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대구대학교 총장)
피터 드러커의 경영사상을 말한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머천트 뱅크의 사장은 ‘청년 사원’ 드러커가 업무가 바뀐 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꾸짖었다. “나는 자네가 보험회사의 증권분석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가 그 일을 계속 하길 바랐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자네에게 새 업무를 맡기진 않았을 걸세. 자네는 지금 머천트 뱅크 파트너들의 수석 비서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그러면서 사장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자네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다시 말해 자네의 ‘새로운’ 직무에서 효과적인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항상 명심해야 하네.”
현대경영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1909∼)는 그렇게 단련(鍛鍊)됐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칭찬은 사람을 단련한다”(잠언 27장 21절)고 성경은 말하고 있거니와, 드러커를 단련시킨 도가니와 풀무는 ‘사람’이었다. 한국 최고의 ‘드러커 전문가’로 통하는 이재규 대구대 총장이 지난 9월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을 통해 소개한, 드러커를 단련시킨 도가니와 풀무는 프레데릭 테일러(1856∼1915)와 조지프 슘페터(1883∼1950)였다.
“현대 세계를 창조한 위대한 인물로 흔히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세 사람을 꼽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드러커의 생각은 전혀 다른데, 만약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있다면 마르크스 대신에 테일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드러커는 지식을 접목하여 ‘좀더 열심히 일하기'(working harder)에서 ‘좀더 현명하게 일하기'(working smarter)로 노동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인 테일러를 ‘재발견’한 것이다. 드러커의 재발견이 있기 전까지 테일러는 그저 ‘과학적 관리법'(테일러 시스템)을 창안한 인물에 불과했다.”
마르크스와 테일러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드러커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이재규 총장은 평등의 두 가지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잘 사는 사람’의 것을 ‘못 사는 사람’에게 분배하는 과거형 평등과 ‘못 사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으로 만드는 미래형 평등이 있다고 분류한 것이다. 물론 드러커는 미래형 평등을 가져온 인물이 테일러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도가니와 풀무인 슘페터는 드러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였을까.
1950년 벽두에 드러커는 <경기순환론>의 저자이자 부친의 친구이기도 한 슘페터의 임종을 지켜봤다. 동행했던 아버지가 친구에게 물었다. “조지프, 자네는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슘페터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5∼6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스승으로서 기억되길 바라네.” 드러커는 이 대화에서 3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우선 사람은 자신이 사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물으면서 살아야 하며, 자문하며 살되 그 대답은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해야 하며, 변화를 추구하되 인간의 삶에 진정 변화를 일으킨 사실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교훈과 각성은 새로운 도전과 창조의 연료가 된다. 실제로 드러커는 테일러의 ‘노동 생산성’을 혁신시켜 ‘지식 생산성’으로 점프해, 현대경영이론의 창시자가 된다. 그렇다면 1993년 드러커의 역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한 이후 <넥스트 소사이어티>와 <단절의 시대> 등 2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잇따라 번역한 이재규 총장에게 드러커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일까. <피터 드러커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이 총장은 이렇게 답했다.
“웰빙, 어메니티, 자원봉사, 제2의 직업 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드러커의 경영사상이 우리들로 하여금 ‘지시’와 ‘감독’과 ‘명령’이 아니라 ‘자율’과 ‘창의’와 ‘책임’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참고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