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대간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2050·3060데이트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버지와 딸 세대, 그들은 어떤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있을까.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의 오마이포럼과 인간개발연구원이 공동으로 꾸몄다…. 편집자 주
꽃바람이 한들한들, 콧노래가 흥얼흥얼.
한나절만이라도 어디론가 ‘튀고 싶은’ 오후였다.
먼지 묻은 낡은 구두도 햇빛 받아 반짝이는 봄날, 50대와 20대 두 남녀가 만났다. 문정인(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승은(21세) 건국대 3학년 학생. 두 사람은 지난 8일 오후 연세대 연희관 뒤편 계단에 앉아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각 정당의 정책, 무엇이 차별화인가
정치학자와 총여학생회장의 소박한 데이트
문정인과 김승은은 누구?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미국 메릴랜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미국 메릴랜드대 국제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미국 윌리엄즈대 정치학과 조교수, 미국 켄터키대 정치학과 조교수 등을 거쳐 미국 듀크대 아태연구소 겸임교수, 미 국제정치학회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다.
국제문제에 해박한 한국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그의 주요 저서로는 <대미통상로비> <미국의 태평양방위전략> <민주화 시대의 정부와 기업> <미국의 기술개발 지원제도> 등이 있다.
건국대 경영정보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김승은 학생은 교내 총여학생회장을 맡고 있으며, 건국대 유권자운동본부, 2004총선 대학교 부재자투표소설치를 위한 서명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졸업 이후에는 여군에 입대할 희망이라는 김씨는 동대문구 청량2동에서 부모님과 할머니, 남동생과 살고 있다.
김씨는 “여성들도 당당하고 힘차게 사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며 “20대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는 “이번 탄핵이 정치의식을 활성화시켰다”며 “이변이 없는 한 20대의 투표참여율은 약 70% 가량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선거는 “정당, 인물, 지역공약에 대한 선호도가 투표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대통령이 다소 미숙했던 점이 있다 해도 이번 탄핵은 입법부의 권력 오·남용”이라며 그러나 “탄핵정국 이후 한국은 시민사회의 성숙과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향후 대전환의 시기에 ‘민주주의의 진보’가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승은씨는 “탄핵 이후 주변 20대들은 대부분 이번 총선에 놀러가지 않고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요즘은 어느 자리에 가도 정치토론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선거유인물을 보면) 후보마다 공약의 차별성이 없다”며 “당의 색깔이 전혀 표현되지 않은 공약으로 유권자들이 무슨 판단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총선은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를 놓고 유권자가 평가하는 것인데 이번 총선에도 정책선거가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문정인 “이번 총선에 처음 투표를 한다구요?”
김승은 “네. 제가 만 스무 살이 됐거든요. 하하. 교수님은 언제 처음 투표하셨나요?”
문정인 “71년 유신 전 마지막 대선이 있었어요. 그때 최초로 투표했죠. 그 뒤로는 나뿐 아니라 우리세대 전반이 정치적 무관심에 빠졌어요. 그리고 그땐 굉장히 살벌했다고. 71년도 당시 내가 <연세춘추> 편집국장이었는데, 1달 정도 서교동 친구 집에서 숨어 지내고 집에도 못 갔으니까요. 학교는 이미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김승은 “그랬군요. 저희는 그런 걸 잘 모르니까…. 50대 같은 어른세대와 달리 20대들은 모든 면에서 혜택을 많이 입은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20대가 정치의식이 없다고들 말씀하시는데, 탄핵안 가결되고 난 뒤에 친구들을 둘러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탄핵과 촛불시위 뒤에 20대들 사이에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이글이글 타올랐어요. 그래서 이번 총선에는 놀러 안가고, 탄핵 가결시킨 정치인에 대한 심판을 한다고들 얘기해요. 50대들은 이번 총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박정희 근대화 세대와 이슈 없는 세대가 맞은 탄핵후폭풍
“우리 세대는 대부분 보수적이에요. 그러나 60대와 달리 50대만 해도 혜택을 입은 세대입니다. 대부분 6·25 때 태어나서 4·19를 겪고 5·16 군사쿠데타를 목격했죠. 60대가 빈곤과 저개발의 고통을 겪은 세대라면, 50대는 70년대 ‘박정희 근대화’의 혜택을 입은 세대지요. 정치적으로는 3선 개헌과 유신헌법,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겪어 저항의식도 많고요. 어떤 면에서 보면, 근대화 물결을 탄 수혜자로서 이율배반적인 시대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20대엔 사회주의, 50대엔 보수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처럼 지금은 모두 안정희구를 바라는 세대가 됐지요.”
