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은 없다”
박성조(베를린자유대 정치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지난 6월 3일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에서 ‘유럽에서 제3의 길: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던 중 갑자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박 교수가 노 대통령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무엇보다 먼저 민주적 선거 절차를 통해 의회의 과반수를 확보했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이런 대통령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시민사회, 노동조합, 사회단체, 2030세대, 촛불시위자, 인터넷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기성세대가 이러한 변화를 외면하거나 부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change)는 세계적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과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게 박성조 교수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막스 베버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가장 행복한 대통령에게 보내는 충고’를 대신 했다.
“막스 베버는 1919년 발표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능력을 지적한 바 있다. 일에 대한 편파성 없는 열정, 책임감, 현실을 파악하고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베버는 이 세 가지 능력을 이렇게 풀이했다. ‘열정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열정은 책임감과 결부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현실을 파악하고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다.’ 베버는 ‘정치는 지혜로서 한다. 정치인은 매일 매시간 극복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만심과 허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노교수가 고국의 대통령에게 찬사와 경고를 동시에 보낸 데는 까닭이 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와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5, 6년 전에 주창한 ‘제3의 길’과 ‘신중도론’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만만치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회보장의 천국으로 알려졌던 독일은 미래의 방향을 분배보다 성장과 고용 쪽으로 바꿨다. 작년 말 독일연방국회에서 여야가 합의를 통해 통과시킨 ‘개혁2010’은 그런 슈뢰더의 리더십이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슈뢰더의 정책은 ‘탄력적이고 절충적인 실용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의 핵심적인 요소는 △기업가정신 우선주의 △정부간섭과 정부주도로부터의 탈피 △노동시장 탄력화 △조세감면과 감축정책 △규제완화 등이다.”
박성조 교수는 블레어와 슈뢰더가 ‘좌익이냐 우익이냐’를 따지지 않고 도리어 ‘개혁이냐 중단이냐’가 세계 경쟁의 관건이라고 주창했던 사람이라면서 한국의 지도자들도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중국의 성장만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역산업화(Reversed Industrialization)를 통해 새로운 성장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설사 일차산업이라고 해도 무공해 유기농이 첨단산업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건강, 안전, 편리, 즐김, 개성, 아름다음, 이미지 등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life style) 산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혁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바로 역산업화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애초부터 사양산업(斜陽産業)은 없다. 머리와 지혜가 사양(斜陽)됐을 뿐이다.”
그러나 역산업화를 위해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일정한 사회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박 교수는 갈등을 조화로 전환시킬 수 있는 성숙된 자세를 요구했다.
“한국은 갈등의 천국이다. 이념, 노사, 성별, 세대, 지역에 따라 갈등과 대결의 연속이었다.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될 종교의 갈등이 가장 우려된다. 팔레스타인과 북아일랜드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 갈등은 그 무엇보다 파괴력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3, 4년 후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끝나는 지점에서 나의 자유는 시작 된다’는 빌리 블란트의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박 교수는 진보와 보수는 고정적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회 흐름에 따라 그것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권의 책이라도 읽는 리더, 자신이 말하기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