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이 안중근 장학금을 받는 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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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제114주년 기념식’이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개최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기념식을 주관한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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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은 대학생 5명과 단체 4팀 등에 총 2000만 원의 ‘안중금 장학금’을 전달했다. 숭모회는 안 의사의 위국헌신 정신과 평화 사상을 알리고 그 정신을 선양한다는 취지로 안중근 장학생을 선발해 2003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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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은 기념사에서 “중국, 일본, 대만, 러시아 등 관련국과 긴밀히 협력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시는 그날까지 성심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제114주년 기념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소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 주관으로 개최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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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약전 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 식사, 기념사, ‘안중근 장학금’ 전달식, 기념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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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황해도에서 출생한 안중근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돌아와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ㆍ돈의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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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는 고종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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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했고, 1909년에는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 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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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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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체포하려고 하자, 안중근 의사는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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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비판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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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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