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CEO] 창조경영 전도사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발품팔아 시작하는 창조경영 신바레이션으로 氣 불어넣죠
이승한 홈플러스 그룹 회장 겸 삼성테스코 대표이사(64)는 `창조 경영` 전도사다. 그는 묘비에 `창조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남긴 창조 경영자,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제목도 `창조 바이러스 H2C`였다. H2C는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라는 뜻인 `How to Create`에서 따온 말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말하는 창조 경영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테스코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은 “발품이야말로 창조 경영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홈플러스그룹은 삼성테스코와 홈플러스테스코(옛 홈에버), 베이커리 회사인 아띠제블랑제리, 사회공헌재단인 홈플러스 e파란재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창조는 발품에서 시작된다”
= 실제로 홈플러스 성공 신화의 출발은 이 회장의 `발품`이다. 1999년 삼성테스코 할인점인 홈플러스 개장을 준비하면서 세계를 누볐기 때문이다.
“당시 할인점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었어요. 이마트 등 11개 업체가 이미 진출해 있었죠. 우리가 열두 번째였어요. 다른 업체가 이미 앞서 있는데, 같은 개념으로 들어가면 못 이기죠. 뭔가 달라야만 했어요.”
기존 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해 이 회장이 뽑아든 카드는 `발품`이었다. “세계를 전부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에서 `Take the best and make it better`(최고의 것을 가져와서 더 좋게 만들겠다) 하겠다고 결심했죠. 전 세계 유명한 할인점ㆍ쇼핑몰ㆍ백화점ㆍ전문점 등 안 가본 데가 없었어요.”
이 회장이 외국에서 가져온 `최고의 것` 중 하나는 `격자형 무빙워크`. 소비자가 카트를 끌고 여러 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미국 할인점은 대부분 1층이에요. 무빙워크가 필요 없죠. 그런데 한 의류전문점을 방문했는데 `격자형 무빙워크`가 있더라고요. `바로 저거다` 싶었죠. 할인점으로는 홈플러스가 세계 최초로 도입해서 성공했어요. 결국엔 경쟁업체들도 따라했죠.” 이 회장이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최고 아이디어들을 결합하고 발전시킨 홈플러스는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삼성테스코 매출은 1999년 2490억원에서 2001년 1조원을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는 5조8111억원에 이르렀다. 2008년 인수한 홈에버(현 홈플러스테스코)와 아띠제블랑제리 등 계열사를 합친 그룹 총 매출액은 7조6760억원(2009년 기준)에 달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외국에서 최고의 것들을 가져와서 새로운 개념의 홈플러스 매장을 창조했다. 그렇다면 창조의 시작은 모방인가.
▶창조의 원천은 (모방보다는) `발품`이라고 봐야 한다. 책상머리 앞에 앉아서 생각한다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딴에는 엄청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세상에 훨씬 좋은 게 많으면 어떻게 하나. 발품이야말로 지식의 바탕이다. 발품을 팔고 경험해야 지식이 생긴다. 그런 바탕 위에서 상상해야 한다. 그냥 책상머리 앞에서 생각을 실컷 하면 중간밖에 못 간다.”
그러나 세상에서 최고의 것을 찾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당연히 온전한 창조의 몫이다. `When it does not exist, creat it(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창조하라)`이라고 이 회장은 말한다.
◆ “신바람ㆍ합리주의 결합 `신바레이션 경영` ”
= 이 회장은 여러 가지 경영 용어를 만들었다. `신바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놀랍게도 국어사전에도 수록돼 있다. `동양의 신바람 문화와 서양의 합리주의(rationalism)를 결합시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신바레이션 경영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삼성물산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유통사업 지분을 외국 기업인 테스코에 넘겼다. 그래서 삼성테스코가 설립됐다. 삼성물산에서 옮겨온 직원들이 떠나려 했다. 설립 주역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전과 문화를 심어주지 않으면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바레이션을 생각해낸 거다.
-왜 하필이면 신바레이션인가.
▶삼성테스코는 다국적 기업 아닌가. 그러니까, 잡종 강세를 만들어야 한다. 동양과 서양 문화에서 장점만 추려서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삼성이나 테스코보다 더 강한 회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신바레이션 경영을 실천한 결과는 어떤가.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농땡이`가 됐다. 직원들이 다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무결재 경영이 대표적인 사례다. 홈플러스는 대외적으로 꼭 필요하거나 법률적으로 필요한 때가 아니면 결재를 하지 않는다.
-결재 없이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신바레이션과 무슨 관계인가.
▶홈플러스는 원스톱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영업ㆍ운영 등 관련 그룹별로 모여서 의사결정을 한다. 최고경영자 또는 임원들이 참석해서 그룹별로 토론하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결재가 필요 없는 거다. 직원들이 스스로 최종 의사결정에 참여하니까 신바람이 난다.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홈플러스가 추구하는 신바레이션 문화다.
