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작년 연말에 좋은 일이 꽤 있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운영을 잘 했다고 본다. 또 국민들도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부디 금년도 그런 평가를 받고 또 우리가 그런 결과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할 것이다.
“축하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가지고 인사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금년의 세계경제와 우리경제의 화두,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토픽이 어떤 것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소감 몇 가지를 말씀드릴까 한다.
우선 우리나라도 세계 속에 있는 나라이고, 또 세계문제나 우리 문제나 비슷하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세계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우선 세계문제를 이야기하면 우리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시다시피 2008년 9월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촉발된 금융위기를 세계가 맞고 있다. 사실 금융위기는 2008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2007년부터 불가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부터 그 씨가 뿌려져 있었다. 또 좀 더 올라가면 70년대부터 점차적으로 그런 방향이 보였다고 본다. 어쨌든 미국발 금융위기를 맞이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기에 처해서 세계의 나라들은 어떤 대책을 세워왔는가. 주로 재정금융의 확대를 통해서 발등의 불을 꺼왔다. 그리고 대체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도 나라에 따라서는 어려운 문제가 많은 곳도 있고, 파산에 직면한 나라도 유럽에 여러 곳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왜 그런가. 발등의 불은 껐지만 세상은 그 전으로는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 세상이 와야 하는데, 세계경제가 가지는 과제는 어떻게 이 새 세계를 그리고 마음속에 비전을 가지고 거기에 대처해 나가는냐, 개척해 나가는가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아직까지는 그것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면한 화두로서 무엇이 있는가. 내가 보기에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출구전략이 있다. 출구전략은 금융재정의 확대를 언제 멈추고 보다 정상적인 금융정책, 재정정책으로 돌아가게 하는가의 문제다. 아직까지도 출구전략을 확실하게 집행하는 나라는 없고, 유럽이나 미국은 아직도 이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출구전략에 관해서는 시기가 있다. 언제 하는 게 좋을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다. 발등의 불을 끈 것은 재정금융의 확대를 가지고 껐는데, 이걸 멈추게 되면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출구를 빨리 하게 되면 어쨌든 타격은 오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고용의 불안정해지거나 투자가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출구전략을 빨리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지연시킨다는 것도 문제다. 재정금융의 확대를 통한 경제의 왜곡이 더 많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걸 빠져나오긴 해야 할 텐데 나오고 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하자면 재정금융의 확대를 그치고 나서 후의 세계에 대한 그림이 있어야 각국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데, 도저히 출구를 할 용기는 안 나고, 그에 대한 그림이 잡히지 않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래서 요는 출구를 너무 빨리 하면 더블 딥이 올 것이고, 너무 늦게 해도 더블 딥이 올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전망이 가능한 것이 지금 세계의 현실이다. 출구를 통해 완전히 터널을 빠져나가는 광경은 지금의 상태를 보면 별로 좋은 광경이 아니다. 허허벌판인데 별로 먹을 것은 없고 쉴 곳도 없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나 유럽 정부들이 어떻게 하면 황량한 벌판에서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이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고, 미국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나 재무장관이나 연방준비은행 의장 등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우선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현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림을 국회나 국민들에게 설득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1933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시대를 회상해보자. 대공황은 1929년에 증권시장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 미국의 대통령은 후버 대통령이었다. 그는 당시 “문제가 별로 없을 것이다, 조금만 가면 번영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 절대 그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한 것이다. 후버 대통령과 당시 공화당으로서는 그 이상의 세계를 그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그래도 루즈벨트라는 민주당 기수가 있어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루즈벨트는 집안도 좋았고 돈도 많았고 일가도 많았다. 그래서 담대하게 대할 수 있었다. 루즈벨트가 32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뉴딜을 시작했다. 뉴딜은 정부가 나서서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복지정책도 도입하고 정부지출을 통해서 지출계획을 집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고 메뉴도 많았다. 이렇게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출구를 할 수 있었다.
말씀드리는 골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29년부터 3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 전체로 보면 준비 기간이었다. 지금도 설사 2008년에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상당한 준비기간이 걸린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우리도 조금은 느긋하게 미국과 유럽을 바라봐야 한다. 현재 벅찬 과제를 오바마는 맡고 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아프간전쟁, 예멘의 테러전쟁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빨리 해도 곤란하고 늦게 해도 곤란한데, 그래도 뭔가는 해야 한다. 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차피 하는 것 용기를 내서 해야 한다. 지금 세계경제의 대세가 선진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대세는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북으로부터 남으로 중점이 옮겨간다는 것이다. 남북문제다. 북은 선진국을 말한다. 남은 후진국을 말한다. 선진국은 미국, 유럽, 일본 등으로 북이다. 남은 중국, 인도, 브라질, 터키,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을 비롯한 후진국이다. 크게 보면 아프리카까지다. 그런데 경제가 그래도 활력을 가지고 있는 곳은 남쪽이다. 북은 할 일이 없다. 이것은 금융위기 이전부터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
왜 그럴까? 남쪽은 인구가 많고 노임이 싸고 지식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옛날과 달라서 남이라고 해서 무식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뭐든지 남은 돈만 있으면 활기를 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모이고 있다. 브라질도 자원이 많다. 이것이 천하의 대세다.
