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 얼굴 대통령’ 원하신다고요?
[조찬강연 112] 김호진 세종대학교 이사장
“경제가 호전되면 박정희 향수는 사라진다. 누가 아무리 불러내도 그는 결코 관(棺)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호진 세종대 이사장이 2004년 한국정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논문의 한 대목이다. 이른바 대권주자들의 샅바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정치학회 회장 출신인 김 이사장이 <대통령과 리더십>이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 역대 대통령의 성장과정과 국가경영, 리더십을 분석한 이 책에서 김 이사장이 제일 먼저 꺼낸 화두는 ‘콤플렉스’였다.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살펴보고 내린 한 가지 결론은 정치인이 대권을 잡으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7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콤플렉스와 성취욕 △대의를 추구하는 열정 △리비도와 야성 △마키아벨리즘과 승부수 △시대를 읽는 눈 △기회를 잡는 결단과 용기 △이미지와 상황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콤플렉스를 강조하고 싶은데, 한(恨)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콤플렉스가 성취욕과 권력의지를 불타게 하는 원천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권력을 잡고서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실제로 어린 시절 불우하게 자란 닉슨은 콤플렉스가 심했는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분노의 질주’를 멈추지 않은 결과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을 삭이지 못한 결과 종국에는 ‘광기의 취객’처럼 휘청거리다 워터게이트의 수렁에 자신의 운명을 던지고 말았다.
“성경은 찬양 받아야 할 자는 ‘도시를 정복한 힘센 자’가 아니라 ‘자기를 지배하는 자’라고 했다. 이 논리를 빌리면 성공한 대통령은 ‘권좌를 정복한 힘센 자’가 아니라 ‘콤플렉스를 이긴 완성된 인격자’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충동적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말과 행동을 삼간다. 항상 이성이 깨어 있고 균형 감각을 지니고 있기에 사물을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책임윤리에 충실해 헛된 사욕이나 비리를 탐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지거나 오만하지도 않다. 겸손하면서도 원칙과 신념이 있어 한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 따라서 그는 적절한 때가 되면 역사에 남는 성취의 결실을 거둔다. 또한 막이 내리면 무대를 떠날 줄도 안다. 링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소년 시절의 링컨은 말 그대로 잡초 인생이었다.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자란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이런 시련 속에서 싹튼 콤플렉스가 그를 절치부심 노력하는 성취형으로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일단 대통령이 되자 링컨이 지금껏 자신의 정신세계를 속박해온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털어 냈다는 사실이다.
“링컨은 제일 먼저 정적인 윌리엄 수어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변호사 시절 자기를 ‘고릴라’라고 능멸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기용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명을 걸고 싸웠던 전쟁의 맞수 제퍼슨 데이빗 남부 대통령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은 한풀이를 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했지만 링컨은 결코 그런 속물이 아니었다. 스스로 콤플렉스 덩어리 그 자체였던 그가 콤플렉스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인격의 정체성을 되찾은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주변부적 체험이 콤플렉스를 낳고, 여기서 싹튼 성취욕과 권력동기가 대의에의 열정을 만나면 대권을 잉태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권을 잡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도 콤플렉스에 쫓기는 자는 영락없이 실패한 지도자가 되고, 용케도 그 굴레를 벗어 던지고 정서적 안정과 인격의 정체성을 찾는 자는 성공한 지도자가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진정한 승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미국 사우스 다코다의 러시모아 산에는 대통령 얼굴을 새긴 거대한 바위상(像)이 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네 명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성공한 대통령을 배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유념해야 할 명제는 따로 있다.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지도자를 갖는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정녕 큰바위 얼굴 대통령을 갖고 싶다면 먼저 우리 모두가 큰바위 얼굴 국민이 돼야 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김호진 이사장의 이력서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 미 하와이주립대 정치학 석사 및 박사
▲ 미 하와이주립대 정치학과 강사
▲ 고려대학교 교수, 노동문제연구소장, 노동대학원장, 명예교수
▲ 케임브리지대학 교환교수
▲ 베를린자유대학 교환교수
▲ 한국정치학회 회장
▲ 경실련 고문
▲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 노동부 장관
▲ 교육부 사학분쟁 조정위원회 위원장
상훈: 청조근정훈장
저서: 대통령과 리더십, 한국정치체제론, 노동과 민주주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