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대간의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3060데이트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버지와 딸 세대,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있을까. 정기인 한양대 교수와 이수효 평화박물관 상임활동가가 만나 전쟁과 이라크파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의 오마이포럼과 인간개발연구원이 공동으로 꾸몄다… 편집자 주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의 종전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라크에서의 총격은 계속되고 있고, 미군의 이라크 포로 ‘성학대’ 같은 흉측한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인류에게 전쟁은 무엇인가.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정기인(63세) 한양대 교수와 이수효(35세) 평화박물관 상임활동가가 전쟁기념관 평화홀에서 만났다.
월남전 참전 대학교수와 평화운동가의 ‘대화’
정기인 교수는 피부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겪은 ‘전쟁피해 산증인’이고, 이수효 상임활동가는 증언과 기록으로 전쟁의 참상을 전달한 평화운동가이다. 두 사람은 ‘전쟁과 이라크 파병’을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 교수는 “지금 전쟁이라면 치가 떨린다”면서 “너무 굶어 영양실조 학질에 걸린 세대가 바로 60대”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고엽자 환자”라며 “영화에서는 군인들이 멋있게 양민을 구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그렇지 않고, 피를 보면 사람의 눈이 뒤집히게 돼 있다”고 베트남전쟁의 잔혹상을 전달했다. 하지만, 그는 “이라크파병에는 찬성한다”며 “이라크 전후에 누릴 수 있는 경제특수가 있다면 가서 싸워야 한다”는 다소 의외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수효씨는 “제가 직접 전쟁에 참가해본 경험은 없지만, 저라면 내가 왜 이런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가 한편으로 자괴감이 들었을 것 같다”며 “한국의 젊은이가 남의 나라 전쟁에 투입돼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속상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씨는 “전쟁은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준다고 생각한다”며 “참혹하기 짝이 없는 전쟁에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가서 싸워야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피를 보면 눈이 뒤집히게 돼 있다”
정기인 “나는 한국전쟁 때 정말 죽을 고생을 했어요. 먹을 게 없었거든…. 너무 굶어서 영양실조, 학질에 걸렸어요. 전쟁이라면 지금도 치가 떨려요. 오죽하면 교실바닥에 떨어진 밥풀 하나 때문에 공부가 안돼. 그걸 먹어야겠다는 일념만 있지, 선생님 말소리가 귀에 안 들어오는 거야. 후훗. 그런 경험 해본 적 있어요? 우리 60대가 바로 그런 세대라고요.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다니던 나는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입학원서까지 다 받아놨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군대 갔다와야 유학 갈 수 있다고 하는 거야. 유학을 군 기피 도구로 삼는다, 그 말이지.
그때 나는 기왕에 군대 가는 거라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하면서 해병대 장교모집에 지원했어요. 소대장이 됐지. 그렇지만 내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66년…, 전사자 보충으로 베트남에 발을 디뎠지요. 그땐 지원이 아니라 지명이에요. 무조건 가는 거지. 그때 내 생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런 거였어요.
우리가 참전했던 전투에서 가장 치열했던 게 꽝나이성 출라이 지역이에요. 거기가 압둘 지압 장군의 고향이거든요. 베트콩의 저항이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은 데였어요.
나도 거기서 싸우다 피해 입은 고엽제 환자예요. 2년간 전쟁을 치르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로 난 한번도 베트남에 가지 않았어요. 사람이 말이야, 너무 큰 상처가 있으면 피하고 싶은 법이거든. 쳐다보기도 싫어요. 난 이 전쟁기념관도 처음 와봐. 잘해놨네. 후훗.”
이수효 “전쟁터에서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방어심리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와중에 민간인을 죽여야 하는 상황도 있었을 것 같고.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전쟁기간을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정기인 “내가 소대장이었으니까 나보다는 부하 살리는 게 더 중요했지요. 부대원을 살려야 한다…, 지도자의 논리는 어디나 다 똑같아요. 내가 베트남에 있을 때도 양민학살이 있었어요.
꽝나이성 밀라이촌…, 여기는 한국군이 관리하다 미군에 넘긴 곳이기도 한데 여기서 벌어진 양민학살은 미국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았지요. ‘미국만세’를 외치던 민간인 사이에 숨어있는 베트콩을 잡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야.”
이수효 “지난해 베트남에 갔다가 밀라이촌 민간인 학살을 목격한 한 할아버지로부터 당시 상황을 들었어요. 그분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당시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지요. 어린이와 노인들이 미군에 의해 어떻게 죽어갔는지…. 너무나 끔찍했어요.”
“왜 한국의 젊은이가 남의 나라 전쟁에 가야 합니까?”
정기인 “영화에서는 군인들이 멋있게 양민을 구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피를 보면 사람의 눈이 뒤집히거든. 적을 제압해야 한다는 논리만 생각하게 돼요. 나는 그때 베트콩들이 아이들을 방패막이로 쓴 게 아닌가 싶어요. 분명 애들 뒤에서 총알이 날아오거든.”
이수효 “제가 직접 전쟁에 참가해본 경험은 없지만, 저라면 내가 왜 이런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가 한편으로 자괴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젊은이가 남의 나라 전쟁에 투입돼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속상하지 않으셨습니까?”
정기인 “그때는 반공정신이 투철했지요. 지구상에서 공산주의자를 박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으니까요. 나도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데모를 열심히 했어요. 이부영, 한광옥 다 그때 친구들이지요. 그러나 일단 군대에 들어간 이상 나는 군대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수효 “지금도 공산주의자를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정기인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요. 이미 이데올로기는 지구상에서 끝났다고 생각해요. 빨갱이도 없고, 흰둥이도 없어. 북한도, 빨갱이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아주 독특한 집권체제라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가 낡은 이념을 갖고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햇볕정책을 지지합니다.”
이수효 “전쟁은 인류를 말살시키는 아주 흉측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쟁을 막을 대안이 없을까요?”
정기인 “인류가 존속하는 한 전쟁은 계속 될 겁니다. 전쟁은 상층부 게임의 논리거든요. 밑의 사람들은 그저 그 논리에 끌려 다닐 뿐이지요. 우리가 전쟁에 대해 비평할 수는 있지만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전쟁이 끝나면 엄청난 개혁이 뒤따라요. 물론 인간적으로는 매우 비참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수효 “전쟁은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논리대로 전쟁이 국가와 국가간의 게임이라면 약자들의 고통은 대물림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약자들은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하나… 그런 고민이 먼저 드는군요. 그런 측면에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합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정기인 “이라크전쟁은 내가 겪은 베트남전쟁에 비하면 배낭여행으로 놀러 가는 수준이에요. 우리는 베트남에 도착하는 그날부터 전투를 했거든. 국가경영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판단할 때, 우리는 ‘이기는 파워’에 몸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정희 대통령은 패전한 베트남전쟁에서도 경제부흥을 이끌어냈어요. 그런데, 이라크전쟁은 미국이 뻔히 이기는 전쟁이라고요. 고기가 많은 연못에 메기 몇 마리 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테러위협은 항상 존재하는 위험이지요.”
“20년간 전쟁공포증에 시달린 사람입니다”
이수효 “베트남전쟁에 우리 군 32만 명이 갔습니다. 파병으로 인한 경제특수가 있었지만 2만 명이 고엽제 환자가 됐습니다. 1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지만 국가가 그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들의 죽음과 피해를 고속도로 만든 것과 등치 시킬 수 있습니까?
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파병이 우리에게 정말 남는 장사였나, 전 회의적이에요. 베트남전쟁에 32만 명이 파병됐지만 우리가 미국에게 받은 혜택이 무엇입니까. 미국 말 잘 들었지만 SOFA 등 우리의 대미종속은 심화됐습니다. 이제 미국으로부터 독자적인 외교력을 가져도 되는데 아직도 위정자들은 종속적으로 일관합니다. 저는 그 점이 참 답답합니다.”
정기인 “이라크 파병은 우리에게 얼마의 국익이 생기느냐 아니냐, 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선진사회의 리더국가가 되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거죠. 나는 30년간 고엽제후유증을 앓았지만 국가에서 해준 게 하나도 없어요. 혜택을 하나도 못 받았지요.
그렇지만, 내가 이제 와서 30년 전 과거를 들춰 뭘 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예요. 우리가 파워게임에서 승부를 걸만하다면 가서 싸우라는 거죠. 이번 이라크전쟁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횡재 수준의 보상을 해주면 돼요. 국가가 책임지고 그들에게 보상해라 이런 거죠.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누릴 전후 경제특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이수효 “글세…. 아무리 들어도 선생님 견해에 제가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선생님 연배가 저희 부모님세대와 같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런 정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빨갱이는 모두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베트남전쟁으로 우리가 잘 살게 됐으며, 이라크전쟁은 국익을 위해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고들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젠 좀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혹하기 짝이 없는 전쟁에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가서 싸워야한다는 논리에 정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정기인 “그래요. 나도 전쟁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해요. 나도 20년간 전쟁공포증에 시달린 사람이에요. 고엽제가 사람의 뇌에 침투해서 소심증, 공포, 불안, 불면증 같은 걸 느끼게 하거든요. 지금도 진저리가 쳐져요. 전쟁만 생각하면…. 그러나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 없죠.”
2004/05/07 오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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