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생활/문화] 2004년 01월 15일 (목) 18:00
따뜻한 밥공기에 종교넘은 사랑 담아
[조선일보]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란 지진 피해 이재민을 돕기 위해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한민족복지재단, 이랜드복지재단 등은 연합구호단을 결성,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1주일간 구호활동을 펴고 귀국한 단원의 생생한 현지 체험이다. / 편집자
지난 6일 오전, 비행기로 9시간, 테헤란에서 다시 비행기로 1시간 반을 날아 도착한 현장은 폐허 그 자체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선 아직도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급한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계였다.
구호단이 도착한 곳은 이란 밤시(市)의 바르와트지역. 인구 8만의 밤시(市) 내 12개 지역 중 2만명이 살던 인구밀집 지역이었다. 지진으로 5000여명이 사망하고, 5000명이 부상당했고 1만여 이재민이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조현삼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장, 김형석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 정영일 이랜드복지재단 국장, 탤런트 정영숙씨 등 7명의 단원들은 이재민과 똑같이 텐트에서 생활하며 우선 급한 대로 이랜드가 기증한 7억원어치의 방한의류와 에어텐트, 신발, 양말 등 모두 100만달러어치의 구호물품을 나눠줬다.
현지에 도착한 이튿날엔 ‘밥 공장’ 준공식이 있었다. 본진에 앞서 지난해 12월 29일에 도착한 선발대가 이란 적신월사(아랍권 적십자사)로부터 요청을 받고 급히 서둘러 인근 고교 식당을 개조해 2000명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던 것. 단원들은 자동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인근 도시로 가서 양고기와 닭고기, 쌀을 사와 식사를 준비했다. 단원들은 또 이슬람교인인 현지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영문으로 ‘기독교’란 글씨가 쓰인 단복착용도 자제했다.
7일, 밥 공장 준공식에는 밤시 시의회 아바스 의장, 이란 적신월사 가디아니 국장, 현지 이슬람 지도자 타바콜리씨와 세계식량기구, 국제적십자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선 이번 한국 구호단이 기독교 단체 위주로 구성됐고, 밥 공장 재원 역시 한국교회의 헌금으로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단원들은 일순 긴장했다. 그러나 타바콜리씨는 오히려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한다”며 “늦었지만 성탄을 축하한다”고 말해 구호단의 걱정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이전까지 ‘눈’이라는 빵으로만 연명하다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은 이재민들은 너무 고마워했다. 하루 1t 정도의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대형 정수기도 설치했다.
구호단 본진은 일단 급한 불을 끈 후 지난 10일 귀국했다. 현지에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3명이 남았다. 구호단은 현지 적신월사의 요청에 따라 체류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계속 구호물품을 공급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귀국하기 위해 밤 공항에서 테헤란행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다. 비행기 출발이 3시간 넘게 지연되자 공항관계자들은 “한국분들이 우리 이재민을 위해 많이 도와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물과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귀빈실에 담요까지 깔아주며 “자면서 기다리라”고 권했다. 인종과 종교를 넘은 사랑을 확인하며,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박현덕·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