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축산학과 선배들, 1억3000만원 모아 전셋집 구해줘
지난 9일 오전 8시쯤 서울 관악구 신원동 한 다세대 주택에선 청년 6명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욕실과 방을 오가며 씻고, 옷 입고, 가방을 꾸렸다. 등교 준비를 하는 이들은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의 동물생명공학(옛 축산학)을 전공하는 3학년 5명과 대학원생 1명이다. 지방에서 유학 온 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무료로 산다.
공학전공 학생 6명이 등교를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은 교수와 선배들이 전세자금 1억3000만원을 모아 마련해줬다. /이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이들이 사는 집은 선배 졸업생 7명이 후배들을 위해 전세를 얻어줬다. 아이디어는 이 학과 김유용 교수가 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을 면담했더니 신림동 인근 자취방 월세가 40만원 정도라 학생들 부담이 크다고 하더라”며 “장학기금을 만들어 그 이자로 장학금을 주는 것보다 무료로 지낼 집을 마련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4월 축산학과 20년 선배이자 양돈업을 하는 윤희진 ‘다비육종’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윤 회장은 흔쾌히 응낙했고 다른 동문도 추천해줬다. 두 달 뒤 63학번 윤 회장부터 83학번 성암영농조합법인 이성철 대표까지 축산학과 동문 7명이 1억3000만원을 모아줬다. 선배들은 이 돈으로 방 3칸에 거실, 주방, 욕실이 딸린 30평(99㎡) 남짓한 전셋집을 얻고,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서 넣어줬다
처음 입주한 학부생 5명은 고향이 경남·전남·인천으로 매달 방세 40만원을 내고 자취를 했었다. 김성운(22)씨는 “방세와 생활비만 매달 70만~80만원이 들어 부모님에게 늘 미안했는데 부모님 부담을 덜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입주 학부생 5명의 전공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대학원생 김영주(26)씨도 이곳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여섯 청년은 선배들의 후배 사랑이 담긴 이 집 이름을 ‘돈우회’라고 붙였다. 학생들이 축산학을 전공해 돈우회 첫 자가 ‘돼지 돈(豚)’자인 것으로 오해받지만, 도타울 돈(敦) 자다. ‘돈독한 벗들의 모임(敦友會)’이라는 뜻이다. 돈우회에서 청년들은 지켜야 할 규칙도 만들었다. ‘설거지는 바로 하기’와 ‘자기가 어질러 놓은 것은 자기가 치우기’다. 최태환(21)씨는 “빨래할 때도 내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 것도 같이 모아 하게 된다”며 “친구들과 재밌게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