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생 / 세종대 경영학과 / 고려대 경영학 석사 / 한성대 경영학 박사 / 동화은행 지점장 / 제일투자신탁 상무 / 우리투자증권 상무 /2005년 유리자산운용 사장 / 2010년 우리자산운용 사장(현)
부임한 지 4개월 남짓 지난 차문현 우리자산운용 사장(56)은 기자에게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을 한 권 건넸다. 간략히 요약하면 정당한 경제활동으로 경쟁하고 돈을 벌면 사회로부터 공감을 얻고 부를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투자자금 유치에만 골몰하고 운용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는 등 펀드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고 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자산운용은 총 운용액 13조7000억원으로 업계 7위 수준이다. 탄탄한 규모지만 올해 초만 해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소송으로 한참 고초를 겪었고 직원 사기도 뚝 떨어졌다. 그러나 차 사장 부임 이후 회사 내 ‘잘해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덱스펀드 전도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수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연구 중이다. 최근 ‘자자손손백년투자펀드’를 내놓는 등 장기투자 대표운용사로의 이미지를 쌓겠다는 비전도 세웠다.
펀드판매로 소송에 휘말리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회사가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어떻게 치유하고 있는지요.
이곳에 온 지 4개월 남짓 지났지만 회사는 최근 몇 년을 통틀어 정말로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파생상품에 얽힌 소송 건으로 좀 지쳐 있기도 했고요. 한마디로 직원 사기가 바닥이었습니다. 임직원 맨파워는 어느 회사 못지않은데 실력발휘를 못했던 겁니다. 저는 취임하자마자 전 직원들에게 저를 사장이라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여러분을 대표하는 한 명의 직원일 뿐이니까 대표직원, 혹은 줄여 대표라고 부르라 했죠. 군림하지 않고 저부터 솔선해 회사를 바꿔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차라리 아부를 할지언정 동료 선후배 간 비판하지 말자고도 했지요. 실제로 칭찬릴레이 캠페인을 벌여 매월 우수 직원을 포상하고 있고요. 긍정의 힘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회사는 금방 변합니다.
최근 ‘하모니’라는 모토를 강조하신다고요.
계곡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우리가 힘을 합쳐 조화를 이루면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 외 다양한 다짐을 얹었는데요, 하모니(HARMONY)에서 H는 정직(Honesty), A는 반성(Apology), R은 정도경영(Rule), M은 윤리(Moral Hazard), O는 목표(Object), N은 공익(Noblesse Oblige), Y는 공동체(You First)를 상징합니다. 펀드업계가 대량 환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투자자들로부터의 신뢰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내부적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목표의식을 갖고, 공동체를 중시하자는 지침도 세웠고요.
그는 이른바 ‘마일리지경영’을 실천한다. 업무 성과, 아이디어 창출, 상사 평가 등을 전부 마일리지로 반영해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제도다. 대표와 임원은 한도 있는 마일리지를 갖고 직원을 평가한다. 차 사장이 부임하자마자 아이디어를 냈고 9월 말 시스템을 완성했다. 차 사장은 “깎아 내리는 게 아니라 더 잘해보자는 취지”라며 “점수가 낮은 사람이 실력 발휘하도록 만드는 게 경영목표”라고 했다. 또 “마일리지제도를 도입하면 평소에 성실한 직원이 좋은 평가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차 사장께서는 인덱스펀드 전문가로 유명하시죠. 그래서 부임 초기부터 우리자산운용의 펀드 스타일이 많이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앞서 목표(Object)라는 키워드를 말씀드렸는데 이는 시장수익률보다 좀 더 나은 수익률을 꾸준히 내자는 겁니다. 제가 과거 인덱스펀드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니저의 적극적인 운용으로 단기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어요. 하지만 장기간 지수를 뛰어넘는 수익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또 실증적으로 입증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운용비용을 줄이는 데 더 관심을 둡니다. 구체적으로 매매회전율을 절반 이하로 줄이라고 했어요. 잦은 매매에 드는 비용은 고객에게 전가되니까요. 비용이 낮은 지수 관련 펀드를 계속 개발 중이기도 하고요.
