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는 살아 있다
이태용(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대우의 공과를 평가하는 백서를 쓰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만든 대우의 과오에 대해서는 항상 마음의 빚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보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회사를 잘 운영해서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대우부활의 일등공신’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은 지난 4월 29일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에서 “대우사태 백서를 쓸 생각이 없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대우의 무역부문 철강금속본부 전무이사, 무역부문 부사장, 대우자동차 수출부문 부사장 등의 이력이 말해주듯 이 사장은 1976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이래 20년 넘게 줄곧 ‘상사맨’으로 일해왔다. 그리고 그 상사맨의 개척정신을 계승한 대우인터내셔널이 지금 대우부활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작년 12월 30일 마침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채권단과 워크아웃 약정을 체결한 것이 1999년 8월 26일이고, (주)대우와 건설에서 인터내셔널이 분할된 것이 2000년 12월 27일이니 어느덧 4~5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현재 39개국에 45개의 지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에 산재한 5천6백93개의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다. 산동시멘트, 우즈벡면방, 오만LNG, 미얀마A-1광구, 파푸아발전소, 엘살봉제, 페루유전 등 해외에 직접 투자한 사업만도 39건에 이른다.”
실제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작년 4조1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상사맨의 후계자답게 그중 94%가 해외무역의 성과였음은 물론이다. 수출액과 수익성에서도 삼성, LG 등 경쟁사를 앞지른 대우인터내셔널은 한국경제의 끌차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대우인터내셔널의 수출상품을 공급하는 회사의 66%가 중소기업이다. 작년에만 23개의 중소기업을 발굴해 해외시장 개척과 진출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우부활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군살’은 빼고 ‘근육’은 키웠다. 사업본부(12→10), 해외지사(78→45), 해외법인(97→49), 인원(1,451→799) 등 조직과 인원을 줄인 것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9백40%의 부채비율을 2백40%로 줄인 것은 후자에 해당하는 셈이다.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한편 비전와 대안을 만들기 위해 여신위원회․투자심의위원회․환금리위원회․브랜드관리위원회 등 다양한 내부위원회를 가동하기도 했다.
“과거의 오류와 아픔을 거울로 삼아 투명경영을 위한 시스템도 과감하게 도입했다. 우선 회계관리자․윤리경영사무국․감사실․법무실 등을 통해 기업 내부를 자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외부의 전문적인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긴 뒤 그 결과를 가감 없이 주주에게 제공하도록 했다. 이러한 이중장치를 통해 분식회계나 부당거래 등에 대한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투명하고 공정한 회계처리야말로 기업 생존과 발전의 기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우부활의 핵심역량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대우에는 수 십년 동안 축적된 무역전문가집단, 이른바 ‘프로’가 있었다. 국제무역 현장에서 시장을 개척하거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쌓은 노하우는 대우부활의 가장 핵심적 비결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근무했거나 근무하고 있는 인력이 지금도 회사 인력 전체의 37%나 차지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대우인터내셔널이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정상기업으로 출발한지 보름이 흐른 뒤인 지난 1월 15일 미얀마 A-1 광구에서 가스전이 발견됐다.
“추정 매장량이 무려 4~6조입방피트에 이르는 자이언트급 가스전이었다. 한국 회사가 메이저 투자사로 참여한 가스전 중 최대 규모이다. 더욱이 대우인터내셔널이 60%의 지분을 가지고 투자한 이 광구 바로 옆에는 7~14조입방피트의 가스전이 더 매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NG를 전량 수입해 써야 하는 에너지 약소국인 우리로서는 11~18년어치의 가스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한국경제의 ‘걸림돌’ 신세를 면치 못했던 대우가 지금 한국경제의 ‘디딤돌’로 변신하고 있다. 그리고 대우인터내셔널은 그 선두에서 펜이 아니라 땀으로 ‘대우백서’를 쓰고 있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