두 번째 대세는 서로부터 동으로 온다. 서는 서양이고 동은 동양이다. 이것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코펜하겐의 협상, 온난화협상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상대하지 않고, 중국 수석이 오기를 기다렸다. 중국과 이야기를 해서 두 나라가 봉합을 하기는 했다. 그래서 G2가 실감있게 연출이 됐다. 내가 보기에 G2라고 해봐야 별다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나라가 남측의 대표이기 때문에 자꾸 중국의 눈치를 본다. 그러니까 중국을 설득하는 것이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서 오바마가 급격히 중국을 대했다고 본다.
세 번째의 대세는 전 세계의 각 공통점으로 가진 문제는 글로벌리제이션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하는 문제다. 글로벌경제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어떻게 해서 글로벌체제를 끌고 가는가 하는 문제다. 이것 역시 어려운 문제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세계 어느 나라도 글로벌체제를 싫어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는 이 체제가 필요한 나라다. 특히 중국은 글로벌체제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체제의 수혜자다.
세계 각국이 이렇게 바라는데, 문제는 글로벌체제가 진행되면 어려운 나라가 생긴다. 그렇게 갈 수 없는 나라가 생기는 것이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가지 적자, 국제수지 적자, 재정수지 적자를 통해서 과거의 글로벌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렇다면 그 적자체제를 탈피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고민에서 나온 고육지책이 중국에게 원화를 절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요동도 하지 않는다.
이게 잘 안 먹히니까 미국은 최근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서 관세를 물리고 있다. 관세를 다 물릴 수는 없어서 작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오히려 물리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도 없고 그야말로 거기서 출구를 할 수도 없다. 뭐든지 임시방편으로 하게 되면 어려운 점이 계속하지 않을 수도 없고, 계속하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한국의 문제는 고용의 문제다. 정부도 잘 알고 있고, 전 세계가 겪는 문제다. 두 번째는 항상 걱정해야 할 것이 인플레의 문제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세계의 경제성장은 고용없는 성장이다.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나라다. 대기업은 수출을 잘 하는데, 그 이유가 고용없는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고용이 있도록 하는 산업체제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그런 걸 마련해왔으면 좋은데, 이제 와서 갑자기 고용을 늘리려고 하니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사실 출구를 하고 있다. 안 하자니 문제가 많아서 하고 있다. 정부도 하고 있고 한국은행도 하고 있고 금융기관도 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고용을 위한 지출을 줄이고자 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출구전략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는 올리고 있지 않지만 긴축적으로 기울여가고 있다. 은행도 최근 들어 대출을 회수하고 있고, 신용보증기관에서도 신용기간을 짧게 하고 있다. 슬글슬금 출구를 하고 있는 상황들이다. 이는 그만큼 경제사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기업도 출구를 하고 있다. 명예퇴직을 요구하면서 출구를 한다. 얼마 전 KT가 6000명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것도 일종의 출구다.
그래서 고용이 결국 우리나라의 당면과제가 된다. 고용을 늘리는 방법은 뭘까.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 그래서 그 전부터도 얘기했고, 글도 썼지만 우리나라는 두 개의 계획이 필요하다. 당장 이 문제를 가지고 고용을 잡을 수는 없지만 두 개의 계획이 평소부터 있어야 한다.
하나는 인력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무조건 대학을 가르치려고 한다. 가르쳐봐야 학생들만 많아지고 돈만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인력 수급에 관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하나는 정부의 재정계획이다. 작년에 제주에 가서 세미나를 할 때 영국 대처 여사의 정책 기본방향에 대해 말씀드렸다. ‘어떤 정부의 지출도 본래 우리가 짜 놓았던 예산계획을 초과하는 돈이 들어가는 지출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처 여사의 자서전을 보면 그렇게 나온다. 우리도 이런 엄격한 재정계획을 만들어서 인플레를 막는 확실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저 서민들 돕는다고 이리저리 돈 대면서 어영부영하는 것은 곤란하다.
결론을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 스스로 확실한 태도를 가지고 어려움이 오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태도,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내 신년의 결론이다. 감사하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겸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
2010년 신년하례회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