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무라스 라미슈빌리(주한 러시아 대사)
“한국과 러시아, 도우며 살자”
“러시아의 투르게네프, 푸슈킨, 톨스토이가 서구의 작가들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유는 그 만큼 감정의 동질성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조순 전 경제 부총리)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항한 투쟁의 과정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용기와 인내는 상상을 초월한다.”(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 “오는 9월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지난 8월 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조찬강연의 강사는 테이무라스 라미슈빌리 주한 러시아 대사. 한러수교 120주년, 한소수교 14주년이라는 역사적 인연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패널로 참석한 인사들은 긍정적 헌사로 그를 맞아주었다. 라미슈빌리 대사 역시 “러시아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발언 요지는 “러시아 경제는 살아났다”와 “러시아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바란다”로 정리할 수 있거니와, 경제·안보와 관련된 대표적 발언은 각각 다음과 같다.
“IMF 외환위기라는 홍역을 두 번이나 치렀던 러시아 경제는 지난 5년 간 안정적 발전을 거듭해 왔다. GDP가 40%나 증가했고, 공업생산과 실질소득도 비슷한 수준으로 향상됐다. 중앙은행의 확고한 의지에 따라 1991년 10억 달러에 불과하던 외환보유고도 올해 1/4분기에만 8백34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한반도 주변에서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반대한다. 우리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도, 핵 문제를 무력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동시에 반대한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보장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남북협력의 긍정적 분위기 지속과 발전 등 3원칙을 주장한다. 아울러 북미관계와 북일관계가 진전되는 것도 지지한다. 궁극적으로는 동북아 안전보장체제가 수립돼야 한다.”
그러나 이날 강연회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라미슈빌리 대사는 직설적으로 한국의 러시아 투자를 촉구하는 동시에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세계적 불황을 겪고 있는 자동차 조립산업이 러시아에서는 활발하다. 2004년 경차 생산이 전 년보다 두 배나 늘었는데, 포드사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투자 매력이 높아지면서 폭스바겐과 도요타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이 이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의 진출을 기대한다.”
“남한에는 성숙한 통일 논의가 부재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북한보다 남한이 더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남한의 많은 전문가들이 통일비용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치명적 액수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통일비용이 통일 논의 진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굴곡과 애증이 교차하는 양국의 역사적 관계상 약간은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다음은 강연이 끝나고 진행된 질의와 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스탈린은 한국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을 배후에서 조종한 프로듀서 역할을 담당했다. 경제협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양국 간의 역사인식 문제를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러시아 청년들도 스탈린과 히틀러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 정비를 통해 2차 대전 당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수행하고 교육하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6자 회담은 한국에겐 통일의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러시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시장경제와 관련한 풍부한 정보를 북한에 전달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장경제로 나오게 만드는 일이 러시아의 역할이라고 본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경험했던 나라이기에 북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아직 어려움이 많다. 유럽에 의해 시장국가로 인정받은 것이 채 2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개방 이후 외환위기를 두 번이나 겪지 않았는가.”
러시아가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으니,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외교적 메시지인 셈이다.
정지환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