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 한 해 등록금 70만원 … 지식 너머 지혜 얻는 곳이죠”
한국방송통신대는 주경야독의 상징이다. 1970~80년대 가난했던 시절,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이들에게 배움의 불을 밝혀줬다. 9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사회인들의 배움터로 외연을 넓혔고, 2000년대에는 다문화가정·탈북자 등 ‘21세기형 소외된 이웃’을 끌어안았다. 졸업생 50만 명 배출, 개교 39년을 맞은 방송대 조남철(59) 총장을 서울 남대문로5가 서울스퀘어에 있는 ‘임시’ 총장실에서 만났다. 대학로에 있는 대학 건물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만든 임시 사무실이다.
글=박현영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박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요즘은 어떤 학생들이 방송대에 옵니까.
“72년에 개교했는데, 그때는 대학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컸겠죠. 근래 들어서는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사회가 빠르게 변하니까, 한번 배운 지식만으로 적응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직장일 하면서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대학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바뀐 것 같습니다.”
●대학원 등 방법은 다양한데, 방송대에 오는 이유는요.
“국립대학으로서 교육의 질이 높습니다.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업적을 가진 분들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강의도 하기 때문에 교육의 품질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 더 매력적인 건 등록금이 싸다는 겁니다. 요즘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는데, 우리 대학 등록금은 1년에 70만원 내외입니다. 셋째는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까 일하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등록금이 일반 대학의 10분의 1 수준이네요.
“교원 수도 10분의 1이에요. 우리는 150명인데, 같은 국립대인 서울대는 1500명쯤 됩니다. 학생은 올 1학기에 17만8000명이 등록했으니까, 일반 대학보다 10배 많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통한 규모의 경제 덕에 적은 경비로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거죠. 우리 대학의 한 학과를 졸업한 후 다른 학과에 편입하는 학생만 해마다 3000~4000명 정도 됩니다. 교육 만족도가 높다는 뜻이죠.”
●대학을 졸업한 뒤 방송대에 들어오는 편입생 비중(60%)이 신입생보다 많던데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한 개의 학위, 한 번의 공부만으로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죠. 의사이면서 법학과에 입학해 의료 사고를 연구하거나, 경영학과에 들어가 병원 경영을 배우고, 외국인 진료를 하다가 중국어를 배우게 되는 식이죠.”
●어느 학과가 인기인가요.
“유아교육과·교육학과·청소년교육과 같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학과들이 인기가 많아요. 경영학과와 영문·일문·중문 등 외국어학과들은 꾸준히 인기고요.”
●‘반값 등록금’이 이슈인데, 방송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대안은 될 수 있죠. 고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에 간다고 생각하는데, 직장을 갖고 난 후 대학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모든 일자리가 대학 졸업자가 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나라 전체로 볼 때 낭비 요소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겠죠. 학벌, 학력만 중시하는 병폐가 사라져야 합니다.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방송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전체 입학생의 3%쯤 돼요.”
●학생 중 여성 비율(68%)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여성들이 지적 욕구가 훨씬 강한 것 같아요.(웃음) 재미있는 건 우리 학생 중 나이 지긋하신 여성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녀를 반듯하게 키웠더라고요. 엄마가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바쁜 틈에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총장님 가족 중에 방송대 학생은 없나요.
“예, 집사람이 우리 학교에 다니다가 F학점을 많이 맞고 현재 휴학 중입니다.(웃음) 생물 교사인데 정보기술(IT) 공부를 해보겠다고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거든요. 우리 학교 교과과정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공부가 좀 힘들었나 봅니다.”
●그러잖아도 방송대는 입학은 쉬우나 졸업하기 어려운 대학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졸업하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매년 등록생은 18만 명쯤 되고, 졸업생은 2만 명 내외입니다. 4년 만에 졸업하는 비율은 15~20%입니다. 전체 입학생 중 30% 정도가 졸업합니다. 사실 모든 대학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대학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지만 아무나 졸업시키지 않는 대학이라고 생각해요.”
●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이겠지만,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문제 아닐까요.
“졸업생의 질을 유지해야만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편입니다. 얼마 전 전문대 학장님들과 식사를 했는데, 이구동성으로 졸업률이 너무 낮으니까 학생들에게 권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졸업이 어렵다는 건 긍지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되돌아 볼 부분이기도 합니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1대1 서비스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학생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통합 학생 서비스센터를 만들고 있어요. 보완하고 있습니다.”
●원격 교육의 성패는 학생의 자발성을 기초로 하지요. 어떻게 해야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습니까.
“목표 의식이 분명한 사람, 꿈이 있는 사람, 시간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더군요.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실패하는 걸 봤습니다. 이미 직장도 있고 등록금도 싸니까 힘들고 어려우면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게 원격 교육이거든요. 서로 도우며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 결국 이겨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출석 수업을 늘리고, 스터디 그룹을 권장하고, 멘토와 튜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나 좀 살려달라’고 손을 내밀라고 가르쳐요. 또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손을 좀 잡아주라고요.”
●사이버대학, 온라인 강좌가 많아져서 원격 교육 시장도 경쟁이 세졌는데요.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이 다양해지는 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방송대는 국내에서 처음 설립된 원격 교육기관이고 선두주자입니다. 경쟁하기보다는 우리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 온라인 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출석 수업을 섞어서 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많고, 학생회 조직도 활발하고요.”
●졸업생 중 성공하신 분들은 누가 있습니까.
“락앤락 김준일 회장,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 같은 분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분도 여럿 있고요.”
●지난해 9월 취임했는데, 앞으로 학교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계획입니까.
“소외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합니다. 그간 ‘가난한 사람들이 다니는 대학’으로 학교 이미지가 왜곡된 측면이 있습니다. 70년대와 2010년대 방송대의 사회적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자기를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을 위한 대학, 평생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국립대학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소외된’ 이웃의 범주도 결혼 이주 여성, 탈북자 등으로 바뀌었잖아요. 지난해 처음으로 탈북 대학생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결혼 이주 여성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문화·역사를 가르치고, 더 나아가 ‘어머니 나라’의 언어까지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계획 중입니다.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모국어와 역사 교육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에도 관심이 큽니다.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을 남한 시민으로 교육하는 데 가장 유용한 기관이 방송대 아닐까요. 비학위 프로그램 비중을 점차 늘려갈 생각입니다.”
●올 2월 졸업생 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방송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뭡니까.
“가장 큰 건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열이지요. 교육에 대한 열망이 방송대를 이만큼 키운 원동력입니다. 졸업생 50만 명 배출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방송대가 없었으면 이 중 상당수는 대학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은 학사학위 이상의 의미예요. 자기 존경심이자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뜻하지요. 50만 명의 학사를 배출한 게 아니라 50만 명의 건강한 시민을 배출한 겁니다. 국민이 건강하게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대학이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⑧7년 방송대 교수로 오셨는데,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당시 방송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교육기관이었어요. 출강을 했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받은 감동이 컸어요. 교수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지요. 가르치는 사람, 즉 선생으로서 감동이 이곳보다 더 큰 데는 없다고 감히 말합니다. 일반 대학은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을 가르치지만 우리 학생들은 직업과 연령, 경험이 다양합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만 얻어가는 게 아니라 동료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어갑니다. 이렇게 열심히, 정직하게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어요. 고교 동창의 어머니가 제 학생이었는데 ‘졸업할 수 있을지, 그 전에 죽을지 모르지만 공부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하신 게 기억납니다. 어머님은 10년 걸려 졸업하셨어요.”
●교육 철학은 뭔가요.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j칵테일 >> 청록파 박두진의 마지막 제자
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 총장은 청록파 시인 고(故) 박두진 선생의 ‘마지막’ 제자다. 연세대 국문과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 10여 년간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박두진 선생에게 배웠다. 대학원 시절엔 5년간 박 시인의 조교를 했고, 박사학위 논문 ‘일제하 농민문학 연구’도 박 시인의 지도를 받았다.
●선생에 대한 기억은 어떠신가요.
“글과 삶을 일치시키는 분이었습니다. 꼿꼿하셨어요. 전두환 정권 때 문화훈장 제의를 받으셨는데, 끝내 수락하지 않으셨어요. 공무원이 찾아와 수락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공문만이라도 받아달라고 간청하니까 아예 지방으로 내려가서 연락을 끊으신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데모하면 앞장서서 지지하고, 정권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가 정보기관에 끌려가기도 했죠. 비판을 할 때에는 망설임이 없으셨습니다.”
●‘해’라는 시가 떠오르는데요.
“엄격하셔서 제자들이 참 어려워했지만 따뜻한 면도 있었어요. 한번은 연세대 학생들이 제멋대로 선생님 시에 곡을 붙인 걸 알게 된 선생님께서 화가 나서 학생들을 불러오라고 했어요. 불려온 학생들이 잘못했다고 사과드리니 바로 용서하시더라고요. 그 곡이 대중가요 ‘해야’예요.”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나요.
“결혼식 때 주례를 서주셨어요. ‘남편을 집 안에 가두지 말고 나가서 일하게 하라’는 주례사가 기억에 남아요. 세속적인 것에 매이지 말고, 물질을 탐하지 말고, 남을 위해 살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 근처 허름한 집에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30년 넘게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게 선생님 영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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