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세대는 이제 주류, 포용력 갖춰야”
“기성세대의 틀이 너무 완고하지 않나요?”
[3060데이트 ①]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 회사원 안종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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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선(sunnijang) 기자
30대와 60대가 만나면, 말이 안 통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분명 세대 차이는 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대간의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3060데이트 시리즈를 주선한다. 아버지와 아들 세대,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있을까. 윤병철(66) 우리금융그룹 전 회장과 안종기(35) 리서치 인터내셔널 과장이 만났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의 오마이포럼과 인간개발연구원이 공동으로 꾸몄다. 편집자 주
3월 25일 오후 3시, 우리금융그룹 본사 23층 회장실. 오전에 이·취임식을 마친 윤병철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매우 분주해 보였다. 윤 회장은 “아무리 바빠도 3060데이트는 꼭 하고 싶은 자리라 마다하지 않았다”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말 세대간 상호이해가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안종기 리서치 인터내셔널 과장도 “회사에 이해를 구해서라도 꼭 나오고 싶었던 데이트”라면서 “무엇보다 60대가 바라보는 30대의 시각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봄 햇살이 찬란한 오후, 3060데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60대와 30대, 세대간 대화의 장벽을 허물려면
정직과 진실, 합리 공통점가진 두 남자
윤병철 전 회장과 안종기 과장은 누구?
193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윤병철 우리금융그룹 전 회장은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농업은행에 입사해 전경련, 국제신보 논설위원, 부산대 법학연구원 연구위원, 삼성전자 감사를 거쳐 한국투자금융 사장, 하나은행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CEO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좌우명은 “정직과 진실”이다.
안종기 리서치인터내셔널 과장은 1971년에 태어나 서울 장위동에서 자랐고,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6년간 리서치 인터내셔널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 동안 ‘시장조사’ ‘소비자분석’ 등의 일을 해왔다.
현재 서울 목동에서 부인 유재미씨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는 “30대와 60대 서로 생각과 겪은 현실은 다르지만 서로의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합리적 대화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제 대한민국 주류는 3040세대”라며 “매사에 책임감 있게 행동했으면 좋겠고, ‘데모 식’으로 항의하는 태도는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탄핵정국과 관련해 젊은 세대들에게 “불신을 서로 간의 힘 대결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 뒤 “급하게 풀려하지 말고 투표를 통해 동조자를 모으고 법과 제도를 바꿔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종기 리서치인터내셔널 과장은 윤 회장과의 대화에서 “30대는 87년 6월항쟁 등을 겪으면서 기존 질서나 구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며 “60대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오늘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 사회적인 부분도 좀 같이 성장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병철 전 회장과 안종기 과장의 대화록이다.
“형식적 민주주의 갖췄으나 내용적으로 채울 게 많다”
윤병철 “안 과장은 무슨 일을 해요?”
안종기 “저는 리서치 회사에서 일합니다.”
윤병철 “그래요? 아주 섹시한 비즈니스를 하시네. 후훗…”
안종기 “우리은행으로 이름 바꿀 때, 저희 회사에서 소비자조사를 맡은 적이 있어요. 제가 직접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윤병철 “그래요? 역시 세상은 한 세대, 몇몇 사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다 어울려 사는 거니까 항상 인연이 있기 마련이지요.”
안종기 “곧 퇴임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퇴직 이후 어떻게 보내실 생각이신지….”
윤병철 “우선 은퇴자로서 할 일이 있어요. 우리 60대는 60년대에 사회로 나온 사람들이거든요. 그 당시 우리 경제의 중심은 농촌이었다고. 그러니까 우린 다 농촌의 아이들이에요. 쉽게 말해서 촌놈들이야.(웃음)
당시 막 산업화가 시작됐고, 공장 짓고, 거기서 일하고 그랬어요. 우린 한 세대를 아주 액티브하게 활동하다 이제 은퇴하거나 은퇴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전 은퇴자의 역할모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또 하나는 금융발전에 기여하는 일이에요.”
안종기 “60대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얘기해주셨는데요. 저와 같은 30대들은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게 결국 노무현정부 탄생으로 나타났겠지요. 젊은 세대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 87년 6월항쟁 등 혼란을 겪어왔고, 그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갖춰졌으나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채워야 할 민주적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기존 질서나 구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고. 60대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오늘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 사회적인 부분도 좀 같이 성장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는 게 30대들의 생각이죠.”
윤병철 “안 과장은 세상이 뭐라고 생각해요? 나는 사람들마다 제각각 서로 다른 그림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그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모두를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기업에 있어서 젊은 세대의 의식변화를 느끼게 되는데, 70년대엔 학생운동했느냐고 물으면 다 안 했다고 말해요. 80년대엔 나는 학생운동을 안 하지만 그 노선에 동의한다, 이렇게 말하고. 87년 6월항쟁 이후엔 나는 학생운동을 했다고 자신있게 얘기하죠. 이렇게 축이 왔다갔다하는 건 우리 60대 책임이에요. 우리가 말을 못하게 막아서 그렇거든.
반면, 주류가 바뀌면 제도도 변화하게 돼 있어요. 3040세대는 이제 한국사회의 주류예요. 주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안이 불거졌을 때,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법과 제도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난한 세월을 보낸 60대의 시대 읽기
안종기 “저는 법이 가진 속성이 민주적이지 못한 데가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법과 질서 위에 민심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탄핵가결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병철 “어리벙벙합니다. 대통령을 탄핵한 사유가 과연 탄핵감이냐, 그건 논란거리죠. 이미 국민반대로 표출되고 있고. 저는 도리어 우리 사회에서 왜 탄핵 같은 게 벌어졌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불신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그 불신을 서로 힘 대결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종기 “촛불시위는 어떻게 보세요?”
