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삼고초려 할 것”
정찬용(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
“저는 인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대학에선 인사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언어학을, 그 중에서도 몽골어를 전공했다. 광주YMCA 사무총장으로 재직할 때 직원 40명의 인사를 단행한 것이 인사와 관련한 제일 큰 경험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저 자신이 지난 1년 동안 항상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참여정부의 인사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정찬용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은 지난 5월 27일 소공동 롯데호텔 37층 가네트홀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특강에서 ‘겸손한 자기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인사(人事) 문외한’인 정 비서관이 ‘현대판 승지’를 맡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독하게 뒤틀린 지역주의’가 공직인사를 좌지우지했던 한국사회에서 ‘영호남을 뛰어넘은’ 그의 인생 내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찬용 비서관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른바 ‘전형적인 호남 출신’이다. 그러나 서울대 졸업 무렵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면서 인생의 반전을 겪는다. 감옥에서 나온 뒤 거창고 설립자 전영창 선생과의 인연으로 26세에 거창고 교사로 부임한 뒤 43세까지 17년 동안 ‘영남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찬용 보좌관은 영남 사람일까, 호남 사람일까. 사실 이런 질문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인사정책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변화와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앞으로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은 지역이나 학연이 아닌 시스템과 풍부한 인적 자료에 의해 운영될 것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인사를 발표할 때는 출생지와 출신고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정찬용 비서관은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에는 적재적소, 공정과 투명, 자율과 통합, 균형 등 4가지 원칙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인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원칙을 적용한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풍부한 인재풀이 마련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7만7천명의 인재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으며, 매년 5천명씩 업데이트를 해나갈 예정이다.
그 다음으로 중시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배타적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부문은 정무직, 군·검찰·경찰·대사, 고위공무원, 정부산하단체장 등 4백56개에 이른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대통령과 주요 수석 등 7인으로 구성된 인사추천회의(대통령령으로 설치)를 통해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 후보로 오른 인사의 술버릇까지 드러나는 등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는 관계로 정실인사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고 한다. 중앙부처 출신의 고위직 공무원이 퇴직 후 6개월 동안 새로운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인사정책의 일환이다.
“정부산하단체 인사의 경우 ‘삼고초려’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앞으로는 임단협을 하며 노동자들에게 멱살도 잡혀본 사람, 현장에서 소주를 마시며 토론도 해본 사람, 회사를 설립하느라 관공서를 찾았다가 몇 차례나 서류도 퇴짜맞아본 사람이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그럴 때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는 정부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한편 앞으로 6월 한달 동안 진행될 조찬강연 일정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6월 3일: 한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책과 비전(고철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6월 10일: 기업의 성공조건을 위한 간부의 조건(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6월 17일: 역사인물을 통해 배우는 오늘의 리더십(이이화 역사학자) △6월 24일: 철학에 기초한 경영, 기본에 충실한 경영(이헌조 전 LG전자 회장).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