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군청색 제복을 입은 ‘걸스카우트’와 ‘보이스카우트’는 초등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정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집안의 자녀들이 가입해 활동했던 이유 때문이다. 소녀들이 세계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길러주는 교육단체인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은 1990년대 회원 수가 3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최고 전성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걸스카우트 존재감이 예전 같지만 않다. 교내 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회원 수가 1만 명도 채 안 된다. 변주선(83) 한국걸스카우트 지원재단 이사장은 1971년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외분과위원으로 봉사하면서 걸스카우트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4년 제18대 총재에 선출된 이후 세계걸스카우트 아태지역 의장 및 세계이사, 아태지역 후원회와 친선회를 창립했다. 최근엔 아태지역 여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변주선 리더십 펀드’를 설립했다. 그의 걸스카우트 활동은 무려 50년이 넘는다. 1남 2녀 자녀들도 모두 스카우트 활동을 했다. 뼛속까지 스카우트인 셈이다.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세계걸스카우트 아태지역 친선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변 이사장을 지난 16일 그가 행정원장으로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소재 대림성모병원에서 만났다. 서울대총동창회 사회공헌위원장, 빛섬포럼 회장, 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독서문화진흥회, 청소년지도자단체협의회 등 그가 관여하고 있는 단체는 이 밖에도 많다.
그는 일 욕심이 많아 보였다. 외국출장을 다녀와도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병원으로 출근한다. 여든세 살의 나이에 이 같은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곤해서 누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할 정도다. 지금 아픈 곳도 없고 약도 먹지 않는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더니 50대 뇌 상태라고 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생각을 많이 한 덕분이라고 한다. 대단하다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골프도 가족과 함께 주 1회 정도 즐긴다. 무엇보다도 많이 걸을 수 있어서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이 걸으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도 바로 승용차를 타지 않고 큰길까지 걸어 나와 차를 탄다. 출근하면 병원 행정업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나이를 생각해 일을 내려놓을 만도 하지만 무려 30년째 행정원장 일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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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12220103993617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