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4/2010052402233.h… [1068] |
http://weekly.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4/2010052402233_2… [1087] |
|
- ▲ 집안 서재에서 담소 중인 이승한·엄정희 부부. photo 정복남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사람은 겉만 보고선 알 수 없다. 특히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일수록 더 그러하다. 부부의 날(5월 21일)을 이틀 앞둔 지난 5월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에서 만난 이승한·엄정희 부부가 그러했다.
남편 이승한(64) 홈플러스 회장은 인재의 산실(産室) 삼성 비서실 출신으로 ‘대한민국 최고 CEO(최고경영자)’ 중의 한 명이고 부인 엄정희(60) 서울사이버대 교수는 경기여고-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가족상담학의 권위자다. 겉으로만 보면 이 부부보다 행복한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다. 역경을 딛고 최근 부인은 부부행복 지침서를 펴냈고 이를 계기로 이 부부를 만났다.
이 부부는 해마다 5월이 오면 가슴이 찢어진다. 가슴에 묻은 아들 생각이 나서다.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느 자식인들 귀하지 않겠냐만 이 아이는 오랜 고생 끝에 가졌고 총명하고 효자였기에 아픔이 더 크다.
결혼 5년 만에 낳은 아들
엄 교수는 결혼 후 해가 바뀌어도 아기 소식이 없어 애를 많이 태웠다. 그래서 아이를 갖기 위해 생사탕에서부터 염소탕, 개소주, 육모초 등 민간·한방 요법을 불문하고 좋다는 건 다 먹어봤다. 서울대병원 불임클리닉에 다니던 그녀는 남편 몰래 난관통기법(卵管通氣法)이라는 산부인과 수술을 받으면서 1978년 6월 29일에는 남편과 친정부모 앞으로 유서까지 써두기도 했다. 난관통기법은 난관이 막혔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난관에 공기를 통과시켜 보는 수술이다. 위험이 전혀 없는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그녀는 위험한 수술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그녀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결혼 약 5년 만인 1979년 11월 22일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들 성주는 잘생기고 총명하고 효심이 깊어 부모를 늘 기쁘게 해주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날’이 왔다. 1986년 5월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 성주가 학교 체육시간에 넘어져 의식을 잃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엄마가 아프면 꼭 엄마 머리맡에 와서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엄마를 빨리 낫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 주던 아이였다. 이랬던 아들이 1년간의 투병 끝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미친 여자처럼 거리를 울면서 헤맸다. 그토록 사랑하던 신이 원망스러워 난생처음으로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친정아버지가 대학강사 자리를 주선해줬다. 그러나 심신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고 마음속으로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1988년 3월 엄 교수는 응급실에 구급차로 실려가서 주사를 맞고 깨어났다. 수원전문대학에 영어강사로 출강하면서 아들을 잊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면서 과로한 탓이었다. 딸 현주(1982년생)와 파출부가 같이 구급차를 타고 갔다. 나중에 파출부로부터 딸 현주가 구급차 안에서 고사리손을 모아 “하나님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하고 내내 울면서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딸아이와 남편, 친정부모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발길을 끊었던 교회도 다시 나갔다.
“사모님 태권!” 눈에 어른거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도 모자랐는지 이번에는 병마(病魔)가 엄 교수를 덮쳤다. 1988년 4월 6일 그는 의사로부터 위암을 선고 받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5년간의 투병 끝에 암을 이겨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아직 그녀는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녀가 쓴 일기 중 1989년 8월 24일자를 보면 태권도복을 입고 태권도 학원에 가는 아이들을 보고 아들 생각이 나서 엉엉 울었다는 대목이 있다. “성주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태권도 교실에 갔던 첫날, 이마에 손을 대고 ‘사부님 태권’ 하며 인사를 하고 나와야 하는데 첫날이라 몰라서 ‘사모님 태권’이라 인사하고 나왔대요.”
