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소년이 있었다. ‘성공하면 나처럼 가난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는 학생이 없도록 장학금을 주리라’고 생각한 소년은 매일 열심히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 사회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중동의 사막을 야채농장으로 만드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어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 뒤늦게 얻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 꿈을 견고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큰 부자가 돼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그리고 사재 10억원과 100억원을 출연해 ‘용복장학회’와 ‘한사랑 농촌문화재단’을 각각 만들었다. 장학금을 받은 수백명의 청소년은 부장 판사로, 공인회계사로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성장했다. 전남 강진군에 230만㎡의 광활한 농지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농사꾼 영동농장 김용복(75·벧엘교회 집사) 회장이 최근 자신의 신앙과 사업 스토리를 정리한 ‘끝없이 도전하고 아낌 없이 나눠라'(국민일보 발행)를 출간했다. 그는 땅 한평 갖지 못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땅은 그에게 한이요, 꿈이었다. 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 땅을 소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풍성한 쌀을 수확하면 그만이었다. 고향이 그에게 물려준 것은 가난과 외로움뿐. 그러나 고향에 대한 사랑은 놀랍다. 강진군 여러 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컴퓨터를 지원했다. 베트남에 근무할 때 받은 급여를 고스란히 보낸 일은 지금도 유명하다. 소년 김용복은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10여년 동안 일했다. 우리말로 급사 내지 사환이다. 천한 직업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숙식이 제공되고 돈을 저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자산을 얻었다. 영어 회화와 운전. 두 가지 자산이 평생을 먹여 살릴 밑천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두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미군들을 괴롭혀 배운 영어 실력으로 밥벌이를 했지요. 수줍고 말 없는 성격이었다면 영어를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도전하라. 부딪쳐라. 실천하라.” 그는 젊은이들에게 어둠과 탄식으로 얼룩진 자신의 절절한 삶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하우스보이를 하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또 외우던 일, 형편이 어려워도 운전을 배운 것, 단돈 7달러와 삽 4자루를 가지고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 배추 무 고추를 심어 농사를 짓겠다던 돈키호테적인 발상…. ‘끝없이 도전하고…’는 사막에다 배추를 심어 부자가 되겠다는 한 몽상가의 꿈과 신앙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쯤 부하 직원의 배신으로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어요. 죽지 못해 살고 있었을 때였죠. 아내의 애원에 마지 못해 교회에 갔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 주시는 거예요. 순간, 서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한참 울고 나니 바로 앞에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시편 126편 5∼6절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운외창천(雲外蒼天)’. 김 회장은 이 말을 좋아한다. 구름 너머에 푸른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압니다. 지상에서는 구름이 끼고 비가 와도 비행기가 구름 밖으로 벗어나면 찬란한 태양을 맞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사람들은 김 회장을 ‘녹색혁명을 일군 기적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가 이룬 것은 기적이 아니다. 신념과 정성으로 꿈과 희망을 현실로 만든 것일 뿐이었다. 그는 내년 4월20일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는 은퇴식을 가질 계획이다. 이날은 결혼 50주년이고 영동농장 창립 30주년이다.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배추 500㎏을 첫 수확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끝없이 도전하고…’를 전국 200여 교회 목회자에게 선물로 보내주었고, 인세는 모두 장학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 책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영접한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이 없겠어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책을 낸 것입니다.” 유영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