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청룡(중) 우백호(일) 경영하는 ‘매니저’ 되자
이종현 경북대 교수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허브가 돼야 비상할 수 있다. 동북아 허브의 성공 여부는 ‘세계 최대의 생산공장’인 중국과 ‘세계 최대의 R&D센터’인 일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네덜란드 개성상인’ 박영신 보나미텍스그룹 회장이 11월 11일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에서 강조했던 말이다. 그런데 11월 25일 조찬강연의 연사로 나선 이종현 경북대 전자전기컴퓨터학부 교수(사진)는 ‘대한민국 동북아 허브론’에서 한발 더 나아간 ‘좌청룡-우백호 매니저론’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은유와 상징이 총동원된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지금 아시아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빙하’가 녹아 내리고 있다. 그것은 동북아에 있어서 커다란 ‘기후변화’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후변화에 대비한 방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엄청난 ‘환경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나는 약 10년 전 한 국제 세미나 자리에서 ‘좌청룡 우백호 매니저론’을 주창한 적이 있다. 당시 청중의 절반은 웃었고, 나머지 절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여기서 빙하시대는 중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좌청룡과 우백호는 각각 일본과 중국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명당'(明堂)의 심장부에 위치한 한국은, ‘세계 최대의 생산공장’인 중국과 ‘세계 최대의 R&D센터’인 일본 사이에서, 동북아를 경영하는 ‘매니저'(manager)이자 ‘이노베이터'(innovator)가 돼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이어서 이 교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동북아의 외곽부대인 그들이 ‘두려운’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편안한’ 한국을 동북아의 매니저로 추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종현 교수는 ‘글로벌시대의 기술혁신과 국제협력’이라는 강연 주제에 걸맞게 글로벌시대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글로벌시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괴물’이 등장하면서 열렸다. 인터넷을 상징하는 ‘www’는 ‘world wide web’의 준말이거니와, 거미줄처럼 세계로 뻗어간 인터넷은 글로벌시대를 열어제친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 의해 개막된 글로벌시대는 우선 ‘동시성과 연동성의 시대’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위치와 신분에 따라 정보의 등급이 달랐지만 지금은 누구나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 김선일씨 납치사건 당시 국가보다 개인이 정보를 더 먼저, 더 많이 습득한 것이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지구촌이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글로벌시대는 ‘융합과 혼돈의 시대’로 설명할 수도 있다. ‘거번먼트'(government)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로 넘어가고 있는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도래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교수가 그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혁신과 신경쟁의 시대’이다. 그는 “혁신은 학습에서 출발한다”면서 “그 중에서도 집단학습(collective learning)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신경쟁은 기존질서의 대붕괴, 즉 뉴 패러다임의 창출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연장선 위에서 기술혁신과 국제협력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자연환경의 원리를 알아야 했듯이, 앞으로는 인조환경의 원리도 알고 살아야 한다. 르네상스, 산업혁명, 세계대전 등 인류의 역사는 사실 인조환경의 원리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혁신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미래전략을 짜야 한다. ‘국가 대 국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지역 대 지역’의 패러다임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도, 아시아사이언스파크협회(ASPA) 등 지역 차원의 기술협력을 통해 동반발전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