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햄버거에 관한 명상
이철우 롯데마트 대표이사
기자가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11일부터였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모두 50회에 걸쳐 강연 내용을 보도하는 일을 해 왔다. 다른 자리에서도 고백한 적이 있지만, 기자가 이 조찬강연의 ‘개근생 매니아’가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93회(금주 기준)나 강연을 진행해 온 ‘성실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끈기와 소신의 미덕을 가르쳐주신 장만기 회장과 양병무 원장 등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변함 없이 독자들에게 ‘새벽을 여는 강연’을 ‘싱싱하게’ 배달해 드릴 것을 아울러 다짐한다.
각설(却說)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앞에서 잠시 ‘배달(配達)’ 얘기를 언급했거니와, 공교롭게도 이번 조찬강연의 주제가 바로 ‘유통(流通)’이다. 실제로 이날 이철우 롯데마트 대표이사가 ‘유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재양성의 과제’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이 사장은 30여 년 전 일본에서 만났던 어느 백화점 여성 판매원을 추억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에 공부하러 갔다가 귀국을 앞두고 지인에게 선물할 몽블랑 만년필을 사기 위해 다카시마 백화점에 들렀던 일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찾던 만년필은 품절된 상태였는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몇 번이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몸둘 바를 몰라 하던 여성 판매원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게 아닌가. 나중에야 그녀가 길 건너편에 있는 마루젠 문구점에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그 판매원의 소개로 그곳에 가서 원하던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손님이 찾는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쟁사에까지 전화를 걸어주는 그 판매원을 보며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서비스 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 유통시장의 34%를 장악해 수위를 지키고 있는 롯데쇼핑㈜에는 백화점, 마트(할인점), 수퍼, 식품, 시네마 등 모두 5개의 사업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철우 사장이 CEO로 활약하고 있는 롯데마트가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롯데가 유통산업의 선도자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그 바탕에는 고집스러울 정도의 서비스 정신, 즉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인재육성 철학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롯데마트의 인재상(人才像)은 ‘변화를 선도하고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소양과 능력을 동시에 보유한 인재를 키우고 있는데, △고객에게 보다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인’ △지속적 학습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문인’ △창의적으로 변화를 주도하여 시장을 선도하는 ‘창조인’ △기본에 충실하며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도전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현장/실무중심 △도전/실전 △공동체 의식 공유 등 3가지 키워드를 강조하고 있으며, 사고전환→자신감 회복→실전을 통한 경쟁력 제고라는 단계별 인재육성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정신에 입각한 인재육성 마인드는 이철우 사장이 롯데리아 CEO로 활동하던 5년 동안에도 유감 없이 발휘됐다. 그가 롯데리아로 부임한 것은 IMF 사태로 경영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던 1998년 2월. 그러나 롯데리아는 도리어 라이스 버거, 김치 버거, 라이스+김치 버거 등 소비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공세적인 판매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맥도널드, 버거킹, KFC 등 외국계 패스트푸드 업체를 압도할 수 있었다.
“롯데리아에는 어린이들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어린 손주의 손을 잡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마땅하게 잡수실 수 있는 제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손자나 손녀가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것을 우두커니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냥 가기 일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다가도 대학에만 들어가면 외국계 패스트푸드로 바꾸는 경향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도 쌀 소비가 줄어들 때 발상을 전환해 라이스 버거와 김치 버거를 잇따라 개발하자 매출이 폭발적으로 신장했다.”
CEO에서 판매원까지 회사 구성원 개개인이 ‘서비스인’이자 ‘전문인’이자 ‘창조인’이자 ‘도전인’으로 변신할 때 기업의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이철우 사장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롯데마트가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계장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실시하기 시작한 ‘국사고시제(國史考試制)’가 유통시장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