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취재파일] 조순-이정우 만나던 날 아침의 진실
전체 맥락 무시하고 일부 대목만 확대재생산 ‘못된 관습’ 식상
작성날짜: 2004/11/13
정지환기자
“인생감의기(人生感意氣) 공명수부론(功名誰復論)”
<당시선(唐詩選)>에 실려 있는 명재상 위징(魏徵)의 시 ‘술회(述懷)’이다. 자신을 인정해 준 당 고조(高祖)에 대한 보답으로 썼다는 이 시를 직역하면 “인생은 의기를 느끼는 것인데 공명을 누가 다시 논하는가”라는 뜻이 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그것을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고 갈 길을 가겠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뭇 비장한 느낌을 주는, 이 10자로 구성된 짧은 시를 낭송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아래사진)이다.
“자본주의 구한 케인즈도 좌파라더니”
이 위원장은 지난 10월 21일 오전 7시 플라자호텔 22층 덕수홀에서 열린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 명예회장 조순, 회장 장만기, 원장 양병무) 조찬강연의 연사로 나섰다. 그런데 평소보다 종료 시간을 1시간이나 더 연장하며 계속된 강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 위원장이 불쑥 한시 ‘술회’를 낭송했다. ‘술회’는 “속에 품은 생각이나 감개·추억 따위를 말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가지고 있거니와, 당시 이 위원장은 이 시를 낭송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이 시는 참여정부의 정신과 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참여정부가 하는 일을 알아주지 않지만 올바른 길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 누군가 알아줄지도 모르고, 또 알아주지 않더라도 공명에는 개의치 않고 옳은 길로 간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철학이다. 나도 그 중에 일익을 맡아서 부족한 능력이나마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낀다.”
이날의 강연 주제는 ‘참여정부에 대한 이해와 오해’였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술회’는 주로 이해(理解)보다는 오해(誤解)를 풀기 위한 담론에 집중됐다. 그는 △좌파정권 △분배주의 △경제위기 등과 관련한 ‘비판적 담론’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펼쳤다. 당시 기자는 지면관계상 인상적인 몇 대목만 ‘새벽을 여는 강연’에 직접화법으로 소개했는데, 예컨대 다음과 같은 발언들이 바로 그 중의 일부이다.
“사실 죽어가던 자본주의를 살려낸 구원투수인 케인즈조차 당대에는 좌파와 사회주의자로 몰린 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참여정부는 ‘좌파’가 아니라 ‘중도파’라고 본다. 과거 정부가 무조건 친사·반노(親使·反勞)였다면 참여정부는 노사가 대등하게 참여하는 상생과 발전의 모델을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연암 박지원에 따르면, 까마귀 색깔은 사실 검은색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랑색과 초록색 등도 섞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보는 사람이 그냥 검정색 하나만 있다고 단정하고 까마귀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연암은 ‘주관적 독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까마귀론’을 주장했다. 좌파가 아닌 정권을 자꾸만 좌파라고 딱지를 붙이는 소모적 논쟁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경제를 안 챙긴다는 주장도 말이 안 된다. 참여정부는 경기활성화 반대론자가 아니다. 건전한 금융정책마저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투기 조장을 통한 경기활성화에는 반대한다. 그것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미봉책은 될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투기적 수요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될 수 있겠지만 그 효과가 오래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쟁력도 약화시킨다. 과거 정권은 그 유혹에 쉽게 빠지곤 했지만 참여정부마저 그럴 수는 없다. 비유컨대 병을 고치기 위해 ‘진통제’를 먹거나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마약’을 투약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편법과 탈법이 아닌 정상적 방법을 통해 경제를 살릴 것이다.”
조순 전 부총리 “강연 내용 설득력 있다”
강연이 끝난 뒤 질문이 쏟아졌는데, 이 위원장이 좀더 당당하게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날카로운 질문도 나왔다. 전선희 (주)고속도로정보통신 고문의 질문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하는데, 전 고문과 이 위원장의 질의와 답변을 소개하면 이렇다.
