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개발연구원은 기업인들이 중심이 돼 움직이는 단체이다. 정치 학술 문화 종교 등 어느 분야든 가리지 않고 다루긴 하지만 역시 설립 이후 지금까지 기업경영을 위한 인간개발의 문제가 항상 최우선 과제로 취급돼 왔다.
그러다 보니 국내 내로라 하는 기업의 오너나 경영인치고 연구원과 관련을 맺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중 연구원 초창기에서부터 각별한 관심을 갖고 관여한 사람들은 나의 영원한 은인이면서 존경의 대상이다. 많은 분이 유명을 달리한 지금 나는 그분들 이름만 떠올려도 저절로 숙연해진다.
성창합판 고 정태성 회장은 나와의 인연이 유난히 각별했다. 정 회장은 내가 한국기독실업인회 총무를 지낼 때 이사장을 맡아 같이 활동했고 인간개발원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관심과 격려를 보내줬다. 특히 신실한 믿음을 가진 그는 하나님이라는 공감대 안에서 나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나는 한국 목재산업을 세계속에 우뚝 세운 정 회장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담은 회고록이 서울경제신문에 연재되는 과정에 개입하기도 했다. 그는 기업경영을 하면서도 성지중·고와 부산외대를 세우는 등 교육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벽산그룹 창업자인 고 김인득 회장 역시 대단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 역시 한국기독실업인회가 기초를 닦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인간개발연구원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영되도록 많은 조언도 해줬다. 내가 새마을지도자 교육에 참여했을 때는 농촌의 초가지붕들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도록 하는데 일조했고 뛰어난 숫자 감각과 강한 집념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은 정직과 신앙으로 기업을 일궈 한때 ‘한국기업인의 성자’로 불리기까지 했다. 인간적인 지도자를 강조했던 그는 내게 한국유리 교육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을 만들어 주고 연구원이 어려울 때마다 기꺼이 도움을 줬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신앙인으로서의 양심과 자긍심을 강조했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은 세무비리와 권력유착 등 의혹으로 세간의 물의를 일으켰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국토개발사업의 선각자이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한창 기업 활동을 할 때 바쁜 와중에도 인간개발경영자조찬회에 자주 참석했고 10여년의 영어 생활을 보낸 직후에도 강사를 자청하는 등 연구원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그는 감옥에서도 항상 성경을 곁에 두고 기도했으며 많은 시를 쓰기도 했다.
지난달 타계 5주년을 맞은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인간개발의 전문가였다. 대한석유공사를 모태로 해 지금의 SK그룹으로 일군 그는 인재양성을 위해 ‘SK장학회’를 설립했고 연구원에서 인간개발 문제를 논하면서 ‘Supex(Super-excellent)이론’ 즉,탁월해야 지구촌 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그의 후계자인 최태원 회장 구속 등을 보면서 “인간자원은 석유와 비교되지 않는,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라고 한 고인의 말이 생생히 떠오른다.
태평양화학을 세운 서성환 회장도 인간문제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분이셨다. 언젠가 내게 “인재가 들어온지 얼마 안돼 나가버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며 진지하게 묻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똑똑히 기억된다. 태평양화학이 많은 시련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고인이 됐지만 그의 고민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얼마전 유가족이 50억원 규모의 기금을 사회단체에 내놨다는 보도를 보고 서 회장의 유지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삼성전자 정재은(지금은 조선호텔 명예회장) 사장은 인정미가 넘치는 기업경영을 강조했던 분이다. 한번은 내게 “1만명이 타고 있는 배에 불필요한 5명이 탔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길래 “가라지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힐까 그냥 두었다”는 성경 말씀을 들며 “나머지 9995명이 5명을 포용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중요하지 않을까요”했더니 크게 좋아한 적이 있다.
이밖에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일양약품 정형식 명예회장 등도 겸손과 정직을 몸소 실천한 경영인으로서 연구원에도 깊이 관여했던 분들이다.
정리=정수익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