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전투적 노조’가 있을까
[조찬강연 113]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의 군살을 제거하자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995년 3.6% 수준을 유지하던 경상이익률은 2005년 6.5%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반면에 근로자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그 여파로 ‘내 회사‘ 의식도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1995년 인건비 비중은 12.6% 수준을 유지했으나 2005년 9.9%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른바 명예퇴직 형태의 고용조정이 업종이나 경기의 동향과 관계없이 유행처럼 일반화되고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활용이 점차 확대되면서 한국기업 특유의 공동체주의와 애사심도 약화되기 시작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고용불안이 일반화됨에 따라 근로자들이 단기적인 임금인상과 고용보호에 더욱 집착하게 된 배경도 잘 따져봐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잃어버린 10년‘의 늪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제시했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장기불황에서도 고용안정과 노사관계의 장기적인 신뢰, 철저한 현장중시,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부활을 도모할 수 있었다. 불가피한 인력감축의 경우에도 정리해고보다는 자연감소, 자회사 근무를 뜻하는 출향제도를 이용하여 고용을 최대한 유지했다. 예컨대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 회장은 1999년 <문예춘추>와의 대담에서 ‘정말로 부득이 해서 고용에 손을 대야 한다면 경영자 자신부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미식 경영방식을 받아들여 대규모 고용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재계일반의 여론이었다.”
이어서 오쿠다 회장은 “일본식 장기고용은 기술축적과 충성심의 확보라는 장점이 있고 안정된 노사관계의 유지는 고임금 하에서도 일본기업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갈파했다고 한다. 실제로 도요타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되어 세계자동차시장에서 곧 GM을 제치고 1위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경제 선도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단기수익과 주주이익 중심의 경영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엔론과 월드콤의 회계부정사건, 나이키 쇼크 등 일련의 사건이 그 계기를 제공했음은 물론이다. 1996년 <라이프>지가 나이키의 파키스탄 아동노동을 폭로한 이후 NGO의 불매운동이 전개돼 일시적으로 영업이익이 37% 하락했다. 나이키는 이를 계기로 자체 노동기준을 설정하고 M-Audit라는 자체 감사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실제로 나이키가 설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하청기업은 납품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나이키의 반성과 부활은 미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 투자의 규모를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 원장은 도요타와 나이키뿐만 아니라 사우스웨스트항공, 스타벅스, 교세라, 캐논 등 안정적인 고용보장과 지속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세계적 기업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경영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왔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이 일부 청중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한국의 ‘전투적 노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상황을 만든 책임이 노조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기업과 정부가 만든 사회적 분위기가 전투적 노조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고용보장에 대한 사회적 계약이 깨지면서 돈으로 결코 계산할 수 없는 노사간의 신뢰가 붕괴된 결과 화이트컬러 사이에선 기술유출과 금융사고가 빈발하고 있고, 블루컬러 사이에선 고공농성, 분신, 단식 등 1987년 이전의 투쟁방식이 부활하고 있다. 고용보장과 노사상생을 통해 경영혁신에 성공한 도요타도 사실은 1950년대 엄청난 노사분규의 진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질의 시간이 되자 당장 “친노조적 발언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최 원장은 작심한 듯 이렇게 답변했다.
“내가 오늘 노조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면 기업 경영을 하는 여러분들 중에서 몇 분은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의 문제나 폐해를 얘기하라고 하면 아마도 두세 시간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노조를 비판하는 발언은 노조 간부들 앞에 가서 해야 효과가 있지 않겠나? 오늘 경영자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나는 노동자들 앞에 가면 역시 쓴 소리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노사관계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을 어떻게 브랜드로 만들고 마케팅에 활용할 것인지는 경영자의 철학과 리더십에 달려 있다. 종업원의 목을 치려면 경영자가 먼저 할복하라는 오쿠다 회장의 외침을 잊지 말자.”
정지환 기자 ssal@ngotimes.net
최영기 원장의 이력서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미 텍사스 오스틴대 경제학 박사
▲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부원장
▲ 한국노동경제학회 부회장
▲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 대통령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 위원
▲ 재경부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위원
상훈: 동탑산업훈장
저서: 한국형 노사문화 정착과 복지국가(공저), 인적자원의 확충과 보호(공저), 한국형 노사관계 모델의 탐색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