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총 1546회… ‘공부하는 CEO’ 산실
“나라 살리려면 기업인부터 지식 무장을”… 강사진도 스님·목사·정치인 등 망라
▲ 인간개발연구원 조찬모임에는 기자들의 자리도 따로 마련돼 있다. photo 인간개발연구원 1975년 2월 5일 오전 7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 30여명이 원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았다. 행사명은 사단법인 인간개발연구원 주최 ‘제1회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간단한 아침식사 후 오상락 당시 서울대 경영대학원장 등 3명이 강의를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주최 측이나 참석자 중 어느 누구도 이 모임이 33년간이나 지속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인간개발연구원은 한국능률협회와 함께 우리나라 조찬문화의 기틀을 마련한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인간개발연구원 조찬모임은 1975년 월례 행사로 출발, 1978년 주1회 개최로 방침을 바꾼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매주 목요일 아침을 열어왔다. 올 4월 말 현재 총 누적횟수는 1546회. 4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지난 24일엔 동기 부여 강연 전문가로 이름난 릴랙세이션센터 창립자인 마이크 조지를 초청, 롯데호텔에서 모임을 가졌다.
인간개발연구원 조찬모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장만기(72) 회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1970년대 중반, 혈기왕성한 30대 대학교수였던 장 회장은 6·25 전쟁 이후 국고가 텅 빌 정도로 빈곤에 허덕였던 당시 국가 사정을 접하며 느낀 바가 컸다. “나라가 살려면 일자리 창출과 외자 유치가 절실하다고 생각했어요. 미국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에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요. 빠른 성장을 이루려면 우선 기업인부터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일단 산학협동 차원에서 기업인과 대학교수들을 한자리에 초청해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 해서 시작된 게 조찬모임이었고요.”
대부분의 조찬모임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데 반해 인간개발연구원은 순수하게 회원들의 연회비만으로 꾸려지는 비영리단체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non-profit)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으며(non-religious)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non-political)’는 원칙은 연구원 설립 이후 지금껏 고수해오고 있는 철학이다. 이 때문에 연구원 조찬에 초대되는 강사진은 기업인은 물론 목사와 스님, 여당 정치인과 야당 정치인을 망라한다.
역사가 오래다 보니 이야깃거리도 많다. 1988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에서 돌아온 직후 우여곡절 끝에 연구원 조찬 무대에 올라 정치 복귀를 선언했으며,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던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선거운동 당시 강사로 초청돼 강의를 하다 시간에 쫓겨 대변인에게 질의응답을 맡긴 채 공항으로 향했다. 김동기 고려대 명예교수와 송자 전 연세대 총장 등 10회 이상 강단에 선 ‘단골 강사’도 탄생했다. 연구원은 그간 조찬모임을 거쳐간 주요 강사들의 메시지를 모아 2006년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101인이 들려주는 성공비결 101가지’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장만기 회장은 인간개발연구원의 노력을 계기로 조찬문화가 활성화된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지식중심사회로 나아가는 데 우리 조찬모임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각 대학의 최고경영자과정도 저희 모임이 자극제가 돼 개설된 경우지요. 실제로 저희가 자문역을 맡기도 했고요. 요즘은 정부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까지 너도나도 조찬모임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공부하는 사회’가 된 거지요.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33년간 해외 출장 등 불가피한 몇 번을 제외하곤 항상 직접 참석해 사회를 봤다”며 “너무 장기 집권해 밑에서는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힘 닿는 한 조찬모임을 이끌어갈 생각”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