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문학 리포트] 플라시도 도밍고 |
열일곱에 아들 낳은 탕아는 어떻게 `오페라의 대통령` 됐나 |
스리 테너의 시대는 저물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세상을 떠났고 호세 카레라스는 가끔 리사이틀 무대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플라시도 도밍고만은 예외다. 만 69세를 넘긴 나이지만 목청은 여전히 쩌렁쩌렁하며 워낙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데다 폭넓게 존경까지 받고 있어서 가히 `오페라계 대통령`에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늙었어도 여전한 매력남이고, 뛰어난 판단력과 빈틈없는 추진력은 공연계에 널리 알져져 있으니 뭔가 부족한 면을 찾을 수 없다.
◆ 카루소와 파바로티를 넘어선 역사상 최고 테너
= 지난 수년간 도밍고가 누린 명예 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2008년 봄,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저널 BBC뮤직 매거진은 유럽 평론가들 투표를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너`로 도밍고를 선정했다. 이로써 도밍고는 오랜 라이벌인 파바로티뿐 아니라 엔리코 카루소, 베니아미노 질리, 마리오 델 모나코, 주세페 디 스테파노, 프랑코 코렐리를 비롯한 과거의 전설적 테너들이 누린 평판을 넘어섰다.
작년 3월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도밍고의 이 극장 데뷔 4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실 정확한 40주년은 2008년 9월이었지만 극장 창립 125주년 행사와 붙여서 그 역사를 상징하는 최고 테너라는 경의를 표하고자 일정을 바꾼 것이다.
노래 외적인 명예도 많다. 2007년 여름, 청소년기를 보낸 멕시코시티에 도밍고 동상이 들어섰다. 지진 피해를 입었을 때 보여준 헌신적 자선 활동을 기린 것이다. 미국 뉴올리언스시도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이 지역을 위해 자선 음악회 등을 펼친 도밍고에게 감사의 표시로 시립극장 무대를 `플라시도 도밍고 스테이지`로 명명했다. 엄청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는 완벽한 남자였을까.
◆ 성악가를 넘어선 발전형 인간의 전형
= 그렇지 않다. 이처럼 성악가 범주를 넘어 세계적인 인물로 추앙받는 이유는 평생에 걸쳐 변화를 추구하고 다재다능한 역량을 축적한 `발전형 예술가`, 아니 `발전형 인간`이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도밍고 부모는 스페인 민속가극단을 운영했지만 본바닥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멕시코로 흘러들었다. 도밍고 역시 청소년기를 멕시코시티에서 보냈는데, 열여섯 살 때 여자와 동거하고 이듬해에 아들을 봤을 정도로 열정만 앞서는 제멋대로인 아이였다. 그러나 결국 쓰라린 아픔을 겪었고 이때부터 `탕아의 귀환`이랄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 멀리 보는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고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성과 개선을 반복하면서 최고 가수가 됐다. 바리톤으로 시작했다가 테너로 전향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테너로서도 이탈리아 오페라에 머물지 않고 프랑스, 독일 오페라로 점점 영역을 넓혔다. 지금까지 오페라 130여 개를 소화해 역사상 가장 많은 레퍼토리를 보유한 테너가 됐다. 기네스북에 실릴 일이다. 지난 시즌에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를 부르고 싶어서 바리톤으로 잠시 외도하기도 했다. 가수로 절정에 도달한 다음에는 지휘자로 나선다는 목표를 일찌감치 세워놓고 지휘에도 발을 담갔다.
물론 비판도 많았지만 차근차근 실력을 붙여나가더니 이제는 적어도 오페라에 관한 한 뛰어난 지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행정에도 관심을 보이더니 미국의 워싱턴내셔널 오페라, 뒤이어 LA 오페라까지 책임지는 총감독이 됐는데, 두 극장은 도밍고가 부임한 이후 놀라운 질적ㆍ양적 성장을 이뤘다.
◆ 예술계와 사회를 향한 기여에 앞장
= 예술계와 사회를 위한 객관적 기여도 활발하다. 우선 사재를 털어 `오페랄리아`라는 성악 콩쿠르를 만들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 입상자를 세상에 알리는 데도 헌신한다. 우리나라 베이스 연광철, 요즘 최고 인기 테너인 멕시코의 롤란도 비야손이 모두 이 콩쿠르와 도밍고의 열성적인 배려에 힘입어 성장했다. 앞에 언급한 멕시코시티 동상, 뉴올리언스 시립극장 얘기도 마찬가지다. 기부에 만족하지 않고 촌각을 다투는 일정에도 현장에 달려가서 직접 뛰며 도와주는 성격이기에 모두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오페라 가수로 파바로티가 도밍고보다 먼저 성공을 거뒀고 `역사적`이라는 오페라 명반도 파바로티가 더 많이 남겼다. 그런데도 그 위상이 역전돼 도밍고가 더 높이 평가받게 된 이유, 그 `열정과 헌신`은 모든 리더에게 시사점을 줄 것이다.
[유형종 음악칼럼니스트ㆍ뮤지크바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