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철 한국파이낸셜플래너협회장■
“금산분리 완화 안 하면 우물안 개구리 못 벗어나”
●결과평등주의를 기회평등주의로 바꿔야
●론스타도 은행 사는데 국내기업은 왜…
●금융을 핵심산업으로 키워야 경제 도약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씨가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의미를 어떻게 보나.
과거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에는 경제의 성장동력을 계속 유지하고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균형 발전과 양극화 문제가 생겨났으며, 이는 외환위기를 지나오면서 더욱 심화됐다. 이에 따라 노무현정권은 균형발전과 양극화 해소에 주력했지만, 여기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경제의 성장동력이 저하됐고 양극화 문제도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욱 심해지고 말았다.
결국 균형발전보다는 경제활성화가 우선이라는 인식 하에서, 그런 비전을 제시한 이 당선자를 국민들이 선택한 것 아닌가 한다. 특히 CEO 출신으로 경영을 잘 알고, 청계천 복원과 서울교통체계 개편 등 구체적 실적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선택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경제활성화에 대한 염원을 반영, 여러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이 당선자는 경제를 꼭 살리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살려야 할까.
그동안 고도성장기의 부작용 해소를 위해 형평문제와 균형발전, 복지 등을 너무 중시해서 이념적으로 끌고 간 데 대해, 국민들의 우려가 있었다. 경제활성화의 원동력인 기업들이 위축돼 투자의욕이 살아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심리적으로 분위기를 일신, 투자의욕과 적극적인 경영의지를 회복시켜야 한다. 각종 기업규제와 가진 자에 대한 세금공세 등을 완화해 경제심리를 활성화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다. 어차피 기업과 경제인들이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심리적 변화가 경제활성화에 필수적이다. 기업하기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규제를 풀어 위축된 심리를 바꿔줘야 한다. 특히 출자총액제한제와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이하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부동산정책에서의 신뢰회복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 유도를 위한 일관성 있는 미래정책이 필요하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생산적인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 부분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옥죄던 것들을 과감히 풀어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동안은 너무 ‘결과평등주의’에 치우쳤는데, 이젠 ‘기회평등주의’로 바꿔야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는 2분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파이를 키워 나누는 노력이 바람직하다.
▶경제 살리기에는 산업 못지않게 금융도 중요하다. 신정부에 바라는 금융정책이 있다면.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투자와 자금수요가 많아서 만성적 자금부족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투자기회가 없으니 자금수요도 적다. 금융저축은 많고 투자는 부족하다. 축적된 저축을 유동화시켜 생산적으로 활용하게 해야 하는데, 이 자금이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이 아닌 생산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게 금융의 역할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분위기를 만들어 금융을 핵심산업, 미래전략 산업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유구조상의 금산분리 완화 등으로 금융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지배구조도 강화시켜야 한다. 또 금융종사자인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이 당선자도 금산분리 철폐를 공약했다. 금산분리 문제의 당면 타깃은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문제일텐데, 우리금융 회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는가?
과거 자금수요가 지속적으로 공급을 초과했던 시절에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특정 재벌의 금융혜택 독점을 초래할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금수요가 남아돌고 과잉저축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금산분리는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 금융기관의 소유구조를 강화해 전략적으로 해외에도 나가고,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다만 부채가 많은 기업이 은행을 갖게 되면 고객의 돈을 유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기자본비율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은행 수준으로 엄격히 요구한다면,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를 허용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부작용을 막으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금산분리를 완화하는 방법이다.
론스타 같은 해외 헤지펀드는 국내 은행을 살 수 있고 국내의 건실한 대기업은 못 사게 해서야 되겠는가.
▶기업은행이나 한국산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금융은 시장경제에 맡기는 게 좋다. 꼭 필요한 정책금융 부문을 제외하고는 다 민영화시켜야 한다. ‘이콜 푸드(=food)’ 즉, 같은 입장에서 경쟁시켜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게 필요하다.
▶2008년 우리 은행산업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떻게 전망하나?