김승은 “어렵고 힘들게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시민 권리를 찾기 위해 활동한 선배 세대에 비하면 저희들은 비교적 이슈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몰라요. 물론 탄핵이라는 핵폭풍이 터져나와 정치 사회적 관심을 갖게 됐지만…. 요즘 술자리 같은 모임에 나가면 예전과 달리 정치토론을 많이 해요. 탄핵 이후 달라진 풍속도라는 생각도 듭니다.”
문정인 “나는 20대처럼 다원주의적인 세대가 없다고 봐요.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도 많거든요. 결강이 거의 없고, 교수가 휴강하면 너무 싫어한다니까.(웃음) 그게 취직문제와 연관돼 있어서 그렇기도 해요.
요즘 학생들은 시민운동, 학생운동, 무전여행, 인턴활동, 무수한 활동을 자유롭게 합니다. 50대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우린 항상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집단적 사고에 익숙한 세대라고 봐야지요.
그러나 지금은 학생운동 하는 학생들이 소수이고 다른 학생들은 무관심해요. 386세대보다 다변화·다양화 돼 있어요. 그만큼 환경이 좋아진 거겠지요. 그래서 난 20대를 단선으로 특징화하기 어렵다고 봐요.”
김승은 “전 건국대 총여학생회장인데요, 솔직히 학생들이 여러모로 다양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통하는 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잘 모이지 않고, 어떤 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어요. 학생회장 선거도 투표율이 50% 이상이어야 하는데, 과반수를 못 넘어 투표일을 연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과거 학생회장 선거와도 달라진 면모를 보일 것 같아요. 탄핵정국 때문에.”
“탄핵은 입법부의 권력 오남용”
문정인 “탄핵이 정치의식을 활성화시켰어요. 이변이 없는 한 투표율은 상당히 높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20대의 약 70% 가량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승은 “저도 20대 중 60∼70%는 이번 총선에 투표할 것 같아요. 정치관심이 폭발하고 있거든요.”
문정인 “이번 탄핵정국은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인식과도 관계돼 있어요. 50대 중에 노 대통령이 싫은 사람들은 그 정도의 사과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이 너무 오만하다, 이렇게 보지요. 저는 그 자체로 50대의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는 대통령이 다소 미숙했다고 해도 이번 탄핵은 입법부의 권력 오·남용이라고 봐요. 지금으로서는 헌재의 결정을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은 없죠.
이번 탄핵정국은 시민사회 성숙과 정치적 무관심이 극복되는 기회가 됐고, 총선 뒤엔 민주주의의 진보가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전환의 시기입니다.”
김승은 “20대들이 탄핵에 대해 토론할 때, 가장 주요한 포인트로 잡는 건 ‘국민들에게 물어봤어?’입니다. 아니거든요. 대의제를 악용해 탄핵을 총선에 전략적으로 활용한 거잖아요. 거기에 분노한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거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 총선에서 탄핵을 심판하자고 말하죠. 제 생각엔 탄핵과 총선은 구분해서 봐야할 것 같아요. 총선은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를 평가하는 것인데, 자꾸 탄핵과 섞어 쟁점을 흐리면 안 될 것 같아요.”
문정인 “총선에서 탄핵을 심판하자는 것은 탄핵 그 자체를 심판한다기보다는 탄핵이라는 상황을 만든 정치인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것이죠. 50대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탄핵과 총선은 한국사회가 대전환의 과정에 놓였다는 것을 뜻해요. 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80년대까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줄곧 한국의 주류로 있었죠.
이들은 그동안 승자독식 해왔기 때문에, 반대의 입장이 되면 모든 걸 잃게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모 단체의 강연을 가보니까, ‘남한엔 북한이 내려보낸 50만 간첩이 득시글거리고 있다’는 둥 참여정부를 빨갱이로 매도해요. 사실 이런 시각을 가진 분들이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어요. 이들은 ‘거부’와 ‘배타’ 인식에서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고, ‘친노’ ‘반노’로 가르고, 동서간 남북간 지역갈등을 만들지요.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수 쪽도 새롭게 전략을 짜야 해요. 흑백논리로 시시비비를 가려서는 안 되지요.”
각당 비례대표 여성 1번, 어떻게 볼 것인가
김승은 “신문을 보면 20대와 50대가 마주 앉아 정치 얘기하면 싸운다고 보도하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처럼 소통이 잘 되는 면도 있는데 말입니다. 하하.”
문정인 “그건 아직도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가부장 질서 때문일 겁니다. 건전한 대화는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건데, 50대 이상은 ‘내 말 안 듣는 건 항거야’ 뭐 이런 인식이 좀 있거든. 그래서 나온 기사일 거예요.
