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시사항 번호붙여 관리하는 이유
김병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어린 시절에 ‘암흑가의 두 사람’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 장 가방이 이런 인상적인 독백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오해와 억측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 요즘 그 독백의 의미를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갖가지 오해와 억측이, 실제로는 일부 언론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여과와 검증도 없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 한 외국 학자가 청와대 내부와 관련해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함부로 내뱉은 발언이 버젓이 일부 한국 신문에 실리고 있다.”
김병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신문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한다. 물론 신문에는 도움이 되는 지적이나 건설적 비판도 실리곤 한다. 그러나 ‘이건 너무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보도나 논평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몇 달 전 어느 신문이 국책사업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곧 엄청난 부채를 짊어지게 될 것이라 보도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 보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사의 제목만 본 국민들은 얼마나 놀랐을 것이며, 또 얼마나 정부를 욕했을 것인가. 관계기관에서 이미 수십 번 설명을 했음에도 어떻게 해서 그런 기사가 나올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것은 뉴스위크 등 외신이 이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고, 이를 최초로 보도했던 신문은 이를 다시 ‘믿을 만한 외신 보도’로 재인용해 한번 더 기사화 했다는 점이다. 결코 그냥 한번 웃어버리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김 실장은 정부가 잘못한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언론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수많은 오해와 억측도 사실은 이러한 일부 신문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따라서 그가 노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을 당시의 사연을 소개함으로써 그 오해와 억측을 풀려고 시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노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1993년이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던 노 대통령의 요청으로 지방자치 특강을 끝낸 뒤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중앙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이해와 상충한다고도 볼 수 있는 분권과 자율을 주창하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노 대통령은 지방화를 통한 국가운영체제의 혁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부활을 설파했는데, 당시 어느 정치인도 그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인터넷이라는 말이 통용되지도 않던 199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를 통한 정보화’가 정치인과 대중을 직접 연결해 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돈과 조직이 없이도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강력한 실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김 실장은 노 대통령이 그런 측면에서 분명하게 강점을 지니고 있는 지도자라면서 참여정부 출범 직후 노 대통령이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했던 사항을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행정자치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행자부가 운영하는 특별교부세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할 것을 지시했다. 특별교부세는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교부하는 자금으로 그 규모가 약 1조2천억원에 이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영향력 있는 지역구 의원에게 ‘선물’을 주거나 지방자치단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운영돼 왔던 일종의 ‘주머니 돈’이나 ‘통치자금’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것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검찰과 경찰 등 ‘힘있는’ 국가기관을 ‘권력의 기구’에서 ‘국민의 기구’로 돌려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김 실장은 노 대통령이 앞으로도 ‘분권과 자율의 원칙’과 ‘시스템에 의한 국가 운영’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력을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치’의 시대를 열기 위한 기반을 계속 다져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기록’이다.
“참여정부는 각종 회의를 포함하여 대통령과 정부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 하나하나에 코드 넘버를 붙여 관리하고 있으며, 정책 관련 자료에도 작성배경과 보고과정 등을 자세히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먼 훗날 이들 자료는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이 제시했던 비전이 과연 무엇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일부 신문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져 돌아다니는 왜곡된 정보들이 여론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이러한 왜곡된 정보들이 아니라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 기록되고 있는 자료들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