자금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다소 위험하더라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고, 은행예금보다 자본시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저금리 상황에서 가계자금이 펀드 등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금융저축의 30%가 은행예금이지만, 선진국은 10%에 불과하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도 은행예금이 이탈해 펀드 등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전통적 은행업무는 위축이 불가피하고, 서비스 다양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에 대한 대비에 성공하면 괜찮지만, 실패하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최근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등 10년 전 외환위기 시절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예금이 이탈하다보니 은행들이 은행채를 과잉 발행하고, 그래서 금리가 상승하고 수익구조가 악화되는 상황이다. 예금은 만기가 되면 내줘야 하고, 미스매치에 따른 자금부족을 메우기 위해 사채를 쓰고, 그 금리차에 따라 수익이 악화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전통적 예대마진에 의존해서는 어려울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 등 향후 국내 금융산업의 대변화가 예상된다. 우리 금융기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009년 자통법이 시행되면, 비은행 부문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에 대비해야 한다.
자본시장 상품은 은행예금, 대출보다 훨씬 복잡하다. 펀드만 해도 어떤 자산이 얼마나 편입됐고 어떻게 운용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그런 리스크를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금융기관도 이런 규제에 대비해 상품을 팔 때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도록 직원들을 사전 교육시키고, 윤리기준을 확보해야 한다.
▶자통법은 투자은행(IB) 업무를 육성해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국내시장이 비좁으니까 자꾸 해외로 나가려 하게 마련이다. 동북아면 동북아, 동남아면 동남아 이런 식으로 지역은행으로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시대적 추세로서 신정부도 현 정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을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본다. 산업사회가 성숙되면 서비스산업이 주력이 되고, 서비스의 핵심은 금융이다. 우리도 국민경제 규모로 볼 때,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외국 금융회사가 많이 들어와야 하고,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거주하고 생활하기 편리해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외국인이 살면서 일하기 편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금융허브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라 언어소통, 제도, 세금, 법률, 문화, 통신, 의료, 교육 등 모든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IB업무 강화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 자통법으로 금융권 간 장벽을 허물었으나, 금융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전문적 인재를 키우고, 또 외국에서 그런 인재가 와서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한다.
▶현재 파이낸셜플래너(FP)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의 자산관리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과거에는 가계자금이 은행을 거쳐 기업으로 대출되는 단순한 구조였다. 항상 자금이 부족해 고금리가 계속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저금리로 가계자금은 은행보다 수익성 높은 펀드 등 자본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은행예금보다 리스크가 높다. 따라서 이 리스크를 개인들이 잘 관리할 수 있도록 곁에서 제대로 도와주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게 바로 FP다.
더욱이 사회가 급속히 노령화되고 조기 퇴직이 이뤄지면서, 은퇴 후 살아가야 할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이를 위한 준비를 미리 해둬야 한다.
선진국은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및 기업연금으로 노후자금의 70%를 충당할 수 있어 개인은 나머지 30%만 준비하면 되지만, 우리는 국민연금이 너무 적고 기업연금은 이제 막 시작단계다. 노후자금의 대부분을 가계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람들이 노후준비의 시급함을 잘 모르고 있다.
가계가 건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면, 그 사회도 건실해진다. 현재 국내 저축이 800조 원 규모인데, 그중 1%만 늘려줘도 8조 아닌가? 그런 역할을 해 주는 게 금융전문가인 FP다.
시장경제에서 모든 자원은 잘 활용돼야 한다. 저축된 잉여자금을 잘 운용하는 게 투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실천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이는 금융산업 발전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2008년 재테크 기상도는 미국의 신용위기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높다. 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게 현명할까?
모든 것에는 천장이 있다. 200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과 증시 등 시장이 계속 좋았다. 그러다 보면 과잉공급이 되고, 결국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경기는 사이클을 그리는 것이고, 지금은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경기 확장기에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같은 파생상품시장이 계속 커졌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신용위기를 초래했다.
이렇게 불안할 때는 안정적인 투자자세가 좋다. 그렇기 때문에 FP 같은 전문가가 더욱 필요하다.
■ 193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거제 하청고,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농업은행에서 금융인 생활을 시작, 한국개발금융, 장기신용은행을 거쳐 한국투자금융사장이 됐다. 1991년 한국투금이 하나은행으로 전환하면서 은행장이 됐고, 1997년 회장에 올랐다. 2001~2004년 우리금융지주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파이낸셜플래너협회 회장 겸 한국 CEO포럼 공동대표.
윤광원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