우리 민족의 소명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반전 반핵’입니다. 그러나 요즘 가만히 보면, 50대 이상은 반핵만 주장하고, 40대 이하 진보파는 반전만 주장하는 것 같아요.
서로 수용해줄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데도, 서로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대화를 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서로 존중하면서 얘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김승은 “화제를 바꿔서… 자민련 빼고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비례대표 1번은 모두 여성인데요. 그들이 홍보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정인 “50대도 비슷한 생각인데, 여성들이 ‘30% 할당’ 이런 식으로 이권을 확보하는 건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들 해요.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달라요. 이미 여성과 남성은 불평등한 출발선에 있어요. 이 시스템에서는 변혁적으로 접근해야 방법이 나와요. 나는 이번에 비례대표 1번이 대부분 여성인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해요. 이 건 한국정치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입니다.
대신, 이번에 입각하는 여성의원들은 의정활동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여성의원들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어요. 안 그러면 남자들이 도로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몰라요.”
김승은 “정동영 의장의 ’60∼70대 투표하지 말라’ 발언의 진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정인 “그건 20∼30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과장법을 언론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물론 정치인의 말 한 마디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걸로 정치쟁점을 삼으려는 것은 문제죠. 정동영 의장의 말보다 열린우리당의 노인정책이 훨씬 중요하죠. 타당보다 열린우리당의 노인정책이 훨씬 좋다면 그런 말은 용서해줄 수 있다고 봐요.”
김승은 “저는 정 의장이 한 정당의 대표로서 신중하지 못한 표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총선에서는 어떤 점이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을까요?”
문 교수 “대부분 과도기적 정당”
“정당, 인물, 지역공약에 대한 선호도로 투표할 거예요. 정책 자체가 클로즈업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그건 사실 언론과 선거법 둘 다 문제라고. 국민 전체가 각 정당의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어요.
실제 자민련과 민주노동당 말고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의 공약은 모두 비슷비슷하잖아요. 결국 탄핵정국에 대한 심판은 정당선호도로 이어질 거고, 인물과 지역공약은 후보를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할 겁니다.”
김승은 “후보마다 그 공약이 그 공약인 게 눈에 보여요. 집에 오는 선거유인물을 봐도 차별성을 별로 못 느끼겠더라구요. 당의 색깔이 전혀 표현되지 않았어요.”
문정인 “헌정질서, 제도, 정치문화 등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룰 겁니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예요. 이건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의미하는데, 솔직히 큰 변화가 올지 확신하기 어려워요. 다들 과도기적 정당이거든요. 당이란 건, 이념과 정강정책, 그리고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들이 직접 경선에 참여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요.
그런데 말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국정치사에서 법을 통해 ‘거센 정치개혁’을 이룬 분으로 평가받을 거예요. 탄핵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진 게 아니라 한국민주주의 활성화의 중요한 모멘텀을 이뤘거든요. 일본은 30년 내내 하려고 해도 못한 걸 우린 노무현 집권 1년 반만에 그냥 해버린 거예요. 하하.
이제 더 이상 돈과 조직으로 하는 정치는 안 될 겁니다. 성실한 정치인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이 됐어요.”
김승은 “노무현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탄핵 기각판결을 받아 복권하면 그 뒤에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문정인 “이젠 차분하게 국민화합을 위해 일해야 해요. 더 이상 동지를 적으로 만들고, 적을 원수로 만들어서는 안 되죠. 정부기능을 강화하고, 열린우리당도 제대로 된 여당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야당과 더불어 함께 하는 정치를 해야죠.
그리고 한국사회 분열의 근원은 언론에 있는데, 언론도 정신차려야 하지만 대통령도 특정언론을 적대시하거나 동지시하는 건 문제죠. 언론관계도 정상화해야 합니다.”
“20대와 50대 생각의 교류가 필요하다”
김승은 “저는 20대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게 열리길 바랍니다.”
문정인 “다 끝나가나? 이런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우리 세대가 국가와 민족을 개인의 삶보다 중시했다면, 20대는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발랄한 건 좋지만 신중하지 못한 것 같고. 남들 밥 차리느라 고생했는데 정작 본인들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가 숟가락만 들고오는 거 있잖아요.
권리의식은 있으나 책임은 안 지려는 경향이 있죠. 50대가 20대에게 아량을 베풀어야 하듯, 20대도 50대를 존경하고 공존의 논리로 봐줘야 할 것 같아요.”
김승은 “교수님만 같으면 20대와 50대 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을 것 같아요.(웃음) 20대들의 여물지 못한 생각을 50대들이 감싸주면 권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부딪힐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생각의 교류, 정말 필요한 것 같네요.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웃음)”
문정인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