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경제, 고(苦)해도 고(Go)해야”
유장희 이화여대 대외부총장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83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의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황장엽에서 박노해에 이르기까지, 강사진의 사상적 스펙트럼도 광범하고 다양합니다. 정지환 기자가 강연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하는 한편 중간에 약간의 양념(?)을 쳐서 내어놓는 ‘새벽을 여는 강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2004년 세계경제 동향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내수소비와 설비투자에서 호조를 보인 미국은 예년의 평균 성장률 2%를 훨씬 넘어선 4.4%를 기록했고, ‘잃어버린 10년’의 굴레에 발목이 잡혀 있던 일본마저 소비부진이 완화되면서 4.1%의 성장률을 보였다. 중국은 정부의 과열경기 진정정책으로 증가세가 약간 둔화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높은 투자열기 덕분에 9.1%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고성장을 지속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4.7%의 성장률에 머물러 상대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유장희 이화여대 대외부총장(사진)은 각종 거시경제 지표를 동원해 가면서 2004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동향을 회고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출(27.6%) 등 무역부문에서의 ‘괜찮은’ 호조에도 불구하고 평균치(12%)를 훨씬 밑도는 설비투자(4.5%)와 평균치(4.8%)를 훨씬 웃도는 청년실업률(7.3%)이 비관적인 ‘저속성장’의 대표적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저속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부총장은 △산업구조의 선진화 미흡 △고기술산업의 발전 지연 △노사갈등의 심각성 여전 △금융부문의 불안과 저효율 △여전히 심각한 정부규제 △이념갈등 등 6가지의 장기적 원인과 △참여정부의 정책방향 불명 △정책수행의 제도적 장치 불비 △반(反)기업 정서 △신용불량자 급증 △대(對)기업 여신의 냉각 △중국의 급부상 △수출과 고용의 괴리 등 7가지의 단기적 원인을 제시했다.
“우선 산업구조의 선진화 미흡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63.6%에 머물고 있는 서비스업 고용 비율이 선진국 수준(미·영 75%)까지 가야 한다. 성장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제조업도 새로운 첨단산업이나 서비스업과 연계하거나 접목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등의 변신을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고기술산업의 발전 지연도 하루빨리 타개해야 할 과제인데, 실제로 디스플레이(91%), 2차 전지(91%), 반도체 소재(90%), DVD(70%), 산업용 로봇(65%), 휴대폰(50%) 등의 경우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유 부총장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정부규제도 지적했는데, 특히 규제 관련 행정 업무의 일선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의 능력 부족을 질타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최근 한 중소기업에서 국제공항의 입국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다. 입국자의 홍채(虹彩)와 지문(指紋)을 인식해서 여권을 발급하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9·11테러 등으로 안전과 보안이 가장 중시되는 상황에서 상품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그러나 이 뛰어난 기술이 관련법의 법조문만 고집하는 공무원에 의해 무시당하면서 사장되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국에서 ‘퇴짜’ 맞은 이 기술을 개발한 실무자가 일본항공(JAL)의 초청을 받음으로써 고급기술이 국외로 유출될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유 부총장은 여러 가지 문제와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희망마저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한 인력 △불굴의 도전정신 △정보화사회 구축 △지자체 운영의 역동성 등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로 들었다.
“황우석, 윤송이, 조수미, 박찬욱, 배용준 등이 상징하듯이 한국은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 청소년 지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오죽하면 피터 드러커가 ‘인력 면에서만 보면 한국은 21세기형 선진국’이라고 했겠는가. 중국에서 기업 이미지 브랜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 최대의 LCD 화면을 개발한 LG전자가 잘 말해주듯 불굴의 도전정신도 한국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잠재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상을 전환해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을 ‘민영공화국(民營共和國)’으로 발전시킨다면 2005년 한국경제가 아무리 고(苦)해도 고(Go)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앞으로 신년 1월 한 달 동안 진행될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조찬강연의 일정과 주제와 강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1월 6일: 신년하례특강-세계경제의 환경변화와 한국경제의 방향(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 △1월 13일: 조직문화 혁신과 버츄 감성리더십 프로그램(린다 캐벌린 포포프 버츄프로젝트 창시자) △1월 20일: 국가경영과 경영인의 법의식(김승규 법무부 장관) △1월 27일: 동아출판사 창업이야기 그리고 100살에 도전하는 건강신화(김상문 동아출판사 창업주) (전화문의 02-2203-3500)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