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사회, 인물] 2003년 07월 22일 (화) 17:12
오랫동안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을 연기했던 탤런트 최불암 씨(63) 가 최고경영자(CEO)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인간개발연구원이 주최하고 매일경제가 후원한 ‘밀레니엄 경영자 제 주 서머포럼’ 둘째날인 21일 저녁 행사에서 100여 명의 CEO와 가족들 앞에 선 그는 참된 한국인의 모습을 선굵은 연기로 보여준 자신의 노 력과 한국 방송의 문제점을 솔직히 표현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최씨는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장수 프로그램 ‘수사반장’ 이야기 로 강연을 시작했다.
“당시 한 경찰이 ‘당신네들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할 수 있게 됐다’ 고 말한 게 기억납니다.”
수사반장이 처음 시작된 70년 직후만 해도 경찰들이 결혼 상대자로 기피되던 시절. 수사반장의 히트로 경찰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한다.
최씨는 자신이 14대 국회의원이던 92년 당시, 학원폭력이 심각한 지 경에 이르러 사회적 문제가 됐던 이유를 파헤치기도 했다. 조사결과 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모래시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수사반장’과 ‘모래시계’의 예에서 보듯 TV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은 막강하다. 최씨는 “TV는 교육과 문화, 심지어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한다.
최씨가 바라보는 현재 TV의 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 방송은 돈의 논리만 따라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청률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무조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률을 높여 수십억 원씩 기업의 지원을 끌어오는 사람이 유능한 제작자로 인식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고백한다.
“현재 방송이 우리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 혼란에 대한 큰 책임을 지 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뉴딜’ 정책 추진 과 함께 문화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도록 지시하면서 “나는 잘사는 미국을 만들기 이전에 바람직한 미국인을 만들어야 겠다”고 강조한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루스벨트의 정신적 뉴딜 정책의 원칙은 프런 티어 정신과 정의로움.
이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데는 뉴딜의 정신적 측면이 컸다는 말이다. 그는 TV가 우리의 정신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 을 숨기지 않았다. 최불암 자신의 연기 인생도 일관되게 그런 의지 속에서 계속됐다.
“연기생활 40년 동안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 한국인’이었 습니다.”
최씨는 “세계화 시대에 어떤 모습이 우리 모습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면서 “질박한 도기 그릇 같은 모습을 지닌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정 의했다.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이 한국인이며 인내와 끈기가 어떤 나 라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한국인”이란 것이다.
강연 끝머리에 최씨는 90년대 초반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의 한 편을 소개했다. 63빌딩 꼭대기에서 친구와 탁구를 하던 최불암이 실 수로 공을 1층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씩씩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주 워와서는 하는 말.
“1대0.”
최씨는 이 이야기에 깊은 의미가 담겼다고 말한다.
“언제나 ‘내가 이겼다, 네가 졌다’고 서로 우기며 싸우는 지금 세태 와 비교되지 않나요?”
<제주 = 조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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