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무분규 선언’땐 ‘평생공부’ 인센티브를!
사람 중심이냐? 일 중심이냐?
‘일하는 기계’ 취급당하지 않고, ‘공부하는 노동자’로 대접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최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인간중심 경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도저히 21세기 ‘일자리 창출’과 ‘제2의 경제도약’은 할 수 없다”며 “뉴패러다임으로 돌파하자”고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패러다임포럼(이사장 김성수)과 한국경영학회(회장 이우용)가 15일 오후 2시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제2 경제도약을 위한 국민대토론회’에서 문 사장은 ‘신경쟁력 창출, 삶의 질 혁신 및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전략’ 제하의 주제발표를 통해 유한킴벌리에 도입한 ‘재충전을 위한 평생 학습조’ 마련배경과 평생 학습조 편성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문 사장은 “최근 높은 실업률과 여성, 청년, 고령자 등 국민의 일자리 욕구가 높아지고 있으나 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은 저하되고 있다”며 “일자리 확대를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문 사장은 “인적자본에 의한 부가가치 창출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를 국가의제로 삼아 산업공동화 예방, 대량실업의 예방, 제2의 경제도약, 삶의 질 혁신을 이루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뉴패러다임으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서비스의 혁신, 장치산업의 교대조 증편을 통한 산재예방, 평생학습과 생활혁신을 위한 ‘4조2교대 학습조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뒤 “일자리 확대와 삶의 질 혁신 그리고 지적자본을 육성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문 사장은 이어 “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학습할 기회를 주고, 이로써 기업은 인적 자원을 개발하고, 안전근로와 적정근로를 통한 생활혁신을 이루도록 사회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며 근로자 평생고용 가능성을 제안, 노동자에 대한 기존 기업주의 인식전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문 사장은 “3년간 분규가 없는 사업장이 ‘무분규 선언’을 하면,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평생 학습체계’를 만들어 ‘공부하는 지속가능 노동자’로 사람을 키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영호 뉴패러다임포럼 공동대표(전 산업자원부 장관)도 ‘제2경제도약의 걸림돌과 극복방안’에 대해 발표하면서 “우리는 지금 제2의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상황”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일본의 도요타처럼 우리도 소위 ‘위기경영론’을 통해 제2의 경제도약 기회를 마련하자”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는 이례적으로 무려 13명의 토론자가 한꺼번에 나와 4시간에 걸친 긴 토론을 가졌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
“올해 분신정국이 이어질 정도로 노사분규가 심했다. 문 사장은 ‘3년간 무분규 선언’을 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했는데,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노조의 힘을 무력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의 입을 통해 인적 자원이 최대의 자원이라는 얘기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마인드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조한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오스트리아는 1950년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1960년대엔 노사정 합의를 통해 결국 70% 이상의 외국자본과 노동이 협력해 오늘날 가장 좋은 경제를 이룬 나라가 됐다. 오스트리아 노사정위원회는 전문분과위원회가 있고, 여기에 40∼50명의 전문가가 구성돼 있다. 이 위원회는 어느 기업이 임금인상에 직면해 있을 때, 해당 회사의 지불능력을 조사하고, 순조롭게 임금합의에 이를 수 있는 방식을 찾는다. 우리도 이처럼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생학습조 개념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된다면 지식경제의 새로운 경제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에서도 이 사업을 위한 정책과 토론을 해보겠다.”
김일섭 이화여대 부총장
“기능노동자를 어떻게 하면 지식근로자로 바꿀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이다. 유한킴벌리처럼 모든 초일류기업들도 오점을 없애기 위해 ‘식스 시그마(품질혁신과 고객만족을 달성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실행하는 21세기형 기업경영 전략)’를 이루려 한다. 좋은 성공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한 교육과 컨설팅이 필요하다. 유한킴벌 리가 벌이는 ‘평생학습조’ 같은 좋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종업원 전체의 공감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CEO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에 대한 정부지원도 필요하다.”
