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크로 왓트 여행에서
고객 감동경영의 진수를 배우다
부원광학(주)회장 박 춘봉
“우리 평생에 이런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 또 받겠나.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우리연배의 사람들이 하는 인사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대상지역의 선정에서부터 호텔의 알선 그리고 가이드의 선발, 교육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는 여행이어서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김과 김치를 은행직원이 직접 갖고 다니면서 챙겨주는 성의 등, 그야 말로 칙사(勅使) 대접을 받았다. 캄보디아 속담에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있단다. 여행은 늘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말 일 것이다. 내가 기업은행이 매년 봄에 해외에서 하는 상반기 경영전략세미나에 참여해 온지도 꽤 여러 해가 되었다.
다녀 올 때마다 “참 고맙다”라고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간직 하고 돌아온다.
이번 여행지는 누구나 한번쯤은 가봤으면 하는 세계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앙코르와트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상야릇한 현상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정의 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정말로 불가사의 투성이었다. 9세기에서 15세기(서기 802년~1431년)사이에 동남아지역을 꽃피운 대표적인 세계유산인 앙코르와트는 400년간을 인류의 기억에서 덮여져 있다가 1861년 프랑스의 식물학자에 의하여 발견되어서 세상에 알려진 유적이다.
축구장 200개 넓이인 2Km평방의 늪 위에 세워진 도시,
天界를 지상에 옮겨놓은 듯한 명실상부한 神들의 거처,
神이 3억3천만이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불가사의의 땅이다.
그래서 권선징악이 강조되고 그것이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첫날 오전에는 앙코르와트를 조감할 수 있는 국립박물관을 보고 오후에는 반데스레이 사원을 둘러보았다. 붉은 사암으로 조성된 사원은 외벽을 빈틈없는 조각으로 장식 되어 있어서 솜씨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예술품이었다.
다음날(4일)오전에는 앙코르톰(커다란 왕도(王都)라는 말이란다).을 둘러 봤다. 폭 180M의 해자(垓字)로 둘러싸인 앙코르유적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1000년 전에 지어진 왕도외곽에 둘러싸인 해자의 규모도 대단한 것이어서 인상적이었지만 砂巖(퇴적암의 일종으로 모래알이 모여 뭉쳐진 것이 굳어져서 이루어진 암석. 주로 건축 재료나 숫돌의 재료로 쓴다) 벽면에 섬세하게 꼭 바늘 끝으로 조각 했음직한 섬세한 조형물들을 보면서 神話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여러 날 들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오후에 둘러본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알려진 타프롬사원은 1186년에 건립된 가로600M 세로1000M의앙코르 유적지중 가장 큰 불교사원이라고 했다. 보리수등의 커다란 나무뿌리가 거대한 성벽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자연의 위용을 느끼게 하는 장관이었다. 어떤 여자 가이드는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저 나무는 죽일 수도(죽이면 성벽에 손상이 가니까} 살려 둘 수도{살려두어도 성벽에 손상을 줄 수 있으니까)없는 것이 자기 신랑과 같다”고 해서 참 재미있는 비유란 생각을 하면서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었다.
5일 날 오전에는 담수호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톤레삽 호수를 보았다. 그 호수 물로 음료수로도, 밥을 짓는 물로도, 세수도, 목욕도, 배설처리도, 하고 살아가는 수상가옥 사람들의 생활상도 우리마음을 우울 하게 만들었다.
1000년 전에 저렇게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낸 민족의 후예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여러 가지를 생각 하게 했다. 관광객이 가는 곳 마다 왜소한 체구의 영양실조로 보이는 애들의 “1달러, 1달러”하는 간절한 구걸행각을 보면서 6.25때 미군 군용차 뒤를 쫓아가면서 구걸 행각을 하던 우리들의 지난날이 연상 되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영양실조의 꼬마애가 왜소하고 가볍게 보이는 동생인 듯 한 애를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마음아파서 1불을 주었더니 앞길이 막힐 정도로 구걸 행각이 긴 줄이 되어서 따라 왔다.
이 나라는 역사적인 이유로 문맹률이 80%라고 했다. 1975년부터 4년간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즈군(폴 포트정권)에 의하여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1/3인 200~300만 명이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이때 반동세력과 지식인(심지어는 안경을 껴도 지식인으로 분류 됐다고 한다)이란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한 기억 때문에 지식 습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했다고 한다.
영도자 한사람의 힘이 국가의 앞날을 이렇게 극명하게 갈라놓을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 하게했다.
