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49세, 만 18년.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입사 나이와 평균 은퇴 나이 그리고 이에 따른 평균 재직 기간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가 50세에 미치지 못하는 2023년의 한국이지만 첫 직장에 입사한 지 50주년을 맞은 직장인이 있다. 1973년 10월 16일, 만 26세의 나이에 삼성그룹 공채로 제일합섬에 입사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회장이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1999년 12월 도레이첨단소재 초대 사장으로 부임해 올해 10월이면 24주년을 맞는다. 커리어의 절반이 대표이사 또는 회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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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지금은 회사 근속 50주년을 맞았지만 사실 임원 승진은 남보다 늦었다”며 “회사 생활을 도와준 수많은 선배와 후배들 덕분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1947년생인 이 회장은 홍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제일합섬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해 맡은 일은 구미공장 건설이었다. 1972년 일본 도레이와 삼성이 35대65 비율로 공동 출자해 제일합섬이 만들어졌고, 구미에 폴리에스터 원면 공장을 짓던 때다.
이 회장은 “대졸 사원으로 들어갔어도 아침에 콘크리트를 물과 섞고 벽돌 쌓는 일로 일과를 시작했다”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은 공장이라 더 애착이 갔던 것 같다”고 했다. 1974년 공장이 완공됐고, 이 회장은 1994년 처음 임원으로 승진할 때까지 20여 년간 줄곧 구미 공장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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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승진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임원이 되자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 회장은 1994년 이사보에서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한 뒤 5년 만인 1999년 처음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이 처음 임원이 되던 1994년, 이사회에서 신임 사장으로부터 구미공장에 대한 구체적인 현안과 현장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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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험이 없이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라 임원들이 대답을 망설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현장 잔뼈가 굵은 이 회장이 질문들에 막힘 없이 대답하자 당시 사장은 이사였던 이 회장을 신임하게 됐고, 1년에 30번 넘게 해외 출장을 같이 다닐 정도로 신뢰하는 직원이 됐다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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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현장 전문가’로 일하다 이제는 ‘CEO 전문가’가 될 정도로 오랫동안 최고경영자로 일하며 새긴 가치가 있었을까. 이 회장은 ‘역지사지’와 ‘인내’를 꼽았다. 그는 “CEO가 되면 늘 자기가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의사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는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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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도레이첨단소재가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려면 일본 본사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런 경우 미리 상대방 입장에서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고민하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한 대안까지 만들어 간 덕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인 ‘인내’에 관해서는 “‘하루 분노를 참으면 100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말이 있다”며 “훌륭한 인재들도 본인 성격을 못 이겨 화내고 퇴사하는 사례가 많았기에 보면서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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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대표이사 임기를 맡은 기간 동안 도레이첨단소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99년 설립 당시 380억원 적자를 내던 회사는 이제는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다. 연 매출도 2000년 460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약 2조7000억원(연결 기준)을 기록했다. 20여 년 사이에 5배 넘게 회사를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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