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육사 도서관서 만난 나의 조국
이성용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
이성용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기업혁신 컨설팅 회사의 CEO이자 <한국을 버려라; Korea Discount>의 저자인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도미(渡美)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 동참했지만 민정복귀를 주장하다 상처받은 ‘강직한 군인’들이 걸어야 했던 운명적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인생은 아버지의 인생일 뿐, 이성용은 조금의 구김살도 없이 ‘얼굴이 노란 미국인 소년’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미 육군사관학교(West point) 우주공학과 수석 졸업, 남가주대(USC) 정보기술 석사학위 취득, 하버드대 MBA과정 수료, 미 항공우주국(NASA) 시스템 엔지니어, 미 국방부 IT조달 컨설턴트이자 EDS 컨설턴트 등의 궤적이 말해주듯 그는 숨가쁘게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왔다.
그렇게 잘 나가던 이성용이 10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때 백악관에서 근무하며 파월 장군을 보좌한 경력이 있으며 주한미8군 청와대 연락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그는 현재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이자 베인&컴퍼니 글로벌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동북아시아 IT 부문과 한국 금융 서비스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유년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던 대한민국에 다시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웨스트포인트 재학 시절 나는 도서관에서 책 읽은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군사서적이 가득했던 그곳 도서관에 민간 도서관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한국 관련 문서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문헌들을 뒤지다 보니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펼쳤던 군사활동에 대한 기록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작업에 깊이 빠져들었고, 역사는 어느덧 일제시대를 거쳐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1900년대 초반 미국에 당도한 한 무리의 한국인들에 관한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한국에서 온 자유 투사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그들은 이승만보다 최소한 반 세대 가량을 앞서 살았으며,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한 그들은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채로 회의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대다수 미국인들은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한 기자만이 ‘한국에서 온 자유 투사들’에 주목했다. 당시 기자는 그들에게 받은 첫인상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들의 생김새와 복장은 매우 낯설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자기 나라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만약 그 나라 백성들이 모두 이들과 같다면 한국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 구절은 미 육사 생도 이성용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그 순간을 계기로 이성용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라의 독립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생명을 내걸고 머나먼 이역까지 달려왔던 선조들의 숭고한 조국애를 너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받은 감동은 웨스트포인트에서 훈련받은 의무와 명예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한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회의장에 나온 선조들의 모습이 담긴 빛 바랜 사진을 보면서 나는 웨스트포인트 도서관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약 1백년 전 선조들이 방문했던 미국에서 이성용은 거꾸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의 ‘한국 사랑하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의 ‘한국 사랑법’은 독특하거니와, “한국과 한국인이 살아남기 위해선 한국을 버려라”라고 쓴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버려야 할 한국’이란 우리의 잘못된 관행과 습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가 <한국을 버려라>에서 던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15개의 질문은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1. 당신에겐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이 있는가?
2. 잭 웰치는 결코 한국에서 태어날 수 없다?
3. 왜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집착하는가?
4. 나라 밖 언론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5.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6. ‘갑’의 한마디면 불가능은 없다?
7. 일기예보 말고는 아무 것도 못 믿을 한국?
8. 적당히 어길 수밖에 없는 법?
9. 도박을 했어도 따기만 하면 된다?
10. 경쟁심과 불안감의 문화?
11. 한국에는 서울만이 존재한다?
12. 똑똑한 개인과 무능한 집단?
13. 전문적이지 못한 전문가들?
14. 2만 달러 시대의 꿈은 그저 꿈에 그치는가?
15. 한국은 서비스 경제를 위한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