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이 헌법정신과 거리가 멀다?
이석연 헌법포럼 상임대표
언론계에 조갑제 씨라는 분이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월간조선 2000년 5월호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1인당 주민소득(GDP)은 2백∼3백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올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등을 팔아서 올릴 순이익과 비슷하다. 작년 인구 30여 만의 경북 구미시는 1백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했다. 이것은 북한 수출액의 다섯 배를 넘는다. 작년 연평도 해전에서 확인되었듯이 재래식 군사력에서도 북한은 우리의 상대가 못 된다.”
언필칭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북한은 남한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논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변을 토했던 조 씨는 바로 한달 뒤 같은 매체에서 전혀 딴소리를 했다.
“저는 머리 속에 있는 메모장에다가 저에게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두고 있다. 만약 김정일이 기습공격에 성공하여 서울 포위에 성공한다면 저런 사람들이 나서서 ‘김정일 장군님을 자극하지 말자. 평화를 위해서 저항도 하지 말자’라고 설득하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런 걱정을 저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상대가 못 되는’ 상대가 어떻게 ‘기습공격’에도 성공하고, ‘포위작전’에도 성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두 개의 엇갈린 글을 보면서, 당시 기자는 ‘모순(矛盾)’이라는 고대 중국의 고사성어를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법조계에도 조갑제 씨를 닮은 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헌법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석연 변호사 역시 ‘모순’의 화법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북한을 “수백만 명의 인민을 굶겨 죽인 세계 최빈국이자 소멸된 체제”로 규정하고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는 안보불감증이 헌법의 위기를 초래”한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10대 경제 대국의 꿈을 성취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왜 고작 “세계 최빈국이자 소멸된 체제”인 북한과의 대립구도에서 찾겠다는 것인지 딱해 보였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가주의’보다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옹호하는 ‘개인주의’에 입각해 있다고 스스로 강조하고도 잠시 후 국가안위를 위해서는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도 참으로 절묘한(?) 논리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전북에 있는 상산고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상산고는 자립형 사립고인데 강연을 듣는 학생들의 눈동자가 살아 있었다. 그들에게는 전국에서 선발된 수재라는 자부심과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기득권층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폄하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분위기는 사회의 역동성을 해친다. 마찬가지로 전 국민을 하나의 연대집단으로 묶는 의료보험이나 연금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 역시 국민생활의 상향적 조정을 기하고 있는 헌법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타고난 능력과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적 하향 평등주의로 나가고 있는 고교평준화 같은 교육정책 역시 반(反)헌법적이다.”
의료보험은 헌법정신과 거리가 멀고, 고교평준화는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이석연 변호사. 일반인의 상식적 판단과 한참 거리가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그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핵심의 헌법경시가 국가위기를 부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런 그에게 헌법과 그 정신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고정불변의 절대진리인 셈이다.
그러나 그 원칙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민주화 정신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은 그에게 못마땅하기 그지없는 경시(輕視)의 대상일 뿐이다.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그때 그때 달라요”식 논리인 셈이다. 하기는 자신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인식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을 ‘신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말했으니 참여정부를 좌파정부로 봐야 하지 않겠나.”
한편 앞으로 8월 한 달 동안 진행될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일정, 주제, 강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8월 3일: 한국진출 외국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 배운다-모토로라, 도요타 렉서스 사례를 중심으로(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
△8월 10일: 원칙 중심의 경영으로 성공한 기업 이야기(김경섭 한국리더십센터 대표)
△8월 17일: 소셜 디자이너, 희망제작소가 꿈꾸는 한국의 미래상(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8월 24일: 21세기 국제질서와 우리의 외교과제(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8월 31일: 상생과 배려의 리더십-군경력 40년 체험을 중심으로(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 원장)
(전화문의 02-2203-3500)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이석연 변호사의 이력서
▲ 전북대 법학과 졸업
▲ 서울대 법학 박사
▲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 법제처 사무관, 법제관
▲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감찰위원
▲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사무총장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장
▲ 동국대 겸임교수
▲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 21세기 비즈니스포럼 공동대표
저서: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헌법재판소 판례총람, 헌법등대지기(수필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