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미토모 은행의 최연소 임원과 부행장을 거쳐 아사히맥주 신화의 주인공이자 오부치총리의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전략자문회의 히구치 히로타로(74)의장이 9일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최창락)주최의 ‘한·일경제협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히구치 의장은 1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방문,오부치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히구치 의장을 만나 일본경제와 한·일경제협력 방안등에 대해 들었다.
-총리자문기구인 경제전략자문회의는 무슨 일을 하나.
“도요타 자동차의 히로시 오쿠다 사장등 기업인들과 대학교수들 9명이 부의장을 맡고 있다.98년 11월17일 경제회복 시나리오를 주제로 첫 회의를 연 뒤 경제 사회개혁 문제를 주제별로 나눠 20여차례 회의를 열었다.민간경제단체 경제연구소의 의견과 시민들의 편지, E메일, 팩스밀리 915통도 참고,지난해 2월 총리에게 ‘일본경제 재생전략’이라는 리포트를 냈다.”
-‘일본경제 재생전략’의 내용은 무엇인가.
“모두 234개의 제안이 담겨있다.2003년까지 공무원을 25% 감축하고 3260개의 지방 행정단위를 1000개로 줄이는 등의 ‘작은 정부’안이 포함돼 있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토지를 매각해 재정상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교도소를 민간이 지어 정부에 임대해주는 방식 같은 ‘민간주도 재정(Private Finance Initiative)’안도 내놨다.정보통신등 뉴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줘 육성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많은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들도 있다.”
-정부에서는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나.
“각 행정부서에서 제안중 63%를 시행하고 있다.야당에서도 정책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경제는 회복조짐을 보인다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경제 전체가 재생되려면 10년이 걸리겠지만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97년과 98년에 2%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3년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있었다.일본경제의 침체는 거품경제 붕괴 이후의 본격적인 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더욱이 어느 선진국도 경험하지 못했던 출산율 급감,고령화는 전후 일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시스템에 오히려 족쇄가 됐다.그러나 2007년부터 인구가 다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경제 전체도 2008년까지는 회복될 것이다.”
-경제회복의 주축은 무엇인가.
“역시정보통신(IT),바이오산업,벤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일본경제를 이끌어왔던 전통산업들은 어떻게 되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역시 철강 화학 자동차등과 같은 산업이다.그 위에 벤처가 있는 것이다.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은 경제의 부양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또다른 거품(버블)이 될 우려는 없나.
“버블은 토지,부동산에 형성되는 것이다.벤처기업의 주가는 미래의 기대이익에 따라 올라간 것이다.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밭(田)이 생긴 셈이다.”
-한·일간의 경제협력이 무역불균형 심화,한국경제의 종속화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은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한국경제는 매우 강하다.”
-어떤 경제협력 방안을 생각하나.
“IT,바이오 분야의 기술 교류를 위해 양국의 대표들이 교류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주식시장을 개방해서 서로 투자하는 방식도 모색할 수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때 아시아통화기구(AMF)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일본이 AMF를 만들려고 했는데 미국이 반대하는데다 한국등 아시아국가들의 강력한 지지도 없었다.장래의 또다른 외환위기에 대비해 이같은 기구가 필요하다.사무국은 한국에 둘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그룹들이 계열사를 줄이는 ‘재벌개혁’정책이 진행되고 있다.일본에도 수십개의 계열사를 둔 그룹들이 많은데.
“일본에서 재벌은 50년전에 사라졌다.그룹은 미국에도 있다.일본의 그룹 계열사들은 조금씩 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같은 계열사라도 전부 경쟁회사다.내부거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본기업에서 사외이사 비중은 얼마나 되나.
“나도 여러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대략 대기업 이사회에서 3분의 1정도가 사외이사다.”
-아사히 맥주 사장을 거쳐 명예회장에 오르기까지 시장점유율 10%아래의 일본내 맥주시장 점유율을 일약 1위(44%)로 도약시켰는데 비결은.
“생산된 지 오래된 맥주는 모두 버리고 생산된 지 1주일 이내인 신선한 맥주를 소비자들이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 주효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할 오부치 총리의 친서내용은.
“친서란 원래 전달하는 사람도 모르는 것 아닌가.(웃음)”
<최형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