여행지에서 여러 광경을 보면서 마음속에 다가오는 감동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은행 측에서 베풀어주는 서비스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감동은 김포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받을 때부터 시작된다. 공항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젊은 IBK직원이 밝은 얼굴로 뛰어와서는 짐을 챙겨준다. 미리 회수해간 여권으로 탑승권구매와 입국수속을 마쳐두고 우리는 자기 짐만 챙기면 되게 미리 수속을 마쳐 두었다. 놀라운것은 저쪽 공항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입국수속도 미리 되어 있어서 그냥 세관 검사대를 통과 하면 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서는 배정되어있는 번호별로 방 열쇠만 찾아서 호텔 종업원이 안내 하는 대로 방에 가면 되도록 사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놀라기 시작한 것은 4박동완에 호텔 종업원에게 주라고 하는 안내쪽지와 더불어 미화1불짜리 4장이 봉사료로 쓰라고 준비되어있는 것을 보면서부터이다. 그러고는 침대 곁에 “회원님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 마음을 담아 준비했습니다.” 라고 하는 예쁜 포장지에 싸여있는 선물 상자를 열면서 더 놀라게 된다. 그 선물상자 안에는 산책하면서 쓰기에 편하도록 만들어진 허리배낭 2개와 40도 폭양 밑에서 쓰기에 알맞은 예쁜 볓양산 2개, 선팅 크림, 그리고 앞으로 특별히 계획된 행사장에 갈 때 삼륜차를 타게 되는데 그때 쓰도록 황사 마스크 4개, 심지어는 입가심용 가글까지 준비한 세심한 정성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걸 준비하는 직원들의 놀라운 성의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300명의 인원이 30명씩 10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게 되는데 버스마다 IBK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도록 되어 있었고 현지 가이드라는 사람들도 매우 수준 높은 사람들로 편성되어 있어서 고객을 위한 정성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칙사 대접이란 말이 있다.
대국(大國)에서 사신이 오면 모든 정성을 다해서 사신을 접대하고 접대를 받는 使臣 쪽에서도 접대의 質이나 크기에 따라서 大國의 황제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 하는 기준을 삼았다고 했다. 지금 경영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고객만족경영의 연원을 생각하면서 불쑥 칙사 대접이란 옛말이 생각났다.
고객만족경영의 개념이 정부의 중간간부들에게도 확산되고 공직자의 대 국민서비스의 수준 향상에도 기여해 왔다. 고객만족경영은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서비스에 감동하고, 행복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CEO는 고객 감동경영을 위해서 조직구성원 모두를 그가 지향하는 목표에 공감하도록 만들어야 고객을 감동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부고객이 만족해야 외부고객을 만족하게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최고경영자의 인품과 열의에 조직구성원 모두가 공감해야 되는 일이다. 고객 감동경영의 성패는 최고경영자의 몫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를 감동하게 한 것은 평소에 조준희 행장이 갖고 있는 고객감동경영에 관한 철학이 투철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는 했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조준희 행장은 마음속에 늘 사회적인 약자를 두우는 利他行을 생활화해 가는 사람으로 유명한 분이다.
이분은 행원에서 행장까지 승진한분이어서 금융 산업의 명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금융기관이라는 것이 예대(預貸)마진으로 먹고사는 조직이기는 하지만 경영실적이 좋은 기업에게는 낮은 금리(소위 우대금리)를 적용 하면서 경영실적이 어려운 기업에게는 높은 금리(두 자리 수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금리 체계를 늘 아쉽게 생각해 왔었다고 한다.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부터 모든 기업에게 은행의 이익 폭이 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금리를 한자리로 맞추었다고 한다. 경영수지의 저조를 감수하면서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마음바탕에는 이분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약자의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높은 이타정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많은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정원보다 미달되게 채용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IBK는 장애인 고용목표를 초과달성하고 있고
고졸자 취업문제가 사회적인 난제일 때 금융기관 중에서는 가장 앞서서 고졸자 채용을 실행해서 금융권으로 확산되도록 선도 했고
금융권 최초로 다문화가정 도우기를 했고
벽지에 급식차량 지원 사업을 하는 등의 선행을 하면서
이제는 우리사회가 이런 사회적인 약자를 도울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연해주에서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안 중근의사의 의거를 도우는 등 항일투쟁을 주도 하고 고려인 젊은이를 위한 장학사업 까지 해오던 독립투사 최재형 선생을 기리는 최재형장학회의 훌륭한 활동상에 관한 말씀을 전해 듣고 거금 2천만원을 쾌척해 주어서 관계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의 말씀을 듣기도 한다.
이런 선행을 하면서 은행 내부 직원들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얻어서 하기 때문에 내가 만난 은행 간부들은 “나는 조준희 행장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것이 내 생애에서 가장행복한 시기입니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많이 듣는다. 아마 이런 착한 조직이기 때문에 고객만족경영의 본보기가 되고 있고 그것이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저력이 되고 있지 않나싶다.
나는 사실 나이도 있고 해서 내년부터는 이 여행에 참가하는 것을 사양해야겠다고 생각 하면서 여행에 나섰다. 그래서 우리 또래 몇 분들께 “내년에 또 오겠는가”라고 했더니 “그럼 또 와야지? 이렇게 좋은 여행이 또 어디 있는데?” 라고 당당하게 하는 말씀이 듣기 좋아서 내년에도 또 와야겠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만이 아니고 새로운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인생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던가. 어쨌건 인생에서 여행은 좋은 것이다. 정말로 참 재미있고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