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 키스도 해 봤다고요?
전순표 (주)세스코 회장
2000년 9월 6일 오후. ‘쥐와 개미와 바퀴벌레를 잡는 회사’ ㈜세스코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문을 연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다음과 같은 괴상한 내용이 담긴 메일 한 통이 Q&A 코너에 도착했다.
“나는 바퀴벌레를 먹는다. 아주아주 맛있다. 그 씹히는 맛이 달콤한 바퀴벌레! 나는 그 맛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또 나는 모기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쥐와 키스도 해봤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 ‘장난 메일’ 한 통이 세스코의 사이버 운명을 바꿀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닥쳐오기까지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묘약(妙藥)이 필요했다. 게시판 운영을 맡고 있던 세스코 기술연구소에서 누군가 이 ‘장난스런 질문’에 다음과 같은 ‘진지(?)한 답변’을 했던 것이다.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퀴, 모기 등의 해충은 고단백질로 영양가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원균은 수십 종으로 사전 처리를 잘 하고 드셔야 합니다. 행운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질문과 답변이 우연히 포털사이트 유머란에 올려졌고, 네티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스코 홈페이지는 현장(?)을 확인하려는 방문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그들에 의해 상상을 초월하는 패러디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인이란 해충은 어떻게 처리하나요?”라는 질문과 “해충을 박멸하려면 사전조사가 필요하니 샘플 한 마리를 잡아서 보내주기 바랍니다”라는 답변도 그 중의 하나였다.
100명, 1,000명, 10,000명, 100,000명, 200,000명…. 하루 30∼40명에 불과하던 일개 방역회사의 홈페이지 방문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당시 세스코에 관한 기사(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리면 100% 성실하게 답변하는 ‘고객만족경영’의 전형으로 보도됐다)는 거의 모든 일간지에 실리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종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월간지와 여성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도 세스코는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화두이자 아이콘이었다.
“어느 정도 거품이 빠진 뒤에도 여전히 회원 1만명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최초의 기업 팬클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당시 세스코가 거둔 기업 광고 효과가 300∼400억원 대에 이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선 안될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우연하게 얻은 행운과 성공이란 결코 없다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연한 성공조차 준비한 자의 몫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좋은 인연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조찬강연 공동강사로 나선 세스코의 전순표 회장과 전찬혁 부사장 부자(父子)의 선언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세스코 신화는 두 사람의 합작품인데, 물론 창업과 수성은 아버지인 전 회장의 몫이었다.
“농과대를 졸업하고 농림부에 취직해서 미곡 창고를 관리하던 중 귀중한 식량의 무려 10분의 1일이 쥐들에게 먹힌다는 사실을 알았다. 1960∼70년대 전 국민이 참여했던 쥐잡기 행사, 특히 그 중에서도 ‘쥐꼬리 모으기 운동’은 나의 작품이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쥐 방제 연구로 아예 박사 논문까지 취득, 명실상부한 ‘쥐 박사’가 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방역회사인 전우방제가 설립된 것은 1976년 8월의 일이었다. 자본금 300만원에 직원이라고 해봐야 아내와 남자 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나는 방제사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우물 경영을 통해 회사를 키워온 것이 전순표 회장의 몫이라면,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 것은 전 회장의 차남인 전찬혁 부사장이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시절 오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아르바이트생으로 현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쥐를 잡는 것으로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유학도 포기한 채 세스코에 입사해 4년 동안 가장 낮은 곳에서 현장을 체험한 뒤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
“서비스 기업에는 4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분명한 서비스 전달시스템 구축, 철저한 MOT(Moment of Truth) 관리, 철저한 품질관리, 철저한 피드백 시스템 완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세스코 통합전산시스템, 즉 ‘세스넷’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반드시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스템 구축과 혁신 못지 않게 기업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존경과 칭찬의 기업문화였다. 그러자 3D업종에서 첨단기업이 창조됐다. 앞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사이버 혁명도 바로 그 산물임은 물론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