1966년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써왔지만 아들이 다친 때인 1986년 5월부터 1988년 2월까지 2년10개월 동안은 일기가 아예 없다. 그 후에 재개된 일기에는 자식을 잃은 어미의 비통한 심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일기를 써보면 좀 나을까 펜을 들어 보았으나 상처가 너무나 쓰리고 아파서 어떤 약이라도 바를 수가 없구나.”(1988년 2월 10일) “성주가 떠난 지 10개월, 난 아무래도 이 세상 사람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같은 해 2월 21일)
그러나 궂은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이다. 다행히 남편은 이 세상에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애처가였다. 몸이 약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면서도 출세가도를 달렸고 마침내 홈플러스를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냈다. 딸 현주는 철이 일찍 들었다. 엄마가 몸이 약한 데다 오빠가 일찍 저세상에 간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시련은 이들 부부를 더 강하게 결속시켜줬다. 그녀는 아들 몫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1993년부터 5년간 서울 올림픽사거리 부근에서 영어학원도 경영했다. 그런 후에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학도(晩學徒)의 길을 걸었다. 2004년에는 이화여대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지난해에는 백석대학에서 가족치료·부부치료를 전공해서 상담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癌 극복한 부인 만학도로 박사학위
엄 교수가 ‘17일간의 부부항해 내비게이터’라는 책을 낸 것은 대학 과제가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 학기 대학에서 가족 상담을 강의하면서 존 브래드 쇼의 ‘가족’이란 책을 읽고 이 책 내용을 자신의 가정에 적용해 보라는 중간고사 과제를 내주었다. 그는 역기능 가정(결손가정)이 50% 정도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으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학생, 부모님 다투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에 솜을 막고 잠을 청했다던 학생 등 가정에서 상처 받은 학생이 너무 많았습니다. 역기능 가정이 80%를 웃돌고 있었던 것이죠.”불행한 가정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책 제목이 ‘17일간의 부부행복 내비게이터’인 이유는 행복한 가정의 핵심요소인 부부의 행복요인을 17개로 분류해 하루에 하나씩 익히면 17일 만에 마스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 책에는 그녀의 방대한 상담 경험과 36년간 체험한 부부생활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또 지금까지 부부관계를 다룬 책은 한두 가지 요소만 다룬 게 대부분이었으나 이 책은 전반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는 데다 사례 위주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도 미덕이다. 이승한 회장은 “(아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36년간 나를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며 농담을 던졌다. 시중의 반응도 좋다. 이 책은 지난 5월 18일 교보문고 ‘결혼·가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4월 말부터 교보문고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초스피드로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셈이다.
이들은 1974년 9월 17일 이 회장의 직장선배 손병두 KBS 이사장의 소개로 서울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이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로 입사한 후 당시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배치되던 비서실에서 근무 중이었고 엄 교수는 당시 대부분의 대졸 여성이 그러했듯이 1973년 대학 졸업 후 신부수업 중이었다. 손병두 이사장은 당시 삼성 비서실에서 같이 근무 중이었다.남자와 여자는 대조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남자는 경북 칠곡에서 아들만 일곱인 집의 막내였고 부친은 정미소를 운영했다. 여자는 서울에서 딸만 여섯인 집의 둘째였고 부친은 국세청장과 삼미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남자가 좀 기우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목소리가 예쁘고 여성적이고 착한 것 같아서” 넘어갔고, 여자는 “남자가 꿈이 많고 비전이 정직한 게 마음에 들어서” 교제를 허락했다. 남자는 “나는 너무 가난하다”며 “연탄불 때봤냐?”는 썰렁한 질문도 던졌다. 여자의 대답은 이랬다. “안 때봤지만 할 수 있어요.” 고관대작집 서울 처녀와 가난한 경상도 총각의 로맨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세 번째 데이트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서 총각은 처녀에게 차돌을 선물로 줬고 순진무구한 처녀는 이것을 받고 감동 받아 마음을 열었다. “프러포즈 선물로 차돌을 받은 여자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친구들이 너무 싸게 넘어갔다고 놀려요.” 그녀는 이 차돌을 이사갈 때마다 챙겨서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 차돌은 이 집의 ‘3대 보물’ 중 하나다.
- 프러포즈로 차돌 선물
곧 난관이 출현했다.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예비 장모가 반대하고 나섰다. 처녀의 모친은 “가난한 시골총각한테 우리딸을 줄 수 없다”며 “네가 헤어지자고 말하기 곤란하면 엄마가 대신 말해주마” 하고 딸을 데리고 총각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엄 교수의 말.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결별통보하고 30분 만에 오겠다는 분이 세 시간이 지나서야 오시는 거예요.” 모친의 말은 더 걸작이었다. “사람이 괜찮더라.” 엄 교수는 “제가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가 제 친정동생들한테 형부 잘 골랐다고 칭찬 받으셨다”고 말했다.두 사람은 1975년 1월 31일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넉 달 보름 만이었다. 신혼살림은 서울 여의도의 20평짜리 전세집에 차렸다. 처가에서 둘째딸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집을 하나 사주겠다고 했으나 둘째 사위는 “저희 힘으로 집을 마련하겠다”며 단호히 사절했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어진 새댁에게는 이런 기백도 멋져보였다. 그는 처가에 대한 약속을 빨리 지켰다. 대출을 받아 결혼 8개월 만인 그해 9월에 작지만 내집을 마련했으니 말이다. 대신 돈 되는 것은 다 팔았다. 여기에는 결혼반지, 한복 마고자 금단추, 롤렉스시계 등 혼수품도 포함된다. 이 회장은 “아내 다이아몬드 반지만 빼놓곤 다 팔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천하가 알아주는 잉꼬부부지만 처음부터 완벽하게 호흡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이들도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도 했다. 성장환경과 성격 차이로 처음에는 사소한 충돌도 있었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성격이 급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아내는 완벽주의자에 정리정돈형이었다. 이 회장의 증언. “신혼 때 일입니다. 한번은 집에서 일하려고 회사 서류를 가져와서 책상 위에 놔뒀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다 뒤진 끝에 쓰레기통에서 찾았습니다. 아내는 아침 신문도 저녁 때면 치워버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녀는 어질러놓는 걸 못 참는 스타일이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반드시 남편에게 물어보고 치운다.
