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무력충돌? 걱정하지 마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역대 주한 미국 대사 중 최고위직 출신으로 분류되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예일대 러시아학-동유럽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그는 1977년 국무부에 입성한 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국익을 위해 뛰어온 베테랑 외교관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국 부상주대표ㆍ미국 대표부 부대사, 국무부 유럽ㆍ캐나다 담당 수석차관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유럽담당 선임국장, NATO 대사, 주 러시아 대사 등을 역임한 그가 강연회 서두에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요즘 서울의 한파와 폭설을 보면서 문득 모스크바에서 체험했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적 언사의 특징 중 하나가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던가. 그가 이런 말을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는 모스크바 외교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정태익 전 주러 한국 대사와의 특별한 인연을 상기시켰다(실제로 이날 정 전 대사는 버시바우 대사가 도착하기 전 30분 동안 ‘찬조 강연’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그의 발언에서 감지됐다.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추운 겨울을 북한 주민 2천3백만명은 난방 시설 하나 없이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북한에 의료서비스 체제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도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지금 심하게 고통받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강력히 지지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정부가 하루빨리 핵무기를 폐기하고 각종 불법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북한이 복귀할 경우 기쁘게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거니와, 그것만이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그렇다면 그는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 것일까. 다시 그의 발언을 들어보자.
“부시 대통령은 국제 사회 운영과 관련해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원칙에 입각해 취해진 여러 조치들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비록 완전한 수준은 아니지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향해 소중한 첫 걸음을 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라크 총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까지 한국이 군사적으로 크게 기여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기여했던 것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상황이었기에 이라크에서 보여준 한국의 역할은 그 의미가 더욱 컸다. 한국이야말로 미국이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자유의 원칙이 가장 역동적이고 성공적으로 적용된 나라일 것이다.”
내침 김에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과 미국의 밀접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와 통계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언급했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국가이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은 7대 교역국이고, 한국에게 있어 미국은 2대 교역국이다. 또 지난해에만 40만명에 이르는 한국인이 비자를 발급 받아 미국을 방문했으며, 올해 그 숫자는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약 6만5천명의 한국인 유학생 숫자도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단연 1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비자면제 프로그램 로드맵’ 구축에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이날 강연회는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버시바우 대사가 북한에 대한 자신의 ‘범죄정권’과 ‘불량국가’ 등의 잇따른 발언으로 대북관계가 악화된 것에 유감을 표명하거나 아니면 도리어 더 강경한 발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고, 강경 발언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빠른 시일 내에 북핵 협상이 재개되길 희망한다. 미국은 언제라도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으며, 6자회담 재개에 어떤 전제조건도 달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동북아 전체에도 이익이 되겠지만 역시 가장 큰 혜택은 북한이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등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하고 핵 제거에 박차를 가한다면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은 전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원론적인 발언으로 강연이 끝나갈 무렵 청중석에서 도발적인 질문이 나왔다.
“올해 안에 미국이 북한과 무력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없겠죠?”
버시바우 대사는 씩씩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고, 유쾌한 박수가 쏟아졌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우리의 외교전략은 6자회담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지환 기자 ssal@ngo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