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자리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시골에서 유명인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8일 오후 전남 장성군청 4층 대회의실. 주민·공무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LG전자 이희국 사장이 ‘나노기술의 산업화와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이날 강의를 들으러 온 박석철(38·장성군 동화면)씨는 이젠 강의가 있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그는 “매주 강연을 듣다 보니 다방면에 상식이 풍부해져 자신감이 생긴다”며 “내면 또한 충실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라며 장성군이 매주 금요일 열고 있는 아카데미가 10년째를 맞았다. 이 강좌는 1995년 7월 시작해 지금까지 411회가 열렸다. 수강한 인원은 총 21만명을 넘는다. 군민 1인당 네번가량 강의를 들은 셈이다.
이 같은 교육 덕택으로 인구 5만여명에 재정자립도 16%에 불과한 작은 시골 장성군이 정책개발 등에서 앞서 나가는 자치단체로 꼽히고 있다. 장성군은 행정자치부 등의 공공정책부문 각종 평가에서 입상해 받는 상금만도 연평균 10억원에 이른다.
‘장성의 힘’교육=장성아카데미는 강사진이 좋기로도 정평이 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와 황우석 서울대 교수,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이하 강연 당시 직책), 윤병철 하나은행장, 정문술 미래산업 사장, 홍일식 고려대 총장, 허성관 행자부 장관, 서정욱 과기부 장관, 이시형 박사,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임권택 감독 등이 강의했다. 모두 자기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장성군은 아카데미 외에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선비대학”선비학당’ ‘자치여성대학’은 매월 하루 4시간씩 강사를 초청, 300~400명씩이 꽃꽂이 등 취미활동부터 사서삼경까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다. 장성군은 또 택시 운전기사들에게 경비를 지원, 일본 MK택시 회사로 5박6일씩 견학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군내 택시 운전사 200여명 가운데 60여명이 다녀왔다. 그 결과 이곳에 있는 상무대(육군보병학교)를 찾는 면회객들 사이에 장성군 택시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농민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올해 8800만원을 들여 74명을 일본·네덜란드·독일 등에 보낼 예정이다. 지난 9년간 469명에게 외국 선진농업을 체험하게 했다.
“공무원이 우물 안 개구리가 돼 일을 못하면 그 피해가 결국은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며 공무원 해외 배낭여행도 하고 있다. 읍·면 근무자까지 570여명 모두 유럽을 갔다왔다. 2002년부터는 미국으로 10박11일씩 보내고 있다.
기업에서도 배운다=장성군 직원들은 8년째 해마다 대기업 연수원에 단체로 들어가 3박4일간 합숙하며, 기업의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경영 마인드를 배운다.
또 서울 코엑스에서 괜찮은 전시회가 열리면 군청 버스에 직원들을 태워 견학을 보내고 있다. 한 달에 보통 한번 정도 견학한다. 98년부터 시행하는 BI(Brand Identity) 포장재 지원사업도 기업에서 배웠다. 농산물의 공동 브랜드와 포장 디자인을 개발, 상자 제작비 등을 40% 보조하며 보급하고 있다.
96년 8월 지자체 중 최초로 심벌 마크·엠블럼·캐릭터와 서식·차량·사인(Sign)류 등에 쓰는 응용디자인 등을 통일한 CI(County Identity·지역 이미지 통일)도 기업의 이미지 통일(CI·Corporate Identity)를 벤치마킹한 것. 올 초부터는 고유 서체 ‘장성체’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교육 투자의 효과=공무원 해외 배낭연수(95년)와 CI 개발·인터넷 홈페이지 구축(96년), 공무원 1인 1PC 보급·전자결재·장례 지원 서비스(97년), BI 포장재 개발(99년), 고유 서체 사용(2004년) 등은 장성군이 전국 지자체 중 맨 먼저 시행한 제도다.
장성군은 지난 5월 행자부의 행정서비스 헌장제 운영 평가에서 1100만원을 받는 등 민선 이후 각종 평가에서 입상해 받은 사업비가 138건 92억원에 이른다. 상금으로 한 해에 10억원을 번 셈이다. 공무원 교육·해외연수에 연 7억~9억원씩 쓴 것을 뽑고도 남았다.
장성군에는 올 들어 22개 팀 330명이 오는 등 그간 304개 팀 4263명이 방문해 각종 시책을 벤치마킹하고 갔다. 지역 이미지도 그만큼 좋아졌다.
장성아카데미 강사진 네트워킹도 큰 자원이 되고 있다. 강연 때 장성 땅을 처음 밟았던 인사들이 나중에 직·간접으로 군정을 돕고 있다. 2001년에 다녀간 한 대학교수는 이듬해 장관이 된 뒤 300억원짜리 국비보조사업을 선물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2004년 10월 14일자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