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T강국으로 살아남으려면
권오현 삼성LSI 사장
“강진구-윤종용-진대제-황창규의 계보를 잇는 한국 IT업계의 뉴리더입니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시스템LSI사업부 사장을 소개하며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이 동원한 수사이다. 장 회장의 계속된 소개에 따르면, 권 사장의 집무실 벽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휘호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걸려 있다고 한다.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에 등장하는 ‘격물치지’는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권 사장은 강연이 시작되자 ‘높은’ 연단에서 내려와 ‘낮은’ 바닥에 선 채 시종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한국 IT산업의 오늘과 내일을 증언하고 예언했다. 그가 제일 먼저 던진 화두는 “한국은 과연 IT 강국인가?”였다.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통신/네트워크서비스, 사용자 등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 봐야 한다. 삼성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하드웨어 측면과, CDMA 세계 최초 상용화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24%)와 휴대폰 교체 주기 단축(미국과 유럽의 3분의 1)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분명 IT 강국이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강점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통신/네트워크서비스의 측면에서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 사장은 IT산업이 편리성(Mobile), 속도성(Broadband), 접근성(Network)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IT 제품은 ‘가격과의 경쟁’ 및 ‘속도와의 전쟁’을 회피할 수 없다. 실제로 IT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과 가격하락 주기는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
“예컨대 휴대폰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18개월에서 6개월로 짧아졌으며, LCD TV의 가격은 1년 사이에 절반 규모로 하락했다. 기존 TV의 경우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데 20년이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인터넷 유통혁신을 통해 PC시장을 제패한 DELL이 대형 컴퓨터에 도취돼 있던 IBM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도, 콘텐츠 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해 비약적 성장을 거듭한 애플이 워크맨에 매달려 있던 SONY를 앞지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또다시 IT산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쟁시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IT산업도 이제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 권오현 사장의 진단이다. PC시대, 모바일시대, 컨슈머모바일시대를 거쳐 새롭게 열린 유비쿼터스시대는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시장 창출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IT산업이 성공하려면 대략 3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을(What to do), 어떻게(How to do), 언제(When to do)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삼성은 1980년대 DRAM 개발에 인력과 자본의 90%를 집중시켰기 때문에 1992년부터 10여년 넘게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선 미세화 기술 확보가 성공의 열쇠로 작용하기도 했다. 타이밍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데, 삼성은 불황기에 투자를 했다가 호황기에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반복하며 급성장했다.”
권 사장은 “타이밍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최고경영자의 결단”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삼성의 성공 신화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아니 한국 IT산업은 이제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DRAM, SRAM, 플래시 메모리 등의 이른바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그것은 CPU, MCU, DSP 등의 이른바 비메모리(정확한 표현은 시스템LSI) 분야를 포기(?)한 대가로 세운 기록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분야의 시장 규모는 메모리 분야보다 3배나 크다. 한국은 전체 IT산업의 21%를 차지하는 메모리 분야에선 44%를 점유하고 있지만, 66%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선 2.8%만을 점유하고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한국 IT산업의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
한편 앞으로 4월 한 달 동안 진행될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일정, 주제, 강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4월 6일: 스포츠 마케팅으로 살아난 세계 최고의 브랜드 올림픽 이야기(마이클 페인 전 IOC 마케팅위원장)
△4월 13일: 한국산업의 발전비전 2020(송병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4월 20일: 식스시그마의 이해와 경영혁신 전략(차주현 식스시그마경영연구소 대표)
△4월 27일: 후진타오 주석의 리더십과 중국의 미래(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
(전화문의 02-2203-3500)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권오현 사장의 이력서
▲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 KAIST 전기전자공학 석사
▲ 미 스탠포드대 전기공학 박사
▲ 전자기술연구소(현 ETRI) 설계실 연구원
▲ 미 삼성반도체연구소(SSI) 연구원
▲ 삼성전자 메모리부문 64MDRAM 개발팀 이사
▲ 삼성전자 메모리 제품기술실 상무
▲ 삼성전자 시스템LSI 제품기술실 상무
▲ 삼성전자 시스템LSI ASIC사업부 전무
▲ 삼성전자 시스템LSI ASIC사업부 부사장
상훈: 삼성그룹 기술대상, 제6회 다산기술상, 석탑산업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