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은 평양과학기술대 총장이다. 일반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북한의 유일한 국제 대학이다. 2001년 통일부와 북한 교육성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며 2009년에 개교했다. 그가 평양과기대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연변과학기술대의 창립자이기도 한 김진경 총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이 이사장은 현대건설(주)의 협력사로서 조경 분야에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기업인이었다.
1990년 칭다오(靑島)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양상쿤(楊尙昆) 국가주석의 아들인 양사오밍(楊紹明)을 만나러 간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김 총장의 비전과 삶은 그의 인생행로를 180도 바꾸어 놓았다. 기업인에서 교육자로 변신한 것이다. 이후 연변과기대의 건설과 학사 운영에 적극 참여했으며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학교 건설의 바쁜 와중에 그는 연변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연구했으며 베이징 중앙민족대에서 수학하며 법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평양과기대 설립 시에도 건축위원장으로 참여했으며 대외부총장으로 학사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2021년 제3대 총장에 취임했다. 이 대학은 북한 젊은이들을 국제사회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인재로 육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구의 교수진에 의해 강의는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졸업 후 선진 각국에 유학하여 그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다. 졸업생들은 북한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07년에 이 이사장은 동북아공동체연구회(지금 재단의 전신)를 만들었다. 이 재단은 15년째 한·중·일 3국 간의 실질적인 국제 협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한반도 통일 문제와 러시아와의 북방 협력에 대해서도 폭넓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으며 동북아 문제의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로서 2019년에는 목련장을 수훈했다. 2007년 한일경제협회가 주관한 환황해기술교류회의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적극적이며 친화력 있는 첫인상이 깊이 각인되었다. 퇴임 후 재단의 회원이 되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던 2019년 봄. 나는 주위의 만류에도 일본열도 도보 종단에 나섰다. 1111㎞를 두 다리로 걸었다. 걷는 동안 현지인들과 교류한 경험을 모 경제신문에 16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그는 이를 재단의 매체인 ‘감격사회’에 전재해 회원들에게 홍보해주었다.
귀국 후에는 관계자들과의 식사 자리를 만들어 노고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재단 차원에서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남에서 참포도나무병원을 운영하는 큰아들은 아버지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부인 박재숙 박사(반도이앤씨 대표)는 이 이사장이 하는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직원들과 함께 봉사한다. 부창부수란 단어가 어울리는 부부다.
이 이사장 부부는 바쁜 공적 활동 속에서도 삼 남매를 훌륭하게 길러내었다. 손주가 9명이나 되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부럽다. 75세인 그는 나이를 잊고 산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활기가 넘쳐 주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준다. 103세 김형석 교수가 건강 비결을 공부와 일이라고 했는데 그 전형이 이 이사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뜻한 리더의 품격을 지닌 그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인생 모델이기도 하다.
‘혼자 꿈을 꾸면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그는 입에 달고 산다. 그가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를 통해 33년간 지키고 키워온 꿈에 동참하게 된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협력 공동체라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아무쪼록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이승률 이사장님 존경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료출처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3011001032836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