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장미혁명‘과 노무현 정부
이장규 시사미디어 사장
이번에 연재 100회를 돌파한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1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444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한번도 빼먹지 않고 조찬강연을 중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장만기 회장을 비롯한 인간개발연구원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주
중앙일보의 편집국장과 경제전문 대기자를 잇따라 역임했던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장에게는 두 대의 컴퓨터가 있다. 한 대는 한 회사의 CEO로서 다루고 있고, 또 한 대는 경제 저널리스트로서 칼럼을 쓸 때 사용하고 있다. 경제 저널리스트의 개념을 ‘경제 현상을 기록하고 복기(復棋)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는 얼마 전 노무현 정부의 경제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복기‘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독특한 성격과 스타일을 반영해서 특유의 방법으로 경제정책을 지금까지 끌어왔고, 그런 기조는 앞으로도 더 계속될 전망이다. 아마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자신의 색깔을 가장 강렬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경제정책에 표현한 인물로 훗날 평가받을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냐의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해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변호할 능력을 갖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비판에 아랑곳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경제정책은 성공을 거두어 왔고, 한국 경제는 잘 되고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공과에 냉정하게 접근하려는 객관성과 일정한 감정의 과잉이 행간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칼럼으로 읽혀진다. ‘현재진행형‘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서였을까. 이 사장의 경제비평은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도리어 활기를 띠었다.
“터키 바로 옆에 그루지야라는 나라가 있다. 그런데 소련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스탈린의 고향이자 소련 붕괴 이후 셰바르드나제가 10년 동안 집권했던 이 나라가 요즘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이른바 ‘장미혁명(Rose Revolution)’을 통해 집권한 신세대들에 의해 기성 정치권 인사들이 완전히 축출됐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현 그루지야 정부 각료의 평균 연령은 32세에 불과하다. 41세의 총리가 각료 내에 2명밖에 없는 40대 중 한 명이고, 대통령은 아예 37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너지장관은 32세이며, 집권세력의 대다수 실무자 나이는 25∼28세이다.”
이장규 사장은 그루지야 현지에서 한 차관을 인터뷰했는데, 마치 자신의 아들 뻘 되는 청년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스위스 크기의 영토, 4백만 명의 인구, 1천 달러에 불과한 GDP를 가진 이 작은 나라에서 진행되는 개혁을 취재하면서 어떤 ‘광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루지야에선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쫓겨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전까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것이 영어로 바뀌었다. 러시아어는 5학년이 돼야 겨우 가르칠 수 있다. 심지어 ‘영어를 잘 하면 직업이 생기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실업자가 된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모든 개인과 기업에 각각 20%의 동일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것은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개혁 프로그램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루지야는, IMF의 평가 기준에 따르면, 개혁과 개방 분야에서 세계 2위 국가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그루지야 주도그룹은 철저하게 서방 지향적이라고 한다. 당장 대통령부터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인물이고, 총리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 사장은 왜 지금 장황하게 그루지야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 칼럼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참여정부에 대한 첫 번째 화두는 뭐니뭐니 해도 변화와 개혁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어떤 결과를 맺었든 간에, 당초 마음먹었던 것을 줄기차게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일관성은 크게 돋보인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최대의 변화요, 개혁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과거의 대통령들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고, 생각이나 인적 환경 역시 크게 달랐다. 그리하여 그는 인수위원들부터 전혀 다른 인물들을 기용했고, 여태까지도 계속 그 기조를 유지해 오고 있다. 우선 사람들이 젊어졌고, 비주류 인사들이 기존의 주류들을 몰아내고 대거 권력의 핵심에 진출했다.”
그렇다. 이 사장은 참여정부의 개혁과 그루지야 장미혁명이 닮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대한민국과 그루지야는 다른 점도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칼럼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종전보다 상대적 좌파 인물들이 노무현 대통령 주변을 둘러쌌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자신의 정부를 향해 너무나 쉽게 색깔공세를 펼치는 거대언론이 그루지야에도 있을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지는 이유는 뭘까?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
이장규 사장의 이력서
▲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 미 미주리대대학원 신문학 수료
▲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경제부 기자
▲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
▲ 중앙일보 편집국 경제부장, 경제담당 부국장
▲ 중앙일보 일본총국 총국장
▲ 중앙일보 전략기획실장 겸 회장 비서실장
▲ 중앙일보 편집국장
▲ 중앙일보 경제전문 대기자
▲ 국무총리실 복권위원회 위원
▲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자문위원
▲ 국민은행, 머니투데이 사외이사
저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한국경제 설 땅이 없다(공저), 실록6공경제(공저), 19단의 비밀 다음은 인도다(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