일이었고, 쉬면서 하는 일도 일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과 설렁탕이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을 하느라 골프를 칠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서류를 뒤적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쫄딱 망했다. 21세기의 빠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해외에 공장을 확장하는 등 40년 동안 익숙해진 경영전략을 고집하다 그런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김우중 신화의 몰락은 경쟁력의 화두가 ‘규모’에서 ‘속도’로 바뀌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서 이 수석은 두 안과의사의 비유를 들었다.
“여기 두 명의 안과의사가 있다. 한 사람은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저녁 6시까지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동네 아이들 눈병을 고치거나 시력검사를 해주는 일이 전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가 되면 일찌감치 셔터를 내린다. 그런데 그가 전문으로 다루는 분야는 라식이나 라색 수술이다. 과연 누가 더 경쟁력을 갖춘 안과의사냐고 묻는 것은 우문에 불과하다. 경쟁력은 노동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창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안과의사 이야기는 성실하고 근면하면 그것이 곧 경쟁력일 수 있었던 산업화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실제로 1950년 <포츈>이 선정했던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채 10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해서는 생존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경쟁의 차원 자체가 아예 달라졌다. 이 수석은 ‘글로벌 경쟁체제’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세금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다.
“1747년 영국은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 윈도우 택스(일명 호창세)를 도입했다. 이 조세 제도의 취지를 설명하면 이렇다. 잘 살고 돈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집이 크고 넓기 마련이다. 아울러 집이 크면 보통 창문도 많다. 그렇다면 창문 수에 비례해서 세금을 매기면 공평하지 않은가. 이 제도를 고안해낸 사람의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사람들이 집을 지으며 창문을 달지 않거나 기존에 있던 창문마저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한 이유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호창세는 결국 국민들의 일조권(日照權)만 빼앗은 채 실패했다. 영국의 호창세에 비견되는 것이 러시아의 수염세. 다시 이 수석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러시아의 절대군주 피터 대제는 네바강 하구에 새 도시를 건설한 뒤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천도 이후 그가 추진한 두 가지 이색 사업이 있었다. 귀족들의 옷소매를 짧게 하고 긴 수염을 단정하게 깎도록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슬라브인에게 긴 수염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신성한 존재였기 때문에 전국에서 귀족들의 거센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저항이 계속되자 피터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수염세’를 물리기로 결정했다. 효과는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세금을 내기 싫은 귀족들이 면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도 호창세와 수염세가 통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수석의 설명이다.
“글로벌 시대의 국민은 언제든지 국가의 틀을 넘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호창세와 수염세를 강요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국’을 등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장 현실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다.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보라. 이제 세상은 자본과 노동이 아니라 혁신과 지식이 지배할 것이다.”
한편 앞으로 2월 한 달 동안 진행될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일정, 주제, 강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2월 2일: 창립31주년 기념연구회-디지로그시대를 앞서가는 한국인(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2월 9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2월 16일: CEO 칭기스칸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김종래 조선일보 출판국장)
△2월 23일: 한국의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
전화문의 02-2203-3500
정지환 기자 ssal@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