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답변에 모두가 감동 받아
해외 나가서 뻐기는 태도 버려야
예전에 방송국 사회자로 일할 때 우리나라 주류제조업계의 원로 CEO 한 분을 방송 프로그램에 모시고 대담한 적이 있다. 그 분이 마침 각종 한약재를 넣은 민속주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였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나는 덕담 삼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 술에는 한약재가 많이 들었다고 하던데 그 술을 마시면 진짜 몸에 좋은가요?’ 이 연세가 지긋하신 CEO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변하였다.‘어쨌든 술인데 몸에 좋기야 하겠습니까!’
이 대답에 나도 놀랐지만 PD도 놀랐고 카메라맨과 엔지니어도 놀랐다. 자기 회사 제품을 자랑할 만도 한데 이런 진솔한 답변을 듣고 나니 모두 감동을 받았다. 방송이 나간 후에도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있었다. 자랑이나 홍보성 발언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고백이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다.
요즘 우리나라는 자랑거리가 많아졌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서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한 것 자체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사례다. IT 강국이며 전자정부 평가에서도 세계 1등 국가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도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 게다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장국이며 원자력발전소의 수출국이기도 하다. 스포츠도 강국의 대열에 들어섰고 문화에서도 한류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유엔사무총장도 한국사람이다.
이처럼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자랑거리가 늘어나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외국인들에게 이런 것들을 자랑하는 경향이 생겼다. 우리의 자랑을 듣는 외국인들의 반응은 ‘놀랍고 대단하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존경심, 협동심, 자비심 등이 있는가 하면 질투심, 시기심, 경쟁심 등도 들어 있다. 우리가 자랑할 때 외국인들 중에는 부러움과 함께 시기심을 함께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얼마 전 해외연수를 떠나는 공직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였다.
‘밖에 나가서는 가급적 자랑은 적게 하고 겸손한 태도로 감사를 표하고 우리도 신세를 갚고 글로벌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이야기하세요. 이렇게 하는 게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일일겁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선진국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글로벌 시민정신을 발휘해서 우리의 매너와 에티켓을 한 차원 높이고 글로벌 봉사와 원조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자랑하고 뻐기는 태도를 먼저 고치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고 살았던 나라다. 이제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으면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도 보답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이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해외 휴가나 봉사활동을 나가서 우리나라를 자랑하기보다는 먼저 상대방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특히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해다. 6·25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에 가서는 반드시 감사를 표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개인의 인격도 나라의 국격도 스스로 자랑하면 낮아지고 겸손하면 올라가는 것이 이치다. ‘한국은 60년 전 전쟁으로 나라가 폐허가 됐지만 온 국민이 피와 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나라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을 도왔던 세계 여러 나라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고 이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은 은혜를 잊지 않는 정말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국격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
윤은기 중앙공무원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