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 룰 어기면 망할 각오 해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일각에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에 대해 ‘기업 투자 의욕을 감소시키고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출총제는 한마디로 계열사간의 과도한 순환출자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줄여보자는 제도이다. 순환출자는 재벌그룹 총수가 계열사를 지배하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재벌그룹 총수의 실질 소유지분은 4%에 불과해도 계열사간 순환출자로 형성된 가공자본으로 무려 4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계의 검찰총장’으로 불리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의 음성과 발음은 일부 보수신문에 의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출총제를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자 좀더 높아졌고 정확해졌다. 강 위원장의 주장에 따르면 순환출자는 시장경제 원칙에 명백히 반하거니와, 그는 ‘순환출자의 3가지 폐해’를 설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첫째, 순환출자로 만들어지는 가공자본과 가공의결권은 다른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한다.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인 사유재산권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둘째, 재벌그룹의 순환출자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한다. 순환출자를 할 여력이 없는 독립 중견·중소기업은 공정한 경쟁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다. 셋째, 재벌그룹의 순환출자는 다른 계열사의 동반 부실화나 파산을 가져올 수도 있다. 1∼2개 계열사의 부실이 언제든지 그룹 전체는 물론이고 금융시장의 부실로 확산될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국가 전체의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순환출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도입하는 출총제가 자칫 계열사→그룹→금융시장→국가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위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명답’이라는 게 강철규 위원장의 주장이다. 사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이미 순환출자의 가공할 위험성을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30대 재벌 중 16개 재벌이 해체되거나 퇴출되었다. 그리고 이를 회생시키기 위해 약 165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것이 모두 국가와 국민의 엄청난 부담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전환기에 선 한국경제는 지금 발상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정부 주도로 한정된 자원을 특정 집단에 집중 배분하는 개발연대의 패러다임으로는 한 발짝도 선진경제로 나아갈 수 없다. 연구개발 투자확대를 통한 기술혁신과 인적자본의 확충, 성숙한 시장경제 시스템의 구축, 대외개방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 등이 절실하다.”
강철규 위원장은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에 걸맞게 정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것은 경제정책의 기조가 ‘정부주도형’에서 ‘시장중심형’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국민의식의 변화도 아울러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구시대의 가치와 새시대의 가치가 혼재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예컨대 평소에는 시장의 자율 기능을 강조하다가도 경기가 조금이라도 부진해지면 정부가 개입해서 부양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으로는 시장경제와 공정경쟁을 주장하면서도 개발연대 당시의 지원과 특혜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말끝마다 대외개방의 불가피성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을 외치면서도 정작 교육, 보건·의료, 법률 등의 분야에서는 자신들만은 예외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한다.”
강철규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보다 성숙하고 선진적인 시장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경기규칙(rules of the game)’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경기규칙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물경제 현장에서 이를 저해하는 모든 행위와 구조를 과감히 개선하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탄생 배경과 존재 이유일 것이다.
“공정거래위의 최고 목표는 투명경영과 공정경쟁을 통한 시장기능 활성화에 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가격담합이나 입찰담합 등 카르텔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할 경우 과징금을 물릴 때 우리나라의 부과한도는 지금까지 ‘관련 매출액’의 5% 수준이었다. 반면에 EU는 ‘전체 매출액’의 10%, 미국은 부당이득의 2배(관련 매출액의 20%)에 이른다. 거기에는 시장경제의 경기규칙을 위반하면 기업이 망해도 좋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을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좌파정책이나 분배정책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시장경제의 경기규칙을 바로 세울 때 도리어 한국경제는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있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