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금융·물류로 사업 확장 … 매출 4조원, 재계 30위권 진입 눈앞
유진그룹은 지난해 사업영역을 가장 크게 확장한 중견기업이다. 2006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시멘트 같은 건설소재를 주로 생산하는 기업이었지만 지난 1년간 유통·금융·물류 분야에서 잇따라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서울증권·서울자산운용·서울선물, 물류 분야에선 로젠주식회사·한국통운·한국GW물류가 한 가족이 됐다. 또 농협·LG CNS와 함께 출자한 나눔로또가 제2기 인터넷복권사업자로 확정돼 로또 사업도 주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마트를 인수하며 명실상부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내일의 유진은 또 다르다”=유진은 유재필(76) 명예회장이 1969년 창업한 건빵생산업체 ‘영양제과공업’에서 시작했다. 유 명예회장은 85년 유진종합개발을 세우면서 레미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경영에 뛰어든 아들 유경선(53) 회장은 레미콘을 주력사업으로 키웠다. 38개 계열사 가운데 14개가 레미콘업체다. 2006년까지 그룹 매출의 70%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레미콘 사업 비중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하이마트의 인수가 마무리되면 15% 선에 그친다. 김재식(59) 부회장은 “그룹 신수종 사업에 맞는 기업이라면 물류·건설·금융 관련 기업을 추가로 인수하겠다”며 “내일의 유진은 오늘과 또 다르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유진은 종합건설업에 진출하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기업의 확장에 따라 유진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2006년 7700억원에 머무르던 그룹 총 매출은 지난해 1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하이마트가 계열로 편입될 올해에는 그룹매출과 자산이 각각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재계 30위권 진입이 가능해진다.
◆“유진엔 ‘스펙’이 없다”=김광수(44) 인사팀장은 “유진에서 필요한 인재는 ‘우수한 경영자’이자 ‘전문가’”라고 전했다. “학벌·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을 보기보다는 10, 20년 뒤 그룹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대신 모든 지원자의 자기소개서와 역량 기술서를 꼼꼼히 따진다. 역량 기술서에 지원자는 ^원하는 직무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해당 직무를 담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써내야 한다. 지난해 신입사원 150명을 뽑는 과정에서 1만10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채용을 담당하는 임원 모두가 전 지원자의 역량 기술서를 빨간펜으로 하나하나 체크했다고 한다. 그룹 인력개발원의 최병욱(49) 상무는 “정말 모래산에서 사금 고르듯 인재를 골랐다”고 말했다.
면접은 실무 면접과 경영진 면접으로 나뉜다. 실무면접은 그룹부문 지원자의 경우 토론면접과 직무면접을, 금융권의 경우 증권 관련 직무면접이 강화돼 팀장 직무면접과 임원 직무면접으로 이뤄진다. 토론면접에서는 시사적인 주제를 받아 팀별로 찬반 양편으로 나뉘어 찬반토론을 한다. 이때에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의 학력과 개인정보를 전혀 볼 수 없다. 김희주(27·여신관리팀)씨는 “전자팔찌제도·분양가상한제·금산분리원칙 등 시사성이 강한 내용이 토론 주제로 나왔다”며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펴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늘어나는 분야 때문에 기회도 다양”=유진은 신입사원 때부터 다양한 실무경험을 할 기회를 준다. 박상철(43) 유진인력개발원 부장은 “회사 사업이 커지는 만큼 새로운 사업영역에 적응할 수 있는 실무교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신입사원은 4주간 합숙 등을 통해 그룹 관련 교육을 받는다. 부서 배치는 입사시험을 볼 때 제출한 역량 기술서를 참조해 이뤄진다. 이후 3개월간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대리급 사원이 멘토로 지정되며, 이 기간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팀장급과 적성이 맞는지 의논해야 한다. 최고경영자와 대화를 할 시간도 주어진다. 지난해 1월 입사한 홍보팀의 이교택(29)씨는 “입사 첫해인데도 그룹의 역동적인 변화에 따라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성장하는 그룹인 만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입사 2년차가 되면 일주일 정도 해외연수를 떠난다. 특별한 선발기준은 없다. 공채 동기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환배치는 유진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이다. 관련 직군끼리 1∼3년마다 자리를 옮겨야 한다. 낮은 직책일수록 주기가 짧고 직책이 높아지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선택해 위치가 고정된다고 한다. “언제 어떤 일을 맡더라도 전문가다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김광수 인사팀장의 설명이다.
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