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될 뻔한 올림픽, 서울이 살렸다
마이클 페인 전 IOC마케팅위원장
마이클 페인 전 IOC 마케팅위원장(현 포뮬라원 부사장).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 서울총회 참석을 위해 방한 중인 그는 이 방면의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림픽을 가장 잘 아는 사람’ 혹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오른팔’로 통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올림픽과 IOC를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리소설처럼 역동적인 문체로 담은” 저서 <올림픽 인사이드>를 이번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올림픽의 위상이 매우 높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2008년 북경 올림픽도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다. 특히 2년 후 열리는 북경 올림픽의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자신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고, 20세기와의 완전한 결별과 21세기와의 새로운 조우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게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유치 성공에 이르기까지 모스크바, 마드리드, 파리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전 세계의 미디어제국들 역시 독점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격세지감. 페인 부사장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불과 25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세계적 문화유산인 올림픽이 지구상에서 거의 ‘멸종’될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올림픽의 위기는 세 가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 정치적 싸움, 대중의 무관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냉전이 최절정을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서방권과 공산권 국가들이 잇따라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다. 1980년 모스크바와 1984년 LA는 ‘반쪽 올림픽’이 될 수밖에 없었고, 대중의 관심은 갈수록 멀어져 갔다. 솔직히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재정적 어려움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적자를 계기로 회의적 분위기가 확산됐다. 오죽하면 1980년 IOC 통장에 남은 잔고가 20만 달러에 불과했다. 1984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 나선 도시는 테헤란과 LA가 전부였다. 그나마 테헤란은 이란혁명 때문에 유치 신청을 철회했으며, LA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80%가 올림픽 유치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올림픽은 처치 곤란한 골치 덩어리로 전락했다. “올림픽은 죽었다”는 부고기사가 나올 판이었다. 그렇다면 고사 직전의 올림픽이 부활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먼저 1980년 이뤄진 사마란치의 IOC 위원장 취임을 들고 싶다. 당시는 피에르 쿠베르탱에 의해 시작된 근대 올림픽도 약 1500년 동안 중단된 고대 올림픽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가 취임 2주만에 그만 두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여건과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장장 20년 동안 IOC의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죽어가던 올림픽을 되살려 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의 오른팔이 되어 마케팅과 경영 분야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기회이기도 했다.”
페인 부사장은 이어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기여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현대 올림픽의 부활사(復活史)에서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나라는 한국이었다”고 단언했다.
“서울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젖혔다. 멸종되어 가던 올림픽을 부활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실제로 속수무책으로 확산되어 가던 올림픽에 대한 각종 회의는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먼지처럼 사라졌다. 우선 ‘반쪽 올림픽’을 가능케 했던 서방권과 공산권의 경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나는 더 중요한 의미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매개를 통해 ‘KOREA’라는 국가 브랜드 마케팅을 가장 확실하게 성공시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이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차원에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림픽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각국의 치열한 올림픽 유치전과 방송 중계권 경쟁 등 마케팅에 분야에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새로운 덫과 함정이 생겨난 것이다.
“올림픽 정신과 상업주의의 경계에서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월드컵과 올림픽을 동일시하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왜냐 하면 올림픽은 경기장 내에서의 상업적 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성공을 도모하면서도 올림픽 정신을 지켜야만 올림픽은 멸종되지 않을 것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마이클 페인 전 위원장의 이력서
▲ 스포츠마케팅사 ISL 이사(IOC 마케팅 용역사)
▲ 올림픽마케팅 프로그램 ‘TOP’실행 책임
▲ IOC 초대 마케팅 이사(88서울올림픽 외 15회 동·하계 올림픽 개최)
▲ IOC 마케팅위원장
▲ 올림픽 글로벌 방송 및 뉴미디어 권리 담당 이사
▲ Formula One 회장 특별보좌역
▲ 2006년 Formula One 한국유치 추진 중
▲ 마케팅 미디어 전문잡지 <광고시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마케팅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