비용을 낮춰 장기로 투자할 만한 펀드를 만든다는 말씀이시군요.
최근 선보인 ‘자자손손백년투자펀드’는 매일경제와 에프앤가이드가 공동개발한 지수인 MKF블루칩지수를 70% 이상 따라갑니다. 여기에 시장 상황에 따라 일정 부문만 종목 리서치에 근거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수를 쫓고 정해진 운용방식에 따라 투자하기 때문에 주식 매매회전율이 50% 미만을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보통 주식형펀드 평균 매매회전율이 200~300%쯤 되니까 운용비용이 무척 낮은 셈이죠. 또 증권사 약정 수수료를 최대한 낮추는 등 고객에게 부담되는 비용을 줄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펀드의 수수료는 50bp 정도로 일반 펀드(150~200bp)보다 낮습니다. 예를 들어 연 2%만 수수료를 줄여도 10년이 지나면 복리로 50%까지 감소합니다. 그 혜택은 고객에게 돌아가지요. 앞으로 우리자산운용이 강점을 보여 왔던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더욱 매진하려 합니다. 우리자산운용은 2002년 KOSEF200을 업계 처음으로 선보인 후 총 10종의 ETF를 운용 중인데 지난 7월 ETF 운용수탁고가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이제 3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운용비용이 저렴한 지수펀드에 장기투자하면 노후생활을 걱정할 필요 없고, 자자손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판매비용까지 줄이려면 직접 판매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직판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또 저희가 판매까지 잘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있고요. 잘 짜여진 판매망을 이용하는 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차 사장은 부임 이후 알파운용본부와 베타운용본부로 조직을 개편했다. 김학주 본부장이 이끄는 알파운용본부는 적극적으로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액티브펀드를 맡는다. 기존의 퀀트운용본부는 베타운용본부로 이름을 바꿔 ETF와 인덱스운용팀을 편입시켰다.
지수펀드에 집중하다 보면 펀드매니저의 운용 역량을 줄이는 반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요.
현재 액티브펀드도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 선박·부동산·SOC펀드 등도 제 몫을 합니다. 다만 종목을 고르되 펀드매니저 주관에 따라 함부로 사고팔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액티브펀드에 계량적인 요소를 가미해 이른바 퀀트액티브펀드로 운용합니다. 액티브펀드의 매니저가 10번 실수를 하면 수익률이 평균 20%에서 5%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15번 실수하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요. 계량분석을 가미하면 투자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어지지요.
향후 증시를 어떻게 보십니까
여전히 더블딥을 말하는 경제전문가들이 있는데 미국이나 일본의 금융상황은 안정화되는 추세입니다. 신흥시장은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서방 선진국들의 경제회복에 기여하리라고 봐요. 유로화의 불안감도 크지 않다고 봅니다. 독일, 영국,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들의 성장률도 안정적이고요. 이런 시장 분위기라면 증시는 한동안 더 힘을 얻게 될 겁니다.
■ 차문현 사장은…
은행·증권·자산운용 두루 거친 금융통
차 사장은 은행·증권·자산운용을 두루 섭렵한 금융통이다. 첫 직장은 동화은행. 그러나 98년 테헤란로 지점장 시절 은행구조조정으로 동화은행이 퇴출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제일투자신탁을 인수한 CJ가 법인영업을 담당할 인물로 그를 채용했다. 다시 현장에 돌아온 그는 3년 만에 수탁액을 3조원 가까이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2001년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법인영업을 맡아 수익증권 판매를 5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2005년 유리자산운용 사장으로 부임한 뒤엔 회사를 인덱스펀드와 중소형주의 강자로 키웠다. 그는 인덱스펀드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만큼 학구열이 높다. 유리자산운용 사장 시절 매일 자사 홈페이지에 액티브펀드와 인덱스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하며 인덱스펀드의 경쟁력을 강조해 화제를 모았다. 강한 추진력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따르는 이들이 많다.
[대담 = 이제경 부장 [email protected] / 정리 = 명순영 기자 [email protected]]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77호(10.10.20일자) 기사입니다]