윤병철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종기 “저도 제 아버님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참…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가족과 대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신뢰의 끈과도 맞닿아 있지요. 강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병철 “감정이 상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60대들은 아주 가난한 시절을 보냈어요. 아들이 다섯이어도 다 공부를 못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다섯 중 공부 제일 잘하는 놈 하나만 공부하고 나머지는 다 공장 가서 돈 벌고 그 돈을 아버지께 몽땅 드려야 했어요. 나중에 출세한 자식이 동생들 다 거둬 먹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죠. 일종의 배신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문제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기업과 노조, 정부와 시민 등 우리사회 곳곳에 이와 유사한 불만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걸 조화롭게 극복할 방법이 필요하죠. 먼저 손 내밀고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렇죠?
제 생각에는 이런 문제들을 급하게 풀려고 하면 반대쪽에게 빌미만 준다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면, 투표를 통해 공조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법도 바꿔서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이 꼰대 같은 사람, 만날 필요 없다?”
안종기 “30대들에게 성급함, 서두름, 감성 등을 지적해주셨는데요. 저희는 80년대를 거치면서 ‘상식과 합리’를 기반으로 ‘빈틈없는 논리를 주장’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윤병철 “그래요. 젊은이들은 대화를 많이 하지만, 우리 세대는 대화가 없어요. 힘센 놈이 자기 얘기하고 남 얘기를 듣지 않는 문화가 지배적이죠.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는 이성적 사회, 이건 파라다이스야!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경영자는 경영자의 책임이 있고, 노동자는 노동자의 책임이 있다고요. 경영자는 경영을 잘 해서 주주와 노동자에게 제대로 이익을 배분할 책임이 있잖아요. 그런 활동에 흑백논리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의 이런 입장에 대해 노조가 변명에 불과하다, 자본가의 앞잡이다, 이런 욕을 많이 했지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서로 마음을 닫으면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열어야….”
안종기 “저희 세대는 항상 대화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후훗. 노무현정부의 탄생은 대한민국의 새 주류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데요. 60대 기성세대는 이런 새 주류의 특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태도가 아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오늘처럼 이런 대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30대와 60대가 만나 어떤 주제부터 얘기하면 서로 확 통할 것 같습니까?”
윤병철 “아, 그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 으음….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할 때 ‘우리 아버지는 농사짓는 사람으로 머리가 굳어 있으니 날마다 비난만 할 거냐, 아니면 노력해서 바꿀 거냐?’ 이거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늘 문을 열어놓고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렵고, 엉뚱한 얘기를 해도 틀을 깨고 세대간 얘기를 해보자고 말이에요. ‘에이, 꼰대 같은 사람, 만날 필요 없다!’ 그러지 말고 만나서 얘기해요.
그리고, 난 이 얘기를 꼭 좀 하고 싶어요. 3040세대는 이제 대한민국 중추세대입니다.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 사람들은 바로 3040세대라구요. 이제 우리는 아니야. 하하. 그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잡음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 등등 고민해야 합니다. 60대들이 종종 이런 얘기를 해요. ‘아,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다 잘 해주겠지 뭐’ 이건 한편으로는 비꼬는 얘기입니다.
국회의원도 40대가 제일 많고, 인구학상으로도 3040세대가 수적으로 제일 많아요. 그러나 정말 자기들이 주류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거듭 강조하면 3040세대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소외된 세력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이자 기둥이에요. 그런 만큼 매사에 책임감 있게 행동했으면 좋겠고, ‘데모 식’으로 항의하는 태도는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5060세대에게 ‘행복과 성공’ 선택의 기준은 생존
안종기 “그러나 기성세대의 틀이 너무 완고해서….”
윤병철 “구악을 깨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발전이 있을 수 있겠어요? 경영도 정체하면 가라앉는 법이지, 결코 앞으로 진전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하느냐 이게 중요하지요. 나는 우리 사회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안종기 “저는 60대가 3040세대에게 이런 존재였으면 합니다. ‘위험한 데 걸어가고 있으면 그리 가면 안 된다’고 60대가 30대에게 말할 때, 왜 위험한지,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그 근거와 논리를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윤병철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애들에게 나는 아버지로서 뭘 했나 그런 반성이 듭니다. 5060세대는 ‘행복과 성공 중 뭘 선택할래’하면 다들 성공을 선택했어요.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퇴근하면서도 생존과 안정을 더 중시했지요.
사회 일반이 생각하는 개인 삶의 행복, 이런 건 없지요. …그 덕으로 3040세대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것 아니에요? 하하. 그래서 더욱 발랄한 젊은 세대 아니겠어요? 나는 3040세대가 주류라는 걸 인식함과 동시에 포용력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3040세대는 ‘데모하는 세대로 다원화 돼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에요.”
약 2시간 동안의 데이트. 두 남자는 약간의 신경전과 함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깊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예정시간보다 얘기가 길어지자 윤 회장은 자주 시계를 바라봤고, 안 과장도 호흡조절에 바빴다.
데이트를 마치고 난 안종기 과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생각보다 깨인 어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쩌면 윤 회장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밥상을 마주하는 우리 집 ‘어른’들도 비슷한 건 아닐까. 두 사람의 데이트에 동석했던 기자는 부모님과의 식사시간에 입 꾹 다물고 밥숟가락만 바쁘게 움직였던 순간들을 반성해보았다.
2004/03/31 오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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