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교수로서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리라는 각오를 채 굳히기도 전에 내게 떨어진 과제를 받아든 나는 한참 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 뉴욕타임스,선데이타임스 등 유수의 외국 언론매체에 한국과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고 광고까지 대행하는 일을 대하니 어떻게 일을 시작하고 풀어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어쩌랴. 하기 싫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내 영어실력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밖에 없었다. 강의준비와는 별도로 광고와 마케팅에 대해서 기초부터 다시 공부했다. 그리고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일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여러가지 상의를 했다.
그리고 미국 주요 신문 국내 특파원들을 만나 안면을 텄다. 이들을 통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또 이들을 한국 정부나 기업의 관계자들에게 소개,서로 마음을 트도록 하는 ‘거간꾼’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일을 진행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8면에 걸쳐 한국 정부투자기관과 기업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얻었다. 미국 유력지 영문판에 한국을 알리는 최초의 일이 나의 손을 빌려 이뤄지게 된 것이다.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학교 내에 ‘코리아 애드’라는 별도의 법인체까지 만들었다. 그러자 나를 보는 눈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공보수석이던 한기욱 박사가 직접 힘을 보태기로 나섰고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삼성물산,현대,쌍용,LG 등 쟁쟁한 기업들이 광고주를 신청했다. 이렇게 일의 내용이 구체화되고 규모도 제법 커지자 정부 관계자들이 내가 대학교수 신분인 점을 거북해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대학교수 생활을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는 30대 초입에 사업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일에 몸을 맡겼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거야’하는 자위로 이런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내가 대표가 되고 여러 국내 기업의 출자로 ‘KMI’(Korea Marketing International)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독립 광고회사로는 국내 원조격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동,아프리카 언론에까지 한국특집 기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좋아졌다. 이후 중동지역에 한국 건설회사들이 대거 진출하게 된 것도 이 때 한국에 대한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덕분임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런 식으로 ‘약발’을 받자 국내 기업체들의 광고 의뢰가 봇물터진 듯했다.
당시 외국에 나가 “6?25전쟁 이후 10년도 안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기사화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면 십중팔구 “OK!” 사인이 나왔다. 자연히 당시 정부 고위직 사람들과 자주 접촉했고,많은 돈도 벌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워낙 정치적인 바람을 탈 수밖에 없는 회사였던데다 1972년 유신계엄령 선포를 전후한 격변의 시대상황에서 오래 지탱되기 어려웠다. 거기다 나의 과욕까지 보태져 회사는 순식간에 흔적조차 없이 사그라졌다.
당시 사업에 대한 안목이 제법 밝아진 나는 무역업을 하면 충분히 성공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곤 사전 정지작업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웬 걸. 미국의 지인들을 통해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놓고 돌아오겠다는 나의 계획은 깡그리 무산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인해 해외에선 비판여론이 비등해 있었다. 그간 친분을 나눴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당신네는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라 북한에 진배없는 독재국가인데,어떻게 같이 사업을 할 수 있겠소?”하고 등을 돌렸다.
국내서는 더 큰 문제가 터져 있었다. 오랜 기간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KMI 직원들이 나의 믿음을 저버리고 각자 자기 살길을 챙겨서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다. 은행에선 부도처리가 임박해 있고 주요 서류들도 모두 없어졌다. 법적으로 문제될 일만 잔뜩 남은 채 졸지에 빈털터리 신세가 전락할 판이었다.
정리=정수익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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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KMI’라는 회사를 설립한 장만기 회장은 국내 기업들의 도움으로 해외 유수의 언론사들에 한국특집 기사를 게재,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