◆ “미친 듯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
= 이 회장이 스스로 `농땡이`라고 자처했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란 어려웠다. 그는 일할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에 `Working like a dog(개처럼 일하기), 미친 듯 일할 수 있어 진정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구절이 있다. 실례된 얘기지만 `개처럼 일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몰두를 대단히 좋아한다. 비서에게 `내가 무슨 일에 빠져 있으면 흔들어서 깨우라`고 얘기할 정도다. 일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취미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 미친 듯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이유다.
남들은 할인점 매장 도면을 잠깐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게임이다. 오른쪽 귀 윗부분은 전원을 켜는 `파워 버튼`이다. 이곳을 누르면 매장 도면이 삼차원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고객 의견에 따라서 매장을 어떻게 바꿀까, 그림을 그리는 내게는 유통이 삼차원 게임이다.
-경영을 예술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화가가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매장 도면을 그리기 때문인가.
▶언젠가 홈플러스 매장에 들렀을 때다. 생선 코너를 맡은 과장에게 `당신은 예술가`라고 말했다. 생선 코너가 내게는 화가의 캔버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생선 배열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어떤 이는 생선이 고객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헤엄치도록 배열한다. 어떤 이는 파도치는 바다처럼 배치힌다.
생선 코너 과장은 매일 아침마다 설치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고객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매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창조경영 이론 발전시킬 학자 되고파”
이 회장과 인터뷰하며 느낀 점은 마치 그가 경영 이론가 같다는 점이다. 발품 경영, 신바레이션 경영, 예술 경영 등 독자적인 경영용어를 만들며 자기 경영철학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경영인 영역을 넘어서 경영학자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가.
▶창조 경영을 이론적으로 발전시키는 학자, 미래경영학자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다. 자기 경영 이론을 세우겠다는 사람, 아시아 경영 이론을 세우겠다는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도전하고 싶다.
-독자적인 경영 이론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인가.
▶한국 경영자들이 세계 최고 경영 이론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치에 입문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세계 최고 경영 이론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테스코 아시아 아카데미를 영종도에서 가까운 무의도 쪽에 건설 중이다. 내년 5~6월께 완공될 것이다.
-테스코 아시아 아카데미는 어떤 기능을 하게 되나.
▶GE에서 와서 배우고 갈 정도로 GE 크로톤빌보다 더 좋은 경영연수원을 만들 것이다. 또 테스코 아시아 아카데미가 완공되면 아시아지역 테스코에서 CEO, 임원,점장이 되려는 중국ㆍ일본ㆍ말레이시아ㆍ인도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교육을 받아야 한다.
■ “성장의 얼굴ㆍ사회기여 얼굴 모두 갖춘 기업만 생존가능”
이 회장은 지속가능 경영에도 관심이 많다. 인권ㆍ환경ㆍ반부패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활동을 위해 설립된 유엔 글로벌 콤팩트(UNGC) 한국협회 회장을 맡은 것도 그래서다. 그는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UNGC 리더스 서밋에 참여하기도 했다.
-UNGC 회원 기업은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인권보호, 환경보전, 반부패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골자로 한 유엔 글로벌 콤팩트 10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또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해 그 성과를 유엔에 보고해야 한다. 전 세계 8000여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해 있다.
-한국 기업들 참여도는 어느 정도인가.
▶유엔 글로벌 콤팩트가 출범한 지 10년이 됐다. 그러나 한국협회가 발족한 것은 이제 3년밖에 안 된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 볼 때 한국은 상품은 팔아 돈은 벌지만 유엔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적지 않았다. 한국이 유엔 글로벌 콤팩트 가치를 리드하는 국가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힘들 것이다.
-UNGC 한국협회 회원사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 회원 기업은 177개에 불과하다. 국력으로 볼 때 다른 나라보다 회원 수가 적다. 2015년까지 회원사를 10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은 물론 지자체 등 민간과 정부 섹터가 다 같이 참여해야 한다.
-왜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야 하는가.
▶기업 평판에 관심을 갖지 않고 매출과 이익 규모에만 집중하는 기업은 성장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노동ㆍ인권ㆍ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 확산과 관련해 기업의 진정성을 강조해 왔는데.
▶기업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하나는 `성장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에 기여하는 얼굴`이다. 옛날에는 성장의 얼굴만으로도 큰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사회적 가치를 선도하는 기업만이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UNGC 회원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기업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는 자격 심사를 통과해야 가입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기업들이 서로 경쟁할 것이다.
■ 이승한 회장은…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19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 입사(1970년) △삼성그룹 비서실 신경영팀장, 부사장(1994)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1997년) △삼성테스코 대표이사(1999년~) △한양대 도시공학 박사(2004년) △하버드대학 운영상임이사(2004년~) △SC제일은행 스페셜 어드바이저(2010년~) △홈플러스그룹 회장(2008년~) △유엔 글로벌 콤팩트 한국협회 회장(2010년~)
[박봉권 기자 /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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