장광근 한나라당 국회의원
“참여정부의 상징적 목표는 동북아 중심 국가다. 그러려면 2만불시대가 돼야 하는데, 실제 정책입안자들은 ‘구호’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또한 노사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 경제활력 제고 위한 정신적 노력, 사회갈등 해결을 위해 ‘토론공화국’에서 ‘실천공화국’으로, 정치불안도 아울러 없애야 한다. 또 우리 경제가 신성장 엔진을 가질 수 있도록 기업육성 및 발굴, 인적자원의 발굴, 청년실업도 해소해야 한다. 야당도 대통령이 경제에 전념한다면, 뒷받침할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나라살리기범국민연대’ 같은 걸 만드는 것은 어떤가.”
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유한킴벌리가 하고 있는 평생학습조는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이 ‘학습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의미를 준다. 기업도 생산과 더불어 학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정부와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평생학습세계’를 만들어 결국 ‘공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노동계에서 일을 한 것만큼 가져가겠다는 것보다는 일한 것보다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이 생각부터 바꾸면서 건전한 직업윤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장만기 한국인간개발연구원 회장
“성공하는 기업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은 곧 사람’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미 우리는 인간이 만든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비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만큼 큰 소외는 없다. 사람이 만든 기업에 의해 배척 당하는 오늘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좋은 사람이 좋은 국가를 만든다’는 캠페인처럼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게 좋은 기업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노사관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업의 인간관’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이 자리가 인간자본론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손병두 전경련 고문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이렇다. 첫째, 우리나라는 반기업정서가 너무 강하다. 둘째, 부에 대한 질투가 너무 강하다. 역사적으로 부자에 대해 질투하는 나라치고 잘되는 나라 못 봤다. 셋째, 지나친 평등주의 사상이 강하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듯이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표퓰리즘(인기영합주의)가 너무 강하다. 또 규제가 너무 많다. 세계적으로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기업하기 좋은 풍토를 만드는 데 힘을 쓰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또 준조세가 너무 많다. 다른 나라 기업들은 부담하지 않는 것들이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도덕적 자산, 사회적 자본이 축적돼야 한다. 결국 현재 문제로 떠오른 정치자금 문제도 ‘기업인이나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문제’다. 유권자가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돈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제대로 됐을 때 우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위원장
“일자리 나누기나 4조2교대 보다 좀더 발전된 형태를 제안하고 싶다. 노동자들이 기업경영과 소유에 참가하는 모델이다. 그럼 더 달라질 것이다. 4조2교대 모델이 되면 노동자들의 소득이 줄어들텐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소유와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배당금을 받는 방식이 있다. 우리사주기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배당금으로 임금의 부족분을 매워가는 것도 좋다.”
이재정 열린우리당 총무위원장
“문 사장의 제안처럼 전문대학에 ‘사회인증제’를 주고 전문교육기관으로 인정한다면 우리사회에 좋은 인프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전문대학을 완전개방된 형태로 우주항공전문가를 양성하는 고급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문가 양성 훈련기관이 된다면 좋겠다. 정부가 어떻게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상의 지원과 정책적 지원을 할 것인가도 문제이긴 하지만 한번 시도해봄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효성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한국기업이 해외에 투자한 건수가 작년 1800건이나 이른다. 정부가 지금까지 노동정책을 단순히 노사관계에 얽매여 인력개발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 쓰지 못한 것 같다. 신산업을 육성하는 데 앞으로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표준근로시간에 매달리지 말고 변형된 근로시간, 평생학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다. 잠재성장력이 줄어들고 있고, 이는 실업을 증가시킬 위험이 크다. 문제는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질이 나쁜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 좋은 일자리는 경쟁력 높고, 나쁜 일자리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또 하나, 우리는 경쟁력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 삶의 질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도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기존의 일자리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좀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자리를 옮기게 할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존 일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사람중심의 기업경영 모델이 나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는 지금 저출산국으로 가고 있는데 이는 결국 미래의 노동력 위기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여성노동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 대안은 공공서비스 확충에 있다. 임신과 출산, 양육에 관한 사회적 지원이 된다면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또 하나, 여성이든 남성이든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이 하나의 일자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자리도 늘어나고, 일과 양육체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유한킴벌 리가 펼치고 있는 ‘평생학습조’ 시스템이 과연 작은 기업의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인지 따져볼 일이다.”
장영철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유한킴벌리가 시작한 4조2교대가 현실에 입각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유한킴벌리가 만든 ‘평생학습체제’는 인적 자본 확충에 의미를 둔 것이다. 보편성과 명확성으로 유한킴벌리 모델을 이해해야 다른 공공기관에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