말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아내는 조곤조곤 처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편이지만, 성격도 급한 데다 늘 바쁜 남편은 대뜸 “결론부터 말해봐” 하고 말을 자르기 일쑤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한테 “여기는 회사가 아니에요” 하고 역공을 취해서 남편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만든다. 두 사람은 이런 식으로 타협의 기술을 익혀나갔다.
신혼부부 뺨치는 ‘잉꼬커플’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연애하듯이 해왔다. 이들을 보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헷갈릴만큼 서로가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내는 가난한 신혼 시절부터 남편한테 지극정성이다. 36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이 출근할 때 차 타는 곳까지 배웅을 하면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한다. 이사 온 지 6년 된 타워팰리스에서도 물론 날마다 한다. 60대 노부부가 웬만한 신혼부부 뺨치는 ‘닭살행각’을 날마다 벌이자 이곳 주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66층 선배 어머니’를 본받자는 움직임이 확산됐고 요즘은 남편이 출근할 때 차 타는 곳까지 내려와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주부가 많다고 한다.
아내는 매월 ‘절편 세리머니’를 한다. 남편 월급 다음날에 시장에서 절편을 한 상자 사서 예쁜 인사말을 담은 카드를 붙여 남편에게 준다. “매월 월급봉투를 직접 갖다줄 때는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한 달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감사를 표했는데 월급을 직접 통장으로 넣어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남편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는 다음날에 남편이 좋아하는 떡을 사서 드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관련된 기록은 뭐든지 모으고 있다. 이 집에는 이 회장 관련 파일이 수십 개나 있다. 신문기사는 물론 남편의 강연기록, 사령장 등 별의별 것이 다 있다. 심지어 결혼 전인 1970년 6월 10일자 삼성그룹 사보도 스크랩돼 있다. 사보 제목은 ‘입사 6개월 좌담회’이고 이 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기획조사실 소속 말단사원이었다. 10년 전부터는 자진해서 남편을 위해 ‘프렌드십 노트’도 만들었다. “남편이 워낙 인간관계가 넓어서 제가 남편 대신 남편의 인맥을 분류하고 추가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최고의 비서’인 덕분에 이 회장은 인맥을 정리하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다. 이런 아내를 만나서 출세 못하면 그 남자가 이상할지도 모른다.
엄 교수도 남편 복이 많다. 이 회장은 우선 잘난 남자다. 그는 홈플러스를 출범 3년7개월 만에 점포 2개의 업계 꼴찌(12위) 기업에서 점포 115개의 2위 기업으로 키웠고 지금은 1위와 거의 근접한 수준에 도달했다. 점포 평당 매출액은 업계 최고다. 국가대표급 CEO인 그는 최근에 또 기적을 만들었다. 2008년 인수한 홈에버 32개 점포를 최근 회계연도(2009년 3월~2010년 2월)에 750억원 흑자로 돌려 놓은 것이다. 인수 전 홈에버는 1939억원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 ▲ 이승한·엄정희 부부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
- 아내 주려고 1인분 더 포장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중에는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는 매우 가정적이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정이 깊고 결혼 후에도 연애하듯이 36년을 살아왔다. 그는 바깥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아내를 주려고 1인분을 더 포장해서 가는 그런 남편이다. 오죽했으면 엄 교수가 1998년 2월 24일 일기에 “승한씨는 때때로 마치 ‘와이프한테 누가 제일 많이 많이 잘해 주고, 누가 자기 와이프를 제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경연대회에 나온 사람 같다”고 적어놨겠는가. 각종 기념일에 카드를 주고받는 것은 이들 부부 사이에는 기본에 속한다. 가정적인 남편이 이끄는 회사답게 홈플러스는 가족친화적인 기업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지난 5월 15일의 창립 11주년 기념식을 가족까지 참여하는 행사로 진행했다.마지막으로 이 회장 내외에게 요즘 유행하는 네모 질문을 던졌다. “부부는 또는 가족은 ( )다.” 다른 시간대에 따로 대답한 이들의 답은 놀랍게도 똑같았다. ‘날개’였다. 이유도 비슷했다. “부부는 그리고 가족은 서로를 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엄 교수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젊은 여성들은 어느날 자기 이상형이 백마 타고 나타날 거라고 믿는데 36년간 결혼에 대한 임상을 해 보니까 서로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의 이혼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이승한·엄정희 커플은 진정한 부부란 무엇인지, 남녀가 서로 아끼면서 살면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 박영철 차장 [email protected]
- 프러포즈로 차돌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