―<명심보감>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 오해받지 않으려면 남의 오이 밭에 가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남의 배 밭에 가서 모자를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정부에서는 오해에 대한 해명을 하기보다는 국민들로부터 오해받지 않을 정책을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오해를 풀려는 얘기를 하다보니 정부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는데 다른 몇 차례의 강연을 통해서 참여정부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해왔다. 오해를 받지 않게끔 하라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참여정부가 오해를 받는 부분도 있고 일을 잘못해서 당연히 욕을 먹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반성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조순 전 부총리(사진)의 ‘총평(總評)’이 이어진 것은 바로 이 답변이 끝난 직후였다(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은 이를 ‘클로징 리마크(closing remark)’라고 부른다). 우선 그는 ‘덕담(德談)’부터 건넸는데, 제자에 대한 스승의 애정이 행간에 흘러 넘쳤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발언마다 일련번호를 붙였다).
(1)”오늘 이정우 위원장의 강연 내용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하나의 강연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신을 전부 불식시킬 수는 없었겠지만 이러한 기회가 앞으로 더 많이 있다면 점차 불신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2)”196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 위원장은 기라성 같은 많은 동기생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이었고, 역대 경제학과 졸업생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탁월한 수재였다. 수재에는 순발력이 뛰어나서 빨리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일과 침잠(沈潛)하면서 지내다가 나중에 큰 기회를 얻는 스타일이 있는데, 이 위원장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는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진지한 사람이며, 겉과 내용이 잘 구비된 사람이다.”
(3)”이 위원장 본인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이왕 이렇게 (정부에서 일하게) 됐으니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오래 있길 바란다. 본인의 생각도 점점 깊어지고 우리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성품이 현 정부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에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온건·중도 성향 원로학자의 절규
그러나 잠시 후 조 전 부총리는 “오늘 강연 내용에 대해 몇 마디 소담(笑談)을 하겠다”고 밝힌 뒤 제자를 향해 ‘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주요 신문이 크게 부각시켰던 대목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4)”오해를 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분배 얘기는 입밖에 내지 말아라. 아무리 학자의 입장에서 분배가 있어야만 경제발전이 잘 된다고 생각해도, 학자가 얘기하는 것과 직함이 있는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다르다.”
(5)”경영참여를 하면 경영이 잘 되고, 국가를 위해서 좋다는 얘기도 앞으로는 하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조 전 부총리는 이어서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오해를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단했는데, 그 이유를 ‘불신(不信)’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국민들은 현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 중에 ‘박정희 시대’로 상징되는 과거 냉전과 독재 시절에 좌파로 분류되던 사람이 꽤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듯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6)”한국의 문제는 그 때의 좌파, 그 때의 우파에 대한 생각이 너무 강하다. 여기서 논쟁이 벌어지고, 논쟁을 하면 할수록 불신이 많아지고, 국론이 점차 더 많이 분열된다. 또 현 정부는 이것을 잠재울 실력이 없으니까 결국에는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조 전 부총리는 ‘과거의 우파’와 ‘과거의 좌파’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일까. 다시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7)”당시의 우파는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 향수를 품는다. 사실 그 시대가 그렇게 썩 훌륭한 시대는 아니었는데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 거기에 비해서 그 때의 좌파는 정말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지금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증오심이 더 늘어간다.”
결국 문제는 ‘과거의 우파’에게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사실 그 시대가 그렇게 썩 훌륭한 시대는 아니었는데”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행간 속에 담긴 메시지’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미 (구주류 세력에 의해)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과거의 좌파’, 곧 노무현 정부의 ‘경제통’들이 아무리 오해를 풀려고 해도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다분히 비관적인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기자에게 ‘완충과 중립의 지대’를 불허하는 ‘단절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한 석학의 절규로 들렸다.
(8)”좌파든, 우파든 자꾸 앞을 보는 자세를 가지고 과거를 잊어주었으면 좋겠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붕어빵’
그러나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언론은 당대의 석학이 절규처럼 토해낸 ‘충심의 고언’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았다. 18일이 흐른 뒤 그의 발언 중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몇 마디만 확대해서 뽑아낸 뒤 실체도 없는 ‘과거의 좌파’에 대한 ‘혐오’와 ‘증오’만 또다시 잔뜩 부추긴 것이다. 11월 8일자와 9일자의 주요 일간 신문이 연합뉴스 보도를 받아서 ‘붕어빵처럼 찍어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기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실명을 밝힌다).
“분배 얘기 입밖에 내지 말라”(동아일보, 신치영 기자)
“분배 얘기 입밖에도 내지 말라”(조선일보, 방현철 기자)
“분배 얘기는 입밖에 내지 말라”(문화일보, 차봉현 기자)
“분배 얘기 입밖에 내지 말라”(국민일보, 이용훈 기자)
“분배 얘기 입밖에도 내지 말라”(한국경제, 박수진 기자)
“분배 얘기 꺼내지 말라”(매일경제, 이승훈 기자)
“분배 얘기는 입밖에 내지 말라”(머니투데이, 이백규 기자)
“분배애기는 입밖에 내지마라” 앵무새처럼 똑같은 제목을 뽑은 각 일간지들.
그것은 ‘하이에나 언론’ 혹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하는 ‘붕어빵 기사’임에 분명했다. 아울러 그들 신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쓴소리’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기자가 확인한 범위 내에서는 유일하게) 조 전 부총리의 발언 전문을 빠짐 없이 독자에게 소개하는 한편 언론사나 기자의 가치 판단은 일체 유보한 이데일리(양효석 기자)만이 ‘충고’라는 객관적인 표현을 썼을 뿐이다. 이 ‘일사불란하고 전체주의적인’ 광란의 보도 대열에 동참하지 않은 중앙 일간지는 경향신문, 한겨레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확인해볼 것이 있다. 이정우 위원장이 도대체 어떤 발언을 했기에, 조 전 부총리는 “분배 얘기는 절대 입밖에 내지 말라”고 했던 것이며, 주요 일간지는 그것을 앵무새처럼 보도했던 것일까? 녹취록을 찾아본 결과 이 위원장은 분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성장 위주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아직도 ‘선성장 후분배’를 외치면서 분배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제대로 된, 그리고 한 차원 높은 성장을 위해서라도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 학계에선 압도적 정설로 통한다. 성장과 분배는 상충하는 것이라고만 배워온 사람에겐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분배를 잘 하는 것이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고 그들은 보고 있다. 지식정보화사회가 도래하면서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최근의 사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분배와 성장이 경제라는 수레를 앞으로 가게 만드는 두 개의 바퀴라고 보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도대체 이 위원장이 무슨 말을 했기에?
이 위원장은 이어서 재분배 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오해가 최근의 장기적인 경기불황과 내수침체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1만불 소득 수준이면서 3만불의 분배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비판하는데, 전혀 틀린 얘기이다. 선진국은 재분배 정책이 있기 때문에 불경기가 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이 풀려서 그것을 통해 소비가 진작되고 경기가 회복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재분배 정책의 경제 안정화 기능’ 혹은 ‘자동 안정 장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사회의 진폭을 줄여주는 자동 안정 장치가 매우 약하다. 그러다 보니 불황의 골이 깊고 오래 가는 것이다. 분배를 너무 해서 경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재분배 정책이 너무 없기 때문에 자동 안정 장치가 작동하지 못하고 불경기가 오래 가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재분배 정책은 사실 두 가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그 사례를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실시한 ’12·9 부동산 대책’이 그 중의 하나다.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이 한쪽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그런 불로소득의 원천을 막아야만 생산적인 방향으로 에너지가 모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12·9 대책은 성장을 위한 정책인 동시에 분배를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나는 빈부격차의 절반의 책임은 부동산 문제에 있다고 본다. 집값이 안정된다면 서민들이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참여정부 분배정책의 또 하나는 지난 7월에 세운 ‘아동빈곤 대책’이다. 몇 가지 정책을 세워서 예산을 늘렸는데, 그나마 1천8백억원에서 2천8백억원으로 늘렸을 뿐이다. 물론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분배주의니 좌파니 공격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한편 조 전 부총리가 이 위원장에게 ‘분배주의’와 함께 절대 거론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경영참여’였다. 그렇다면 경영참여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과연 어떤 발언을 했던 것일까. 다음은 그 발언의 요지이다.
“좌파정권 논란은 작년 7월 내가 네덜란드 모델을 소개한 것이 그 계기가 됐다. 신문이 한달 내내 네덜란드 모델을 대서특필했는데, 사실 그것은 ‘일자리 창출’을 얘기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과 기제에 불과하다. 1982년 바세나르협약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네덜란드 모델을 소개하면서 내가 말했던 것 중의 하나가 ‘제한된 경영참여’였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기업가의 경영권을 강탈해서 노동자에게 넘겨주는 주장처럼 비약됐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사실까지 왜곡했다. 네덜란드 보수당 정권의 통상장관이 방한한 적이 있는데 일부 언론이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으면서 ‘네덜란드에는 경영참여가 없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이다. 귀국 전날 직접 만난 그에게 물었더니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기자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읽어보길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 위원장이 강연회 서두에서 했던 발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려 하거니와, ‘하이에나 언론인’들은 늦게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읽어볼 일이다. 그대들이 기사를 쓰기 전에 ‘사실 확인’을 위해서 벌써 읽어야만 했던 것이지만.
“참여정부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주로 언론을 통해서 참여정부를 보게 되는데 언론 중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를 하는 언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언론도 있다. 언론만 놓고 보면 매일 전쟁을 치르는 느낌조차 든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대해서 직접적인 대면을 하지 못하므로 주로 언론과 소문을 통해서 참여정부를 바라보게 된다. 지금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지 않은 것 같고, 그 중에는 참여정부가 일을 잘못해서 당연히 받아야 할 비판과 비난도 있다. 그런데 잘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도 있는 것 같다.”
정지환 기자[email protected]
조순 전 부총리 강연 총평 모음
“정도 걷는 정치인 많이 나와야”
기자가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은 올 3월 11일부터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3회에 걸쳐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본지에 보도해 왔다. 기자가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개근생 매니아’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난 28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76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성실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특별한 사연이 없는 한 반드시 참석하는 조순이라는 당대의 석학이자 경제학자가 강연회 말미에 학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토해내는 총평이 들을 만 했다.
조순 전 부총리의 총평은, 약 1시간 동안의 강연과 30분 동안의 질의와 응답까지 모두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강연회 사회를 보는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은, 짧으면 5분에서 길면 10분 정도 이어지는 이 총평을 ‘클로징 리마크(closing remark)’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조 전 부총리는 총평을 하면서 ‘넉넉한 덕담’과 ‘따끔한 충고’를 대략 7:3이나 8:2의 비율로 섞는다. 따라서 언론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똑같은 총평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편견 없는 종합적 접근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다른 강연에서 행한 조 전 부총리의 총평 몇 가지를 모은 것이다.
“북한 개혁 개방 낙관은 일러”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장관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정연하게 피력을 해주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동안에 진전된 모든 일들, 예를 들어서 남북회담, 경제협력, 철도연결, 이산가족 상봉 등 여러 일들이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장관의 결론은 한마디로 북한의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과 고르바초프의 하드 랜딩(경착륙)을 통해 시장경제를 수용한 중국과 러시아의 전례를 볼 때 엘리트 집단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북한의 변화도 낙관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 일본 386의원에 대한 충고
(쓰에마쓰 요시노리 일본 민주당 의원) “대다수 일본 정객들과 전혀 다른 비전, 즉 AU(Asian Union) 건설을 제시한 일본의 386 세대인 쓰에마쓰 의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경술년 연초에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라는 자서전과 ‘동양평화론’이라는 저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의 완성을 위해 사형집행을 2주 정도만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애석하게 ‘동양평화론’은 완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인 중에서 AU를 제시한 사람으로는 안 의사가 유일하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참배하는 한 AU 건설은 실현되기 어렵다.”
“사람 개발에 미래 달려 있다”
(손욱 삼성인력개발원 원장) “일본 경제의 신화적 존재인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생전에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마쓰시다 전기가 무엇을 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는가?’ 직원이 전기 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라고 답하자 고노스케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우리는 사람을 만드는 회사라네.’ 결국 국가든 회사든 조직이든 사람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은 스피드의 시대, 초경쟁력의 시대가 아닌가. 옛날처럼 기초과학부터 차근차근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과학기술을 빨리 개발하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근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겨”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 “정도를 따른다고 해서 당장 정치가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도를 따르는 정치가가 많을수록 궁극적으로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정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렵지만 사실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이기도 하다. <논어>에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는데, 근본이 바로 서면 도가 생긴다는 뜻이다. <대학>에서도 근본이 어지러운데 그 끝이 잘 다스려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근본이 바로 서야 한다는 얘기는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정치, 행정, 경제 등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근본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