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에마쓰 요시노리(일본 민주당 국회의원)
“유럽의 EU처럼 아시아의 AU 만들자”
“일본의 비즈니스 코드는 ‘재미’와 ‘즐거움’이 될 것이다. 대박과 붐(boom)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적절히 치고 빠지는 ‘스피드 경영’이 요구되며, ‘홈런’보다 ‘안타’가 더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을 판단할 때 가계(집안)를 따졌고, 그 다음으로 학력(학벌)을 따졌다. 그러나 이제는 인격(성격)을 따지는 시대가 됐으며 아이들은 ‘멋있는 삶’을 선망한다. 9·11사태 이후 생존자를 헌신적으로 구출하던 소방관이 일본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직종으로 떠오른 것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9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강사로 나선 47세의 일본 정치인 쓰에마쓰 요시노리(중의원, 민주당·사진)는 몇 가지 코드를 통해 일본 사회 읽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미래학자를 연상케 할 만큼 경쾌한 그의 설명은 현대사회의 위선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음이 곧바로 드러났다.
“현대인은 지금 ‘영양실조’가 아니라 ‘영양과다’로 죽어가고 있다. 비만에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 심장마비, 뇌출혈, 당뇨 등의 질병이 바로 그 증거다. 과거에는 패스트푸드 산업이 GNP를 올렸지만 이제는 다이어트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사회는 ‘병 주고 약 주는 사회’인 셈인데,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금 대형약국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GNP가 높아져 우리가 먹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불건강한 이상사회(異常社會)’의 출현. 쓰에마쓰 의원이 규정한 현대사회의 초상이다. 그리고 쓰에마쓰 의원이 보건대 그 초상을 만든 장본인은 당연히 구미(歐美), 즉 유럽과 미국이다. “구미가 주도했던 20세기가 경쟁과 대립과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생과 조화와 평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발언이 그 반증이다. 동시에 그가 보건대 새로운 21세기를 주도해야 할 주체는 구미가 아니라 아시아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의 신민족주의(쇼비니즘) 부활 등으로 ‘동북아판 삼국지’가 재현되는 살벌한 상황에서 그의 원대한 ‘아시아주의’는 자칫 공허한 이상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신민족주의(쓰에마쓰는 ‘네오 내셔널리즘’이라고 표현했다)가 대두한 배경은 무엇일까. 쓰에마쓰 의원은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신민족주의가 강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거품경제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만 해도 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우리가 미국을 이겼다’면서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다. 그러나 거품이 걷히며 일본경제가 붕괴되자 일본인들은 곧바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그때부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일본(인)은 과연 누구인가’ 등의 원초적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아이덴티티(Identity)를 찾기 위한 고민의 과정에서 신민족주의가 움트기 시작했다. 바로 ‘잃어버린 10년’이 신민족주의의 숙주(宿主)로 작용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신민족주의의 반영이라는 것이 쓰에마쓰 의원의 분석이다. 그는 “2차 대전의 A급 전범을 신(神)으로 모신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것에 한국인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본 신도의 원류에 해당하는 신사는 야스쿠니가 아니라 이세 신궁이다. 고이즈미가 이세 신궁을 참배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야스쿠니는 육·해·공군 출신 관리와 전몰군인의 위패만 모신 곳이다. 여기에는 일본에 대항한 반란군이나 민간인의 위패가 아예 없다. 결국 야스쿠니를 참배했다는 것은 고이즈미가 2차대전을 성전(聖戰)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고이즈미의 행위는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 따라서 고이즈미 신사참배의 밑바탕에는 ‘국가는 바른 전쟁만 한다’와 ‘전범을 용서하고 충정을 기리자’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쓰에마쓰 의원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본의 민주당이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는 ‘국립추도시설’을 세우자고 제안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제안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바른 전쟁은 있을 수 없다’와 ‘모든 전쟁은 악 그 자체다’라는 깊은 의미의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추도시설에는 일본의 ‘아군’과 ‘적군’은 물론이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관련해 희생된 모든 사람의 영혼이 모셔질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전쟁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아니라 부전(不戰)을 결의하고 다짐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내각에서도 논의가 됐던 이 제안은 정작 고이즈미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쓰에마쓰 의원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이 사업을 전면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다음과 같은 비전을 제시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동북공정에 따른 고구려사 왜곡 등 중국의 팽창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그런 중국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해야 한다. 사실 국제외교가에서는 미국의 적(敵)이 소련에서 ‘테러’로 바뀌었고, 이제는 테러에서 중국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미국 일극주의를 억제하려면 아시아의 한·중·일 3개국이 연대해야 한다. 유럽의 EU(European Union)처럼 아시아도 AU(Asian